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동, 대엽 을지로
지난해 장안의 화제가 됐던 프로그램이 있다. 흑백요리사다. 흑수저 셰프와 백수저 셰프가 경쟁을 이루며 각자의 요리를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음식을 사랑하는 나도 이 프로그램을 꽤나 재밌게 봤다.
이후 철가방 요리사의 도량도 방문하고, 최현석 셰프의 중앙감속기도 가는 등 여러 곳을 가보았다. 시간이 흘러 흑백요리사2가 나온다고 할 때쯤, 잊고 있던 흑백요리사의 맛집 찾기를 지인 덕에 다시 하게 됐다. 흑수저 셰프가 운영하는 '보쌈집'이 있다고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기대감을 갖고 가게 됐다. 바로 을지로에 있는 '대엽 을지로'다.
대엽 을지로는 대엽 성수와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이다. 이 식당의 오너는 고씨네푸드의 대표 고석현 셰프로, 흑백요리사에는 4·8·10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남영동 양문을 운영하는 거로 소개됐는데, 사실 별로 기억엔 없다. 아마 그렇게 위로 올라가시진 않았나 보다.
어쨌든, '흑수저 요리사의 보쌈집'이라는 말 하나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서 간 이곳 대엽 을지로는 을지로 한복판에 있다. 을지로3가역 11번 출구로 나오면 정말 바로 앞에 있다. 간판은 매우 노포 같으면서도 내부는 깔끔하다. 누가 봐도 이북요리를 하는 곳 같지만,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흉내 낸 이북식당 같은 느낌이다.
안쪽으로 들어오면 꽤 공간이 넓다. 2층도 있는데, 2층에는 프라이빗한 공간도 있으니 단체 모임하기에도 제격이다.
대엽 을지로의 메뉴는 종류가 다양하다. 이북식 요리를 표방하듯, 평양냉면이 눈에 들어온다. 평냉이 꽤나 맛있다는 소문이 나 있는 만큼 먹어볼 필요를 느낀다. 그리고 오늘의 목표는 제육. 바로 돼지고기 수육이다. 역시 이북음식을 표방하기에 돼지고기 수육을 '제육'이라고 말한 점은 맘에 든다. 그리고 짜배기(잔 소주)도 있다. 마음 같아선 짜배기를 잔뜩 시키고 싶지만, 다 같이 왔기에 자제한다.
이밖에도 만두, 녹두지짐이 등을 시키고 기다리면 금방 음식이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의 시간이다.
이 집의 고기는 오겹살을 사용한다. 그래서 맛이 없기가 쉽지 않다.
고기의 육질은 좋은 편이다.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데, 고기의 결을 보나 고기의 부위 비율로 보나 좋은 편이다. 특히 비율이 상당히 좋은데, 오겹살은 자칫 느끼할 수도 있지만 비율 덕에 살아남았다.
살코기 부분이 오버쿡 됐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아마도 손님이 많다 보니, 빠른 시간에 고기를 많이 만들어야 하다 보니 생긴 일 같다. 고기를 오래 담가두다 보니 육즙이 빠져나가서 살코기 부분은 살짝 질겨진 감이 있다.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비계 부분이 부드러움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살코기의 질김은 어느 정도 감당할만하다.
김치는 따로 고기와 나오지 않는다. 명태회무침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게 보쌈김치의 역할을 대신한다. 보쌈김치가 아니라는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고기와 꽤나 잘 어울린다. 특히 오겹살이 가진 느끼함을 무침의 진한 양념이 잘 받아주기 때문에 조화가 잘 이뤄진다.
어쨌든 이 집의 고기는 10점 만점으로 따졌을 때 만점은 아니지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수준이다. 고기 부위 자체를 좋은 고기를 쓰는 것 같다. 그리고 잘 삶아낸 듯하다. 만약 제대로 된 시간에 맞춰서 조금만 조절하면 더 부드럽고 맛있을 것 같다. 어쩌면 느끼함을 조절하기 위해 일부러 살코기 부분을 오버쿡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전반적으로 꽤 맛있고, 괜찮은 집이다. 특히 이북식 식당을 표방하는 곳 중에는 꽤나 먹을만한 맛이다.
보쌈김치가 아닌 이 김치가 있긴 한데, 고기와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양념이 강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오겹살 특유의 느끼함을 잡아줄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굳이 김치와 같이 먹겠다면 모르겠지만 딱히 이걸 보쌈김치라고 내어서 먹을 정도는 아니었던 거로 기억한다.
차라리 보쌈에 명태회무침 조합이 더 나은 것 같다.
이북식당을 표방하는 곳의 킥은 역시 어복쟁반이다. 하지만 어복쟁반이 다른 곳보다 특별히 뛰어나서 여기에 어복쟁반을 먹으러 오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오히려 보쌈을 먹으러 온다면 추천이지만, 어복쟁반 먹으러 오시라고 말하긴 딱히 특별한 맛은 아니다.
오히려 평양냉면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약간의 밥을 주는데, 평양냉면을 먹고 모자랄 수 있으니 국물에 말아먹으라고 주시는 약간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평냉 국물은 진한 편이었는데, 너무 심심하지도 않아서 평냉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먹기에도 꽤 괜찮은 맛이었다.
만두도 맛있다. 비비고를 구운 것 같은 비주얼이지만, 안이 꽉 차 있고 육즙도 가득하다. 입가심 또는 애피타이저로 시켜 먹기에 제격이다. 어쨌든 이 집은 전반적으로 괜찮은 편 같다.
가게 밖으로 나오면 2차로 갈 곳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을지로 한복판이기 때문에 별의별 집들이 다 있기 때문이다.
흑백요리사 셰프가 만든 것치곤 생각보다 접근성이 쉽다는 점에서 한 번쯤은 도전해 볼 만한 그런 곳 같다. 을지로 한복판에서 세련된 보쌈집을 찾는다면 좋은.
흑백요리사 셰프가 만든 보쌈집, 대련 을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