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10월에검사한 MRI, CT 검사결과지를 제가 가져갈 수 있을까요? 어디 제출할건 아니고요. 그냥 개인적으로 갖고 있고싶어서요."
동물병원 접수창고에 있는 선생님께 조용하게물어봤다.
선생님은 하얀 종이를 내밀면서,
"메일 주소를 여기 써주시면, 이따 오후 5시 전까지소피아검사 파일을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친절하게 대답해 주신다.
그리고 쏘피를 안고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는데, 이제야 사방이 보인다.
그동안 무슨 정신이었을까?
그냥 내 안의 슬픔에 갇혀서 좁디좁은 시야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오늘에서야보이기 시작한다.
"뭉이 보호자님 면회 오셨습니다."
몸통에 털이 빠진 뭉이는 면회온 엄마를 만나러 입원실에서 대기실로 왔다. 엄마를 보고 신이 났는지,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리고, 털이 빠져서 돼지꼬리 같은 가느다란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믹스견인 뭉이는 짧은 다리와 긴 허리가 매력적이고, 털이 빠졌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까만색 털이 사랑스럽다.
"흰둥이, 3번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어? 이름은 흰둥인데, 털 색깔이 짙은 갈색이다. 하하하! 이름만 흰둥이인 저 녀석은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 병원에 온 걸 아는지, 잔뜩 졸아있는 흰둥이를 안고, 보호자는 3번 진료실로 급히 들어간다.
대기실 안에는 아픈 개들이 십여 마리 이상 되어 보인다.
지역에서 24시간을 진료하는 제법 큰 병원이어서 그런지, 노견도 보이고, 꽤 아파 보이는 녀석들이 많다.
보호자들은 나랑 같은 눈빛을 하고 있다.
그때, 뭉이 엄마가 뭉이를 안고 급히 나한테 와서 묻는다.
"얘 혓바닥 좀 봐주세요. 파래요?"
난 길게 나온 뭉이의 혓바닥을 유심히 쳐다봤다.
"네. 약간 파란 것 같아요."
뭉이 엄마는 나의 대답에 안절부절못하며 접수창고로 급히 뭉이를 안고 가서, 선생님과 얘기를 한다. 그리고 뭉이는 바로 입원실로 다시 들어갔다.
뭉이를 입원실로 보낸 뭉이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하고 다시 내 옆 자리로 왔다.
"뭉이 괜찮아요?"
나의 질문에 뭉이 엄마는 말한다.
"어젯밤에 숨도 못 쉬고, 죽어가는 걸 급하게 데려왔는데, 여기서 링거 맞고 나아진 거예요. 아직도 혓바닥이 파래지는 걸 보면 더 입원해야 하나 봐요. 집에 가고 싶어 하는데...
뭉이는 15살이에요. 집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데,입원실에서 혼자 얼마나 힘들까... "
뭉이 엄마는 말끝을 흐리며 대답하다가,
나를 쳐다보며묻는다.
"얘는 어디 아파요?"
난 잠시 망설이다가, 안겨있는쏘피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뇌종양이래요. 지금 약 먹고 있어요."
뭉이 엄마는 눈이 커지며, 다시 묻는다.
"치료하면 낫는대요?"
"너무 늦게 왔대요. 덜 힘들게 하는 약을 먹고 있어요. 잘보내주려고요."
난 쏘피의 귀를 살짝 막고,
애써 건조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나의 대답에 뭉이 엄마의 표정이 복잡해지며눈빛이 흔들린다.
뭉이 엄마도 아마 나와 같을 것이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니, 옆의 사람이 보이고, 아픈 개들이 보인다.
나만 노견의 보호자가 아니다.
같은 아픔을 안고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보인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랑스러운 녀석들이 보인다.
"헉! 이게 뭐야? 어떻게 봐야 하는 거야?"
집에 돌아온 후 아들방의 컴퓨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며끙끙거렸다.
동물병원에서 보내준 검사결과 파일이 전문 의료용 대용량 파일이다. 이런 파일을 처음 본 나는 당황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