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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Feb 16. 2016

합격하다!

기다림은 늘 길기만 하다.

서울 생활을 20년 넘게 하고 나서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서 생활한지 이제 3년차이다. 서울에 일이 있어서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20년 넘게 서울에서 남쪽으로 다녔음에도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다.  새벽안개가 자욱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가 또 과거의 어느 때로 기억여행을 떠난다.


점점 더  선명해지는 기억들


처음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던 것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새록새록 선명해지는 것을 보면 내 머리 속 어딘가에는 그 기억들이 잘 저장이 되어 있다는 말이겠지. 앞서 면접에 대한 글을 써놓고도 하나하나 기억이 파편처럼 떠오른다. 


엄마가 거금을 들여서 사준 노란빛 플레어스커트 정장을 입고 갔던 것(지금 면접에서는 일률적으로 검은색이나 감색 타이트스커트 정장이 정석인데, 노란색 옷을 입고 갈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과 동기와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나 창원행 버스를 탔던 기억, 인사과에서 우리는 맞이했던 사원이 처음으로 진행한 면접이 바로 이 면접이었다는 것, 짙은 가죽 응접세트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었던 부장님(지금은 회사에서 그렇게 편안하게 신문을 보고 있으면 퇴출 일 순위이다), 면접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다른 면접자를 보면서 느꼈던 경쟁심 등등.


면접장에 도착하니 나와 동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교 학생들도 와 있었다. 여러 명이 대기실에서 옹기종기 기다리고 있다가 면접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난생처음 면접을 해 본 것에 대한 두근거림과 부족함, 다음에는 더 잘 하리라는 다짐이 함께 했던 시간이었다. 입사 뒤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회사생활을 하면서 왜 그렇게 일찍 입사를 했던가 하는 후회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돌아와서는 단짝들에게 처음 가본 공장의 모습, 면접에서 떨리던 것, 면접에 대한 피드백 등등을 무슨 무용담처럼 전달했다. 당시 대기업에서 면접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처음 해보는 면접이었음에도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냥 될 대로 돼라 하는 마음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아는 것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피드백받은 건, 말이 빠르고 목소리가 작다는 것. 그건 지금도 문제라서 어디서든 강의를 할 때 마이크는 필수품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무모하게 도전한 일인데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다 싶다. 하여튼 대책 없는 무모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번을 시작으로 나의 무모한 모습은 도처에서 드러난다. 


면접 후 한참이 지나도록 회사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분명히 면접이 끝날 때 결과를 조만간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면접을 본 5월이 하릴없이 지나가고 6월이 되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과사무실에 물어봐도 아직 연락이 없단다. '떨어진 걸까.. 대책 없는 무모함이 문제군... 탈락을 했다면 일찍 알려주면 다른 준비라도 하지..' 기말고사를 앞두고 책이, 필기한 노트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 큰일 나겠나, 씩씩하게 회사로 확인 전화를 하다. 


혹시 회사에 연락을 해보면  안 되나 싶어서 알아보니 그렇게 하면 회사에서 좋아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기다림은 쉽지 않았고 결국 회사 인사과에 전화를 했다. 아주 큰 용기를 내서, 목에 힘을 주고서 말이다.


"저,  지난번에 면접 본 아무개인데요.... 혹시 결과가 나왔나요?"


"아, 네.. 잠시만요."


결과는 "합격".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인사과 직원이 학교에 전달했는데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냐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7월 1일 출근을 하란다.


와~! 내가 드디어 취직이 되었다. 앞으로 한 학기가 남아 있는데 이렇게 회사를 다녀도 되는 건가, 남은 학기 수업은 어떻게 하지, 출근하면 잠은 어디서 자나, 짐은 어떻게 들고 가지? 입사하면 무슨 일을 하게 될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뒤에 일은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학교에 취업을 알리고, 추천해 주신 교수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학기 중에 회사를 다녀야 하니 수업을 어떻게 하면 될지 교수님들께 문의를 드리고, 리포트로 대체할 수 있는 과목은 그렇게 하고, 수업을 들어야 하는 과목은 최소한의 수업만 참여할 수 있게 양해를 구했다. 몇몇 교수님은 세탁기를 만드는 곳이니 화학실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시며서 화학실험책을 준비하도록 하셨고, 어떤 교수님은 아예 책을 주기도 하셨다. 과에서 제일 먼저 취업이 되어서, 그것도 대기업인 금성사에 취업이 되었으니 얼마나 좋으셨을까... (혹시 저 망아지 같은 학생이 회사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하신 것은 아닐까? ㅠ.ㅠ)


출근 준비는 입을 옷 몇 가지와 이불을 하나, 세면도구와 화장품, 책 몇 권을 싸는 게 모두였다. 커다란 가방 하나에 몇 가지 물품을 넣고, 이불은 어쩔 수 없이 보자기에 싸고. 이렇게 가방 하나랑 이불 보따리 하나가 내 직장생활의 시작에 필요한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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