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EDS시스템 근무의 시작
사업구조조정으로 구성원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져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나는 거의 마지막까지 부서가 정해지지 않았다. 아니 미리 내정이 되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그리 빨리 알려지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회사 통합이 결정될 무렵에 채용한 신입사원이었다. 몇 년만에 신입사원을 채용한다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출근을 하자마자 회사가 다른 회사로 흡수가 되는 상황이었다. 상대 회사에서는 기존 사원도 부담스러운데 배치를 못하겠다고 해서 한동안 실랑이를 했다. 이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 신입사원은 회사 전환에서 이런저런 자료를 만들면서 최선을 다했었다. 그랬던 그 사원이 향후 LG-EDS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 걸 보면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고 밖에. 지금도 그 사원을 생각하면 "돈이 많다면 아파트 두 채를 사서 한꺼번에 털어서 넓게 살겠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말처럼 푸짐한 몸집이었기도 하다.
부서원들의 배치에 대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에 상사는 팀원들의 부서가 모두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짐을 챙겨서 배치받은 부서로 이동을 하셨다. 그 뒷모습이 조금 섭섭했다.
결국 최종으로 우리 부서원들도 교육팀으로, 인사팀으로 전부 배치가 되었고 마지막 강남 테헤란로의 일상을 정리했다. 막 차를 사서 지하주차장에 주차비를 내면서 다녔던 일, 주차증을 받기 위해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만들어 내던 것이 모두 옛날이 되었다. 이제 강남 근무를 접고 다시 여의도 쌍둥이 빌딩으로 출근을 했다. 덕분에 예전 전자분들과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출근해서 자리가 정해지고 어떤 일을 담당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에게는 급여와 복리후생 파트를 담당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당시 LG-EDS시스템에서는 관리자는 리더직과 전문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명함에는 모두 과장이나 차장, 부장인데 내면에서는 팀장 등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사람과 자신의 일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었다. 그중 나는 기존 회사에서도 준리더였기 때문에 일단 리더직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급여와 기타 사항을 담당하게 되었다. 부서원은 거의 전원 여성이었다. 돌이켜보니 당시 LG-EDS시스템의 인사부서에 여자 과장은 없었고 내가 유일한 관리자 직급이었다. 99년 당시는 LG 내 다른 회사보다는 여성에 대한 배려나 기회가 많았던 회사이기는 했지만 관리자는 그다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잠시 경험한 LG-EDS시스템은 예전 근무했던 LG전자나 LG Soft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보고 분위기도 다르고 일을 하는 방식도 달랐다. 과거 회사에서의 보고는 서류를 만들어서 책상 위에 두면 리더가 검토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불러서 물어보는 형태였다면 여기는 같이 갑론을박하면서 자료를 만들었다. 심지어는 상대방의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대화를 하기도 했다. 퇴근시간이 넘으면 여기저기 사원들이 모여서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점심시간에 가끔은 술을 주문해서 마시기도 했다. 전 회사는 토요일도 정시 출근이었는데, 여기는 토요일 출근은 하되 조금은 느슨하고 조금 늦게 출근, 조금 일찍 퇴근을 해도 되었다. 자율보다는 방종에 가까워 보였는데 이렇게 해도 조직이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는 다른 글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갈 때 가장 화두가 되었던 건 Y2K였다. Y2K 2000년 문제는 1999년 12월 31일에서 2000년 1월 1일로 넘어갈 때 날짜나 시각을 다루는 과정에서 오류가 일어나는 문제로, 대표적인 컴퓨터 설계의 오류로 지적된다. 흔히 Y2K라 불리기도 하는데, 여기서 Y는 Year(년)를, K(엄밀하게는 소문자 k)는 1000을 나타내는 SI 접두어인 kilo(킬로)이다. 밀레니엄 버그(millennium bug)라고도 불린다. (출처:위키피디아)
LG-EDS시스템은 전산시스템 회사이니 이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을 수도 있어서 회사 전체가 비상상황이었던 때였다. 이 문제로 인해 시스템 전체가 다운되어 여기저기 오류가 일어나 미사일이 발사되는 등을 가상한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이 시스템 오류 상황을 방지하느라 2000년 1월 1일은 회사 전체 직원이 새해맞이를 회사에서 했다. 시스템에 대해서는 전혀 관계가 없던 인사팀도 함께 비상대기를 하고 밤 12시를 사무실에서 보내고 전원이 오전쯤 퇴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평온하게 시작한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LG-EDS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