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가 되는 쉬운 방법
코칭을 하다 보면 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진단을 합니다. MBTI, 애니어그램, 교류분석, 버크만 진단, Big 5, MMPI, DiSC 등을 주로 사용합니다. 진단도구를 사용하는 이유는 성향을 파악해서 고객과 코칭할 때 활용하기 위함도 있고, 고객에게 개인의 성향을 알려줌으로써 스스로의 행동이나 특성을 알려주기 위함도 있습니다.
처음 진단법을 배울 때는 정말 큰 무기를 얻은 듯했습니다.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기가 이렇게 쉽다니…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람을 네 가지 유형으로, 9가지 유형으로, MBTI가 좀 유형이 많아서 16가지. 그렇게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유용한지 모릅니다. 그 성향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으면 고객을 대응하기도 참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다릅니다. 진단도구는 진단도구일 뿐, 복잡다단한 인간을 측정하고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현재 지구 상에는 70억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서로 똑같이 닮은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에나, 70억 명이 있는데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다니요.. 그럼 성격은 어떨까요? 이 많은 숫자의 사람을 어떻게 4가지로, 16가지로, 9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구분에 따라서 '너는 진단 결과가 이러니 성격은 이렇고, 직업은 어떤 부분이 더 좋고, 이런 직업은 맞지 않으니 생각도 하지 마라"라고 한다면 신빙성이 얼마나 있을까요?
지금도 물론 개인 코칭을 할 때나 조직 워크숍을 할 때 도구를 사용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는 진단 유형을 나눠서 토의를 하면 훨씬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각 유형별로 답변이 정말 다르거든요. 여행 계획을 세우라고 하면 어떤 유형은 5분 단위로 계획을 만들지만, 어떤 그룹은 "그냥 내키는 대로 한다" 한 줄만 적어놓기도 합니다. 그 결과를 보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면서 이해를 합니다. DiSC진단에서 상사가 C성향이면 모든 일에 대해 철저하게 보고해야 합니다. 심지어 1원짜리 하나에 대해서도 보고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진단에서는 어쩌면 진단보다는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진단보다 결과를 해석해서 제대로 알려주지 못할 경우에는 진단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그럼 진단 결과를 알려주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개인에게 직접 전달하는 방법이 가장 좋기는 한데, 메일이나 문자 등으로 받은 이가 해석을 하도록 하면 안 됩니다. 진단 결과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대면해서 전달하는 겁니다. 결과를 알려줄 때는 진단도구가 어떤 목적이고 어떤 내용인지를 먼저 설명해서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내용도 아주 객관적으로 전달을 하려고 하죠. 그리고 문서로 만들어진 보고서가 있다면 먼저 읽어보게 하고 수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살펴보게 하고, 의견을 물어봅니다. 진단 결과에 조심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하고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 해석을 해줍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전달합니다.
진단 결과를 잘못 알려주면 위험하다는 건 여러 차례 배워서 잘 알지만, 직접 경험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진단 결과를 잘못 해석하면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아는 분들에게서 강의를 들었으니 당연히 경험할 기회가 없죠. 그런데, 정말 정말 제가 진단결과를 비드백 받고 뒤집어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루는 부산 서면에 있는 중고서점에 책을 살펴보러 갔습니다. 심리/인문 관련 분야의 책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한 분이 다가와서 멘토링 해주는 좋은 기회가 있다고 설문 응답을 하라고 합니다. 제가 그런 일을 하기도 하고, 센터도 있다고 하기에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을 하는지, 센터는 어떻게 운영하는지 궁금해졌죠. 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하던가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집니다.
며칠 뒤 선정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첫 번 만나는 날, 사람, 집, 산 등을 그려보라고 하고, 에니어그램 진단도 했습니다. 그날 진단 결과를 알려주는 줄 알았더니 다른 분이 해석을 해준다고 날짜를 다시 잡아야 한답니다. 뭔가 좀 이상했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일주일 뒤에 만났습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젊은 남자 한 분과 지난번 만났던 여자분이 함께 나오셨더군요. 그리고 진단내용을 해석해줍니다. 제가 들은 해석 내용은 이랬습니다.
에니어그램 진단으로는 처음 시작은 좋으나, 주변에 사람이 없겠다, 사람 관계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림을 보고서는 "가족사가 별로 좋지 않았겠다, 어릴 때 부모님과 관계가 좋지 않았을 거 같다, 뿌리가 깊어야 하는데 뿌리가 나쁘니 가지고 있는 열매도 다 떨어질 수 있다, 지금은 괜찮아도 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게 드러나 힘들어질 수 있다."라고 하더군요.
해석 내용에 대해서 제가 인정을 하지 않자, 그게 맞다고 두 사람이 함께 거의 윽박지르듯이 합니다. 그러면서 제 내면에 있는 어려움을 없애려면 함께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최소 6개월이고 일주일에 3일 이상을 만나야 한답니다.
해석 내용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일단 감사를 전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는 겁니다. 진단 내용을 제가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한동안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잘 알고 지내는 코치님 한 분과 오랫동안 통화를 하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습니다.
저도 어지간한 진단을 해보고 피드백도 받아봤습니다. 진단 툴을 다룰 줄 압니다. 진단 결과를 고객에게 해석을 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흔들린 것을 보면 그들의 말속에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말이 있었겠죠.
그리고 정말 크게 깨달았습니다. 진단에서 결과를 해석해서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위험한 것인지를요. 형태도 없는 말이 칼이 되기도 하고 생명수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말로 인해 상처를 받았습니다. 참 많이 아팠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이런 식의 해석으로 사람을 힘들게 하다면 그건 진단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진단을 받고 싶으시면 전문가에게서 정확하게 받으시고, 그게 되지 않는다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진단에 대해 정말 정말 주의하고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진단을 해준 곳이 어딘지 궁금하시죠?
바로 그 문제가 되고 있는 모 종교단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