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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Feb 18. 2016

첫 출근일의 기억

어리바리 신입의 첫날

나는 왜 이 글을 시작했나


이 글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없다. 그냥 내가 어떻게 생활을 해왔는지를 스스로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다.


25년의 직장생활, 쉽지는 않았다. 난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어디서나 여성으로서는 선두였다. 여러 사람들 중에서 앞서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예 나와 비슷한 연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첫 입사한 설계실에서 유아독존 대졸 여사원이었고, 서울 본사에서 잠시 여사원 동료들이 있었으나 계열사로  이동하면서부터는 늘 내가 여자로서는 최고 연장자였다. 그래서 누군가를 벤치 마킹할 수도 없었고, 사회 진출한 여성 멘토를 찾기도 어려웠다.

좌충우돌, 우왕좌왕 많은 노력을 했다. 서울 본사에서 처음 담당한 인사업무, 하지만 학부 전공은 의류학, 그 열등감을  떨치기 위해 야간 MBA를 다녔고, 내친김에 돌아간다고 MBA 졸업을 위해 논문을 썼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코칭 공부 덕에 그 연계 선상에서 박사학위도 받았다. 현재 내 프로필은 20년 인사부서 근무경력의 인재개발학 박사, 그리고 한국코치협회에서 인증받은 KPC인증코치다.


늘 바쁘게 살았고, 늘 노력하면서 살았다는 말이 맞을 거다. 그리고 그 노력과 바쁜 삶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남편은 늘 나에게 그런다. "어리바리하다"고. 나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다. 나도 인정한다. 어리바리하고 두려움 많고 어려움이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게 나의  본모습이니까. 하지만 내 본모습은 꽁꽁 숨겨놓고 상황이 닥치면 그냥 견디고 헤쳐나갔다는 것이 맞을 거다. 그래서 내  본모습이 어떤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씩씩하고 여장부 같고 강단 있다고 봤을 수도 있겠지만 나의 본모습은 어리바리한 한 여자일 뿐이라는 사실..

한 편 두 편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많은 경우 어리바리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기적이다라고. 하지만 그런 중에도 나도 깨닫지 못했던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이런 어리바리한 사람이 왜 글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하는데, 할 수 있으니 해보세요'라고 하고 싶은가 보다. 그래, 나도 하는데, 요즘 똑똑한 젊은 사람들에게는 식은 죽먹기 아니겠는가..


각설하고... 이제 입사한 그 날로 타임머신을 타고 넘어가 보자.  


첫 출근일의 희미한 기억, 하지만 생생한 엄마의 눈빛


첫 출근하는 날, 꼭두새벽에 창원으로 출발했다. 집을 떠나는 딸을 혼자 보내기 뭐하셨는지 엄마가 함께 하셨다. 새벽 어스름, 새벽에 출발해서 7시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한 창원시외버스터미널, 많은 사람들이 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탄다. 우리도 역시 택시를 타고 공장으로 향했다. 회사 정문 경비실에서 인사과로 도착했음을 알리고 짐은 일단 경비실에 맡겨두고 마중 나온 사람을 따라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백 하나만 들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 경비실 문 앞에서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안쓰러운 듯, 애처로운 듯...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자식을 보는 어미의 마음일 거다. 그 눈 빛, 몇 년 뒤 서울 본사 발령을 받고 또 다른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서울로 올라가던 나를 부산역에서 아버지와 함께 배웅하던  그때의 눈빛과 함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출근 첫날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다. 생각보다 넓고 거대한 공장에 놀랐고, 공장의  한편에 사무실이 있음에도 살짝은 놀랐다. 근무하게 된 설계실은 공장 3층에 있었다. 대부분의 부서들은 칸막이로 영역이 구분되어 있는데, 설계실은 3층 공간 전체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부서를 구분하는 것은 그룹 지어 붙어 있는 책장들이었다. 130여 명이 근무하는 곳이니 시끌벅적할 만도 한데, 생각보다 조용했다. 겨우 부서장과 주요한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 배정을 받았다. 철로 만든 책상, 그리고 몇 가지 필기구와 노트가 주어졌다. 요즘은 책상 위에 당연히 PC가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개인 PC는 꿈도 꾸지 못할 시기였고 설계실에도 문서작성을 위한 PC 몇 대만 있던 시기였다. 그때 사용한 문서작성 프로그램은 "장원"이었다. 워드프로세싱이 아니라 Text 에디터 정도의 기능만 있는... 


여기저기 인사를 하고, 몇 가지 설명을 듣고 어리바리하고 있는 사이 벌써 퇴근시간이란다.  당시 출퇴근 시간은 아침 8시 반, 그리고 오후 5시 반이다. 설계실 어느 분의 도움을 얻어 맡겨두었던 이불 보따리를 챙겨서 기숙사로 향했다. 처음 들어가보는 기숙사. 내 방은 4층이었다. 내 방이라고는 하지만 한 방에 4명이 생활하도록 2층 침대 2개, 작은 옷장 4개, 작은 책상과 신발장이 하나씩... 공동생활 공간이었다. 그 속에서 난 3년 넘게 생활을 했다. 기숙사에 대한 에피소드는 또 다른 글에서 나누고...


기숙사 방도 배정받고, 식당이 어딘지도 알아놨고... 그렇게 입사 첫날이 지나갔다.  


낯선 잠자리, 낯선 사람과 한 방을 쓰고, 창문으로는 공장의 불빛이 비쳐 들어오고... 밤새 뒤척였던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넓은 공장, 그 속에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정글이라고 이야기하는 직장생활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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