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 초창기, 한국을 뒤흔든 IMF사태, 그로 인한 태풍들..
노경혁신팀이라는 노사문제를 담당하는 조직에서 일할 때였다. 전사 대상으로 우수인력을 선발하는 포상제도 기안을 하면서 이사님으로부터 몇 번을 반려당했다. 창원에서 그토록 고생을 하면서 전략적인 사고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을 배웠는데, 본사에서 생활하는 동안은 전혀 그 실력을 쓸 수 없었다. 아니 필요 없다는 것이 더 맞겠다. 그동안 진행되어온 것을 살짝 바꾸어서 진행을 하면 되는데, 뭣이 문제인지 바로 위 이사님은 계속 반려를 했다. 보고를 하면 뭐라도 새로운 것을 가져오라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 무엇을 가져오라고 하는지 헷갈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가져오라는 것인가…
그분이 요구하신 것은 단순했다. 작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개선된 무엇을 가져오라는데, 난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매일매일 출근하는 것이 지옥 같았다. 윗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뭔가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결국 바로 위 과장님께서 나섰다.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라고 하신다. 그대로 했다. 내가 보기에는 단순히 말을 바꾼 것 밖에 아닌데, 그런데 그게 통과가 되었다.
이사님이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 발짝만, 아니 반발짝만 더 가면 되는데, 다들 그 걸 하지 않는다"라고. 그분은 늘 우리보다 한 발짝 앞을 내다보시는 분이었다. 물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다. 그분은 늘 야단을 치실 때 "반발짝만!"이라고 하셨는데, 그 반발짝을 만들어 내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내가 그분의 자리에 있어보니 그때 그분의 말씀을 알겠다. 뭔가 조금만 더 고민하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걸 잘 하지 못하는 사원 대리급을 볼 때마다 그분이 떠오르니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는 97년 중순 이후, 한국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그때까지 승승장구하던 한국이 부도위기에 몰리고, 연일 TV에서는 명예퇴직이니 희망퇴직이니, 그러면서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울고불고하는 모습만 보도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가 힘들어지니 대기업은 알아서 기는 상황이 되었다. LG전자는 내수를 위주로 하는 회사라 내수가 부진하니 바로 실적과 연계가 되기 시작했다. 당시 LG전자에서는 밑 빠진 독인 LCD 사업에 많은 돈을 퍼붓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찌 보면 그렇게 큰 어려움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룹 차원에서 국가위기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인사부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급여 반납, 복리후생제도의 축소였다. 분위기에 편승해서 복리후생제도 중에서 크게 문제가 없는 부분부터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장기근속자의 해외여행 잠정 연기, 각종 수당의 동결, 학자금/경조금 등 축소 등등.. 보여주기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 축소를 진행했다.
많은 회사에서 인원감축을 시작했다. 매일 저녁뉴스에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의 눈물바다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다른 회사처럼 LG전자에서는 대놓고 인원 축소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용하게 서서히 인원에 대한 조정을 시작했다. 연구소 인력을 각 지방공장으로 전진 배치하기 시작했고 지원부서 인력도 축소하기 시작했다. 지원부서 인력 축소의 대상은 당연히 박힌 돌보다는 굴러온 돌인 나 같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난 LG전자의 계열사로 발령을 받았다. 여성인재개발팀이 해체되면서 노경혁신팀으로 이동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노경팀의 사람들이 지방사업장 출신인 나를 환영해 주었기 때문에 무리 없이 조직에 적응할 수 있었으나, 계열사로 발령을 받은 상황은 조금은 황당하고 힘든 상황이었다. 스스로 그렇게 떨어지는 인력도 아니고, 나름 열심히 일을 했는데 내가 이렇게 내쳐지나 싶은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들만의 리그에 툭 떨어진 듯 들어온 내가 참 부담스러웠겠다는 생각도 잠시, 그렇게 결정한 그들이 참 원망스러웠다.
아마도 그때가 처음 경험이어서 그런가 보다. 그 뒤로 긴 직장생활을 하면서 조직은 늘 바뀌는 것이고 그에 따라 근무지가 바뀌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바뀌는 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다. 단지 회사 이름만 바뀌지 않았을 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늘 새로운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계열사로 전출되는 대상 중 가장 소리 없이 받는 조직에서 환영한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된 대는 별생각 없이 한 행동 하나가 큰 역할을 했다. LG전자는 몇 개의 계열사가 있었다. 그중 LG소프트라는 IT시스템 회사가 있었다. STM이라는 큰 전산회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로 LG전자에서 이 계열사를 소유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팀장님이 LG전자 본사를 자주 방문하셨다.
노경팀으로 배치를 받고 나서 어떤 분이 사무실에 오셨는데 아무도 대응을 해드리지도 차를 대접하지도 않기에 오실 때마다 웃으면서 맞아드렸다. 원래 내성적이고 사람 관계를 그다지 잘 하지 못했던 내가 어떻게 그 부장님께는 그렇게 했는지는 지금도 의아하다. 어쨌든 그런 나를 팀장님은 유심히 보고 계셨던가 보다. IMF사태가 발생하고, LG전자 인사본부에서 계열사로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을 때, 나를 보내달라고 하셨단다. 그분은 함께 일을 한 지 3년 만에 다른 조직 책임자로 가셨고, 그리고 퇴직을 하신 지금까지도 잊을 만하면, "너는 전화도 안 하냐?"하시면서 연락을 주신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난, 수호천사가 나를 지켜주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어려울 때마다 누군가 나타나서 나를 지켜주고 과거보다 더 좋은 위치로 나를 옮겨주니까 말이다.
앞으로 수호천사가 나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는 모른다. 알면 재미없을 것 같기도 하고, 언제나 더 좋은 자리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조금 힘들어지면 이번에는 또 어디로 나를 이끌고 가려고 이러시나… 하는 작은 기대를 하기도 한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그래서 이 인생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인생이란 살만한 것이고, 죽음의 순간이 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을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