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화양동, 궁중보쌈 건대점
보쌈집들을 여러 곳 다니다 보면 간판이나 리뷰에서 맛집인지 여부가 느껴지곤 한다. 고기 모습만 봐도 퍽퍽할 것 같다고 느껴지는 곳이나, 고기 외의 다른 찬들이 난잡하게 느껴지는 곳은 맛집일 가능성이 매우 떨어진다.
그런데 정말 가끔, 아주 가끔은 예상과 달리 맛있는 집도 있다. 반찬도 난잡해 보이고, 가게 내부도 '맛집'이라는 기운이 1도 안 느껴지는 곳인데 생각보다 괜찮을 때가 있다. 독박골 맛있는 집이 그랬던 것 같고, 유장원보쌈이나 선희네가 그런 느낌이었다.
오늘 소개할 집도 그런 집이다. 이 집은 누가 추천해주지도 않았고, SNS에도 뜨지 않았다. 그저 이 가게 근처에 갈 일이 생겨서 저녁을 먹어야겠다 생각하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궁중보쌈 건대점이다.
검색해 보니 이 집은 인하대점과 건대점, 두 곳뿐이었다. 대전 구암동에 '궁중보쌈'이라는 상호의 20년 전통 식당이 있지만 들여다보니 다른 곳 같았다. 건대점이 먼저인지, 인하대점이 먼저인지, 아니면 아예 다른 곳에 본점이 있다가 사라지고 두 곳만 남은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학가 앞에서 대학생을 타깃으로 하는 식당 같았다.
그래서인지 가격도 저렴했고 뭔가 분위기가 대학생들이 간편하게 먹는 곳으로 느껴졌다. 사실 보쌈을 안 좋아한다면 굳이 찾아갈 것 같지 않은 그런 집이었다.
궁중보쌈 건대점은 건대입구역 2번 출구나 3번 출구를 활용해서 오면 된다. 2호선을 탔으면 2번 출구, 7호선을 탔으면 3번 출구(이후 횡단보도 건너 이동)로 나오면 된다.
외부에는 이렇게 '스테이크보쌈 전문점'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는데, 상당히 인상 깊다. 스테이크 보쌈? 보쌈을 사랑하는 내게도 낯선 말이었다. 보쌈을 스테이크처럼 통으로 준 다음에 잘라서 먹는 건지, 아니면 스테이크처럼 소스를 활용하는 것인지.
이렇게 생긴 입구를 따라 올라가면 2층이 있다.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이 비주얼, 과연 맛집일지 약간은 의심스럽다. 사람들이 이걸 보고 이 가게에 들어올까? 물음표가 계속 찍히는 상태로 가게에 올라가 본다.
가게에 들어서면 꽤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간판에서부터 우려한 대로 사람은 생각보다 없다. 일하시는 분들도 한참 저녁 시간인데 쉬고 계셨다. 혼자 와서 밥을 먹는 사람이 몇 명 있었고, 앉아서 듣다 보니 배달이 가끔 들어오는 정도였다.
그래도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자리를 찾아 앉아본다.
내부엔 이렇게 자리가 많다. 그런데 통일되지 않은 식탁, 의자. 정말 맛집이라는 느낌은 1도 느껴지지 않는다.
주문은 테이블에 붙어있는 QR을 찍고 하면 된다. 그래도 메뉴판은 주방 쪽에 커다랗게 붙어있다. 직관적으로 적혀 있어서 메뉴와 가격을 확인하기는 쉽다.
대박이다. 가격이 단돈 1만원이다. 막국수를 제외하면 8500원. 거의 예전에 싸움의 고수가 처음 나올 때 가격이다. 구성도 알차다. 보쌈고기에 공깃밥, 김치찌개와 막국수까지. 도대체 이러고도 장사가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푸짐하다.
더 놀라운 점은 음료수가 1000원이라는 것이다. 메뉴판에는 2000원이라고 돼있는데, QR로 들어가 보면 1000원이라고 떴다. 그래서 스테이크보쌈 정식과 제로콜라까지 총 1만1000원에 주문을 마무리했다.
주문을 하고 조금 있으니 이렇게 밑반찬과 밥을 가져다주신다. 근데 도대체 저 밑에 깔린 쟁반은 무슨 의미일까. 음식을 더 맛없어 보이게 하는 이 알록달록한 반찬 그릇과 쟁반... 약간 식욕을 떨어트리긴 했지만, 배가 무척 고픈 상태여서 기대감이 사라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다 보면 찌개, 고기가 순서대로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의 시간이다.
이 집의 고기는 질기다.
우선 썰린 상태에서 육즙이 다 빠져나가게 익힌 건가 싶을 정도로 살코기 부분이 상당히 질기다. 못 씹을 정도는 아닌데 내가 추구하는 부드러운 보쌈과는 거리감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식감은 별로라고 평가하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쌈을 만드는 방식이 '두 번 삶기'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 번 삶은 걸 다시 삶으면 보쌈이 머금고 있는 육즙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만약에 이미 육즙을 머금고 있던 걸 썰어서 다시 삶았다면 고기가 퍽퍽해지게 된다. 조리 방법에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냥 한 번만 삶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이 집의 고기 맛은 괜찮았다. 딱 먹었을 때 '오 생각보다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다. 간장 베이스라 그런지 짭짜름한데, 적당히 조화롭게 간이 배어 있었다. 마치 동파육 같기도 하고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먹어본 듯한 맛이었다. 달리 말해 기존의 보쌈집들과는 다른 새로운 맛이었다.
어떻게 보면 약간 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간장으로 양념이 돼 있던 영향이 크다. 그래도 맛 자체는 간도 잘 스며들었고 괜찮은 편이라 느껴졌다.
냄새도 전혀 안 났다. 간장 베이스에 두 번 삶았는데 냄새가 났다? 그럼 이 집은 사라져야 한다.
여하튼 잡내도 없고 간도 괜찮아서, '자극적인 고기'를 찾는다면 꽤 추천해주고 싶은 집이었다. 아쉬움은 고기가 질기다는 것. 그러나 비계 비율이 높은 곳을 먹었을 때는 그 질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그나저나 왜 스테이크 보쌈인진 모르겠다. 고기를 두툼하게 잘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그냥 별칭? 모르겠다.
이 집의 또 하나 포인트는 김치찌개다.
스테이크 보쌈을 시키면 사이드로 나오는 건데, 안에 김치가 가득 든 김치찌개를 기대하면 안 된다. 가격도 이렇게 착한데.
그래도 가격대비 나쁘지 않은? 김칫국 같은 김치찌개다. 건더기가 많진 않았지만, 밥과 함께 먹기 나쁘지 않은. 김치 쪼가리와 두부가 조그맣게 들어간 김치찌개다.
마지막 포인트는 막국수. 그래도 1만원의 가격에서 이 정도의 막국수를 먹을 수 있다니 감사하다. 막국수를 뺀 8500원 정식을 먹어도 괜찮을 것 같지만, 배부르게 잘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먹는 게 나을 것 같다. 다채로운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막국수의 맛은 평범하다. 새초롬한 소스에 양배추가 썰려있고, 면이랑 같이 먹으면 아삭아삭 씹힌다. 사실 막국수라기엔 쟁반국수 또는 쫄면에 가까운 면의 식감이다. 그냥 평범한 국수다.
보쌈과 막국수, 김치찌개를 아울러서 먹다 보면 어느새 배가 꽉 찬다. 양파도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으면 배가 불러서 일어나기가 싫다.
그래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나서 밖으로 간다. 거리는 네온사인이 화려하고 식당은 많다. 2차도 고민 없이 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집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고기 삶기 정도와 그릇만 바꿔도 더 뛰어난 맛집으로 거듭날 수 있단 생각이 계속 든다. 어쨌든 맛은 좋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릇 디자인과 책상 정도를 바꾸면 어떨까.
아쉬움이 남는 맛집, 대충 볼 땐 맛없어 보이는 궁중보쌈 건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