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마을아파트 Nov 21. 2023

5화 신데렐라 최 쏘피

마법의 약 부작용


밤 12시 정도가 되면 


, , , , , , ...

경쾌한?(경쾌하게 들리는 귀여운) 발소리를 내며 현관 중문 으로 간다.

병원약을 먹기 시작한 후 나타난 증상이다.


어제도 어김없이 12시가 가까워지니

누워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났다.


병원약 속에 있다는 스테로이드 때문인지, 뇌에 관련된 약 때문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어쨌든 12시가 되면 녀석은 일어난다.

그리고 현관 중문 옆 벽을 긁기 시작한다.


벅벅 벅벅 벅벅 벅벅!

정말 끊임없이 긁는다.


"하아! 또 시작이네 

야! 최쏘피! 너 신데렐라야?!"


처음엔 왜 그러는지 몰랐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알았다.

밥을 내놓으라는 녀석의 거센 항의라는 것을.


스테로이드약 부작용으로 요 근래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 있기 때문에, 탈이 나지 않게끔 상황을 보면서 조절해 주려 노력한다.

그런데 한밤중에 또 밥을 내놓으라니...  

줘도 괜찮을까?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고민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어제도 녀석이 달라는 간식을 조금씩 나눠서 수차례 줬다.


잠시 후,

벅벅 벅벅 벅벅 벅벅!

또 시작이다.

모르는척해도 소용없다.

온 거실을 , , ,  소리를 내며 배회하다가

다시 벽을 긁는다.


저 녀석 배는 이미 빵빵하게 간식으로 가득 차있다.

이젠 어쩔 수 없다.


자러 들어간 재수생 아들 방과

가장 멀리 있는 작은 방으로 쏘피를 안고 갔다.


"쏘피야, 오빠가 곧 수능시험이야.

오빠가 삼수하면 안 되잖아? 그지?

오빠 자러들어갔는데, 잠들 때까지 조금만 여기에 있다 나오자.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이 녀석 내 말을 알아들었나?

방문을 살짝 닫았는데, 녀석이 조용하다.

'15분만 있다가 다시 데리고 나와야지' 생각하며

난 잠시 거실 소파에 누웠다.

.

.

.

그리고 눈을 뜨니,

오늘 아침이다. 헉!


작은 방 문을 긁는 녀석의 소리에

후다닥 일어났다.


"아! 쏘피야! 미안해. 너 어젯밤 계속 기다리고 있었구나?! 미안해. 깜빡 잠들었어."


녀석은 나를 지나쳐 부리나케 나오더니,

화장실로 직행한다.

곧바로 뒷다리를 벌리고, 참았던 쉬를 눈다.

그리고 부엌 쪽으로 걸어와

물을 찹찹찹찹! 급히 많이도 먹는다.


"쏘피야, 너 밤새도록 참고 기다렸구나?!

미안해, 미안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나를 힐끗 쳐다보고

녀석은 거실 한켠의 자기 자리로 가서 눕는다.


넌 항상 이렇게 기다렸었구나.




미안해. 쏘피야!






어젯밤 힘들었었나? 그래서 이런 건가? 

오늘은 오전에만 번 증상이 나타났다.

몸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녀석은 올스톱된다.

그리고 회색빛 눈에 두려움이 차오르며 흔들린다.


녀석은 그 눈빛으로 나를 찾는다.


"어? 쏘피야?! "

나는 녀석을 품에 가득 넣어서 꼭 안아준다. 

그리고 증상이 괜찮아질 때까지 계속 안아준다.

이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생각과 마음은 다른 영역입니다."


흘리듯 틀어놓은 유튜브의 어떤 채널에서

오은영박사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녀석을 잘 보내줄 거라고,

행복하고 편안한 일상 속에서 갈 수 있게 해 줄 거라고,

머리로 생각했었다.


내 품속에서 두려움에 가득 차서 경직된 몸을 어찌할지 몰라하는 녀석을 안고 있으니,

눈물이 난다.

죽어가는 과정이 이런 걸까.


울지 않기로 했지만,

쉽지 않다.


생각과 마음은 정말 다른 영역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4화 마법의 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