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동 팔도보쌈
몇 주 전 쯔양이 다녀온 천하보쌈을 재방문했다. 쯔양은 다 잘 먹으니 맛없는 것도 맛있게 먹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금은 덜게 해 줬다. 천하보쌈은 가격은 좀 올라도 맛은 여전했다.(가격은 올라도 맛은 그대로인 보쌈집, 천하보쌈 https://brunch.co.kr/@redlyy/126)
가끔 저녁 늦은 시간에 배가 고프면 쯔양의 보쌈 먹방을 보곤 하는데, 오늘 소개할 집도 그중 하나다. 을지로 골목에 숨어있는 '팔도보쌈'이다.
팔도보쌈은 을지로3가역과 충무로역 사이에 있다. 지도상으로는 충무로역이 더 가깝다. 충무로역으로 나온다면 6번 출구를 활용해 쭉 직진하다가 SKC 건물을 끼고 좌회전에서 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을지로3가역으로 온다면 10번 출구로 나와서 쭉 걷다가 아시아경제와 서울영화사 건물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와서 다시 직진하다 보면 우측에 사진과 같은 간판을 찾을 수 있다.
간판에는 20년 전통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간판의 낡기 정도를 보아하니 10년은 더 된 듯하다. 30년 전통으로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그런 가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자리가 꽤 넓게 있다.
기본으로 세팅되는 반찬은 이렇다. 밥 한 공기 뚝딱 가능할 콩나물과 깻잎무침, 그리고 따뜻하게 끓여 나온 시래기 된장국이다.
과거 좌식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책상이 놓인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살펴본다. 가격은 정말 착하다. 다른 보쌈집이 2000~5000원까지 가격을 올릴 때 이 집은 아직 1만원 이하의 보쌈정식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 보쌈도 2만 4000원인데, 요즘 세상에서 저 가격에 보쌈을 먹기는 쉽지 않다. 메뉴판부터 행복해지는 그런 곳이다.
순두부찌개도 맛있다고 하고, 전도 가볍게 먹기 좋으니 보쌈과 찌개, 녹두빈대떡을 같이 시켜준다. 파전을 먹고 싶었지만 이날 하필 파가 다 떨어졌다고 하셨다.
전, 빈대떡 주문이 들어가면 남자 사장님께서 이렇게 직접 전을 만들어주신다. 영등포 토방골과 비슷한 느낌인데, 거기보다 훨나은 건 냄새가 덜 밴다는 점이다. 토방골은 전 부치는 냄새 때문에 힘들었는데 여긴 바깥으로 냄새가 나가는 느낌이었다.
보쌈은 여자 사장님이 만들어주시는 것 같았다. 남자 사장님은 주문을 전달하시고 전을 만드셨고 여자 사장님은 주방 쪽으로 들어가셨다. 두 분의 조화가 느껴지는 시간, 조금 기다리면 보쌈 한 상이 차려져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이 집의 보쌈이 2만 4000원인 건 아마도 양이 그만큼 많지 않은 덕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 담겨 나오는 양을 보면 실망감이 몰려올 수도 있다.
고기의 맛이 괜찮으면 그래도 이 정도의 양을 이해할 수 있다. 맛은 어떨까.
우선 고기의 질감은 퍽퍽한 편이다. 비계 부분은 괜찮은데 살코기 부분의 퍽퍽함이 남아있다. 식감이 그렇게 편안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맛없진 않다. 맛은 괜찮은 편이다. 잡내도 없고 향도 잘 잡았다. 과한 양념은 들어기지 않은 듯하다. 고기색이 하얀 편이고 양념의 향이 느껴지진 않는다. 고기 자체의 질이 엄청 뛰어난 편은 아니다. 그래도 잘 만든 보쌈이었다. 아쉬운 건 식감인데, 아마 오버쿡이 살짝 된 듯하다.
이 집은 김치가 고기보다 좀 더 괜찮았다. 막 특출 난 맛은 아니다.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강렬하지 않다.
약간 달달하고, 젓갈의 향이 매우 미세하게 느껴질 정도로 큰 양념을 하진 않았다. 고춧가루가 맛있는 고춧가루 같다. 달짝지근한 맛이 조금 느껴지며, 모양은 보쌈김치의 형태를 갖췄다. 조그만 육각형 정도에 해당하는, 나쁘지 않은 보쌈김치다.
이 김치가 고기의 부드러움을 덮어준다. 그래서 고기와 김치의 조화가 평균을 상회하는 맛을 선사해 줬다.
지인이 족발도 시켜보자 해서 보쌈 한 차례 더 먹은 후 족발을 시켰다. 족발은 딱히 기억에 나는 맛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족발은 만족오향, 성수족발처럼 달달한 맛을 좋아하는데 조금 싱거웠다. 아마 시장 족발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선호할 수도 있다.
냉정히 말해서 녹두빈대떡은 막걸리 한 잔 걸치기 좋은 무난한 맛이었다. 근데 순두부찌개는 특별했다. 너무 맛있었다. 감칠맛도 감칠맛인데, 순두부가 실해서 먹기 좋았다. 술안주로도 좋았다. 오래간만에 맛있는 순두부찌개를 먹어서 한 개 더 시켰다. 맛있다 정말로.
배부르고 맛있게 먹고 나오면 2차를 갈 곳은 빽빽하다. 바를 가도 되고, 호프집이나 이자카야를 가도 된다. 위로 가면 을지로, 아래로 가면 필동이니 선택지는 다양하다.
을지로 골목에 숨어있는 보쌈집, 팔도보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