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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마을아파트 Dec 05. 2023

17화 이제야 보이는 것들

나만 노견의 보호자가 아니다



2023 1124 동물병원에서 



"저, 선생님!

저번에 10월에 검사한 MRI, CT 검사 결과지를 제가 가져갈 수 있을까요? 어디 제출할 건 아니고요. 그냥 개인적으로 갖고 있고 싶어서요."


동물병원 접수 창고에 있는 선생님께 조용하게 물어봤다.


선생님은 하얀 종이를 내밀면서, 

"메일 주소를 여기 써주시면, 이따 오후 5시 전까지 소피아 검사 파일을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친절하게 대답해 주신다.



그리고 쏘피를 안고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는데, 이제야 사방이 보인다.

그동안 무슨 정신이었을까?

그냥 내 안의 슬픔에 갇혀서 좁디좁은 시야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오늘에서야 보이기 시작한다.

 



"뭉이 보호자님 면회 오셨습니다."


몸통에 털이 빠진 뭉이는 면회온 엄마를 만나러 입원실에서 대기실로 왔다. 엄마를 보고 신이 났는지,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리고, 털이 빠져서 돼지꼬리 같은 가느다란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믹스견인 뭉이는 짧은 다리와 긴 허리가 매력적이고, 털이 빠졌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까만색 털이 사랑스럽다.



 "흰둥이, 3번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어? 이름은 흰둥인데, 털 색깔이 짙은 갈색이다. 하하하! 이름만 흰둥이인 저 녀석은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 병원에 온 걸 아는지, 잔뜩 졸아있는 흰둥이를 안고, 보호자는 3번 진료실로 급히 들어간다.



대기실  안에는 아픈 개들이 십여 마리 이상 되어 보인다.

지역에서 24시간을 진료하는 제법 큰 병원이어서 그런지, 노견도 보이고, 꽤 아파 보이는 녀석들이 많다.

보호자들은 나랑 같은 눈빛을 하고 있다.



그때, 뭉이 엄마가 뭉이를 안고 급히 나한테 와서 묻는다.

"얘 혓바닥 좀 봐주세요. 파래요?"

  

난 길게 나온 뭉이의 혓바닥을 유심히 쳐다봤다.

"네. 약간 파란 것 같아요."


뭉이 엄마는 나의 대답에 안절부절못하며 접수창고로 급히 뭉이를 안고 가서, 선생님과 얘기를 한다. 그리고 뭉이는 바로 입원실로 다시 들어갔다.


뭉이를 입원실로 보낸 뭉이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하고 다시 내 옆 자리로 왔다.


"뭉이 괜찮아요?"


나의 질문에 뭉이 엄마는 말한다.


"어젯밤에 숨도 못 쉬고, 죽어가는 걸 급하게 데려왔는데, 여기서 링거 맞고 나아진 거예요. 아직도 혓바닥이 파래지는 걸 보면 더 입원해야 하나 봐요. 집에 가고 싶어 하는데... 

뭉이는 15살이에요. 집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데, 입원실에서 혼자 얼마나 힘들까... "


뭉이 엄마는 말끝을 흐리며 대답하다가,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얘는 어디 아파요?"


난 잠시 망설이다가, 안겨있는 쏘피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뇌종양이래요. 지금 약 먹고 있어요."


뭉이 엄마는 눈이 커지며, 다시 묻는다.

"치료하면 낫는대요?"


"너무 늦게 왔대요. 덜 힘들게 하는 약을 먹고 있어요.  보내주려고."


쏘피의 귀를 살짝 막고,

애써 건조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나의 대답에 뭉이 엄마의 표정이 복잡해지며 눈빛이 흔들린다.



뭉이 엄마도 아마 나와 같을 것이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니, 옆의 사람이 보이고, 아픈 개들이 보인다.


나만 노견의 보호자가 아니다.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보인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랑스러운 녀석들이 보인다.







"헉! 이게 뭐야? 어떻게 봐야 하는 거야?"


집에 돌아온  아들방의 컴퓨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며 끙끙거렸다. 

동물병원에서 보내준 검사결과 파일이 전문 의료용 대용량 파일이다. 이런 파일을 처음 본 나는 당황스러웠다.

같이 보내준 설명서와 함께 가까스로 파일을 열었다. 열기만 하면 뭐 하나.

MRI 파일에서 내가 원하는 녀석의 뇌 부분을 정확히 찾아야 하는데...

"에효! 망했다. 못 찾겠다."


마우스로 여기저기 클릭하며 보고 있는데, 녀석의 귀여운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하하하!



"쏘피야? 이거 네 코야? 이건 발인가?

넌 왜 MRI 영상도 귀여워?"


  

이번엔 CT 영상을 보는 중에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쏘피야? 너 많이 무서웠구나? 꼬리를 이렇게 말고 있는 거 보니까? 많이 힘들었구나?"

.

.

.


검사 결과 영상을 쭈욱 둘러보니,

마음이 아프다.

병원에서는 너의 뇌만 보였었는데, 이제와서 보니 다른게 더 많이 보인다.



녀석의 말린 꼬리가 보이고,

녀석이 입에 문 호스가 보인다.

그리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비어있는 녀석의 장이 보인다.



쏘피야 네 코야?? 뭐야? 넌 왜 MRI도 귀여워?
꼬리를 저렇게 말고 있는거 보니 많이 무서웠구나? 쏘피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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