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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은 세월이 깃든, 압구정 보쌈맛집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설매네

by 가위바위보쌈

조선 세조 때 권력을 휘두르던 신하 한명회는 갈매기와 친하게 논다는 뜻의 ‘압구’라는 호를 가졌다. 한명회는 자신의 호를 따서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는데, 왕명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종이 부쉈다고 알려졌다. 한명회의 덕일까. 압구정은 왜인지 모르게 ‘유유자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압구정은 조선시대를 지나 현대 사회로 오면서 전국에서 땅값이 비싸기로 손꼽는 곳이 됐다. 한강을 끼고 있는 현대아파트는 오랜 부의 상징이며 고급 백화점, 명품샵들이 늘어서 있다. 식당들의 가격대는 높은 편이라 외식 한 끼를 하더라도 마음 단단히 먹고 나가야 할 정도다.


그렇다고 압구정이 범접할 수 없는 곳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다. 압구정에도 숨어있는 가성비 맛집들이 있기 때문이다. 강남에서 ‘노포’라고 말하는 게 웃길 수 있지만, 압구정에도 지역 주민들이 사랑하는 최고의 노포가 있다. 30년이 넘는 세월이 깃든, 설매네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설매네 전경

설매네는 그야말로 역세권이다. 압구정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눈앞에 보이는 미승빌딩 지하에 있다. 말이 지하지, 계단 조금만 내려가면 바로 가게 입구가 나온다. 미승빌딩 전경에서도 ‘설매네’라는 간판이 보인다.


간판을 보며 감탄하던 중에 지나가던 할아버지들이 소리친다. “이야 설매네 오랜만이네” “설매네는 이 동네서 최고야”하는 칭찬의 말들이 들려온다. 쉽게 동의할 수 있을까. 일단 가게 외관만큼은 합격이다.


오전 12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미 사람들이 꽉 차있다. 근처 직장인들로 보인다. 아마도 점심시간을 활용해 국밥이나 칼국수를 먹으러 온 사람들 같다. 하지만 나의 목적은 하나다. 바로 이 집의 킥, 보쌈이다.


설매네는 안쪽도 자리가 많다. 방도 있는데 방 안에 여러 테이블이 있어서 딱히 프라이빗하진 않다. 하지만 자리와 자리의 간격이 넓어서, 꽤 편하게 앉을 수 있다. 내부 인테리어는 오래된 집에 온 느낌인데,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예전에는 방 쪽이 좌식이었을 것 같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유지하면서도 고객이 편하게 탈바꿈한 느낌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설매네 메뉴판

자리에 앉으면 메뉴판이 눈에 들어온다. ‘차림표’라는 이름으로 소고기국밥부터 칼국수, 만둣국, 접시만두, 만두전골이 상단에 자리하고 있다. 아래에는 술안주 느낌이다. 매운 갈비찜, 보쌈, 낙지볶음, 생선전, 해물파전, 녹두빈대떡, 탕평채 등이다. 이 집은 보쌈으로도 유명하고 탕평채로도 알려져 있다.


메뉴를 고심(?)한 끝에 보쌈과 함께 칼국수, 소고기국밥을 시킨다. 요리만 달랑시키기엔 허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설매네 밑반찬

잠시 기다리면 밑반찬이 세팅된다. 배추김치와 부추무침, 미역무침, 새우젓 등이 깔린다. 조금 더 기다리면 보쌈과 김치가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설매네는 두 번으로 나눠서 이야기를 전달해보려고 합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같이 보면 좋을 글: "흑백요리사 셰프가 만든 보쌈집"(https://brunch.co.kr/@redlyy/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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