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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Dec 14. 2023

족발은 보쌈을 이길 수 없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회기왕족발보쌈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회기왕족발보쌈 메뉴판

보쌈을 좋아하는 내게 시비를 걸어오는 친구들이 종종 있다. 그 친구들은 '족발'을 내세우며 보쌈은 별로라고 공격한다. 족발 껍데기의 쫀득함을 보쌈은 이길 수 없다고. 그렇게 공격하며 웃기 마련이다.


그런 공격을 단 한 방에 무색하게 만드는 집이 있다. 족발도 팔고 보쌈도 팔지만, 이 집에서 족발을 먹으면 바보 소리까지 듣는다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다. 바로 회기동 '회기왕족발보쌈'이다.


이 집은 경희대학교 앞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보쌈집 중 하나다. 이름에 족발이 먼저 붙음에도 보쌈으로 유명하다. 각종 방송에도 소개됐고, SNS에도 한참 올라오곤 했다.


처음 이 집을 방문한 건 4년 전쯤. 그렇게 보쌈이 맛있고, 김치가 장난 아니라는 소문을 듣고 방문했다. 그런데 방문하자마자 보쌈이 없어서 족발을 먹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제발 보쌈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사장님이 "삶아야 한다. 40분은 기다릴 텐데"라고 했다. 그래서 40분을 기다려서 먹었고, 정말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안고 이 집을 찾아가곤 했다. 이 집은 경희대학교와 회기역을 잇는 거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경희대생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위치에 있다. 버스를 타고 가거나, 회기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찾기 쉽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리가 몇 개 없어 보이지만, 당황할 필요가 없다. 지하에도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거의 90도에 가까운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지하 자리가 있고, 내려가서 다시 다른 길로 올라가면 화장실도 있다.


사람이 항상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끄러움은 감수해야 한다.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한다. 족발이 메뉴의 위쪽에 있지만, 고민하지 않고 보쌈을 시키면 된다. 쟁반국수까지 곁들이면 좋다. 안 시키면 주문받는 분이 물어보기도 한다.


보쌈을 시키면 우선 된장시래깃국이랑 상추, 마늘 등을 자리에 갖다 준다. 물은 셀프다. 된장국을 조금 먹으며 목을 축이고 있으면 아름다운 모습의 보쌈이 등장한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회기왕족발보쌈 보쌈 대자

때깔만 봐도 곱다. 이 집은 특별히 고기보다 김치를 먼저 설명하고 싶다. 김치로 더 유명한 집이고, 김치가 정말 특이하기 때문이다.


일전에 족발보다 보쌈이 더 맛있는 이유라는 글을 쓰며 '삼각지왕족발'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 집의 김치와 모양새는 비슷하다.


하지만 맛이나 구성은 정말 다르다. 삼각지왕족발이 맛없다는 건 아니지만, 이 집이 정말 뛰어나다.


우선 내용물은 배, 고구마, 무 등이 들어간 것 같다. 달짝지근한 것이 씹히는데, 사장님이 고구마라고 알려주셨다. 돌돌 말린 김치 위에 올려진 속들은 배의 맛이 강하다. 달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맛이다.


이 김치의 매력은 너무 안 익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보통 돌돌 말린 보쌈김치에 양념을 이렇게 올린 김치들은 익지 않아서 아무 맛도 나지 않거나, 쓴 맛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 집은 그렇지 않다.


양념은 양념대로, 밑에 깔린 배추김치는 배추김치대로 매력이 있다. 서로 어우러지면 환상적인 김치의 맛을 자랑한다.


문제는 김치가 달기 때문에, 김치만 먹기는 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기가 등장한다.


이 집의 고기는 두 가지 부위다. 전지(앞다리살)와 삼겹살이다. 전지는 비교적 가격이 싸기 때문에 국내산을 썼지만, 삼겹살은 칠레산을 썼다.


하지만 맛은 똑같다. 만드는 방식이 같기 때문. 고기의 질도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고기를 입에 넣는 순간 단맛이 확 밀려온다. 하지만 단맛만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 짭짜름함과 자극적인 기름의 맛도 같이 온다. 약간의 단맛과 이어지는 느끼함이 육질을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김치와 잘 어울린다. 김치가 달고 양념이 강하기 때문에 느끼한 고기를 잘 잡아준다. 느끼하지만, 매력 있는 고기는 김치의 과함을 잡아준다. 서로가 서로와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든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회기왕족발보쌈 보쌈김치

김치. 이 집은 정말 김치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던 종류다.


물론 내 입맛에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집 김치처럼 모든 보쌈집들이 김치를 만들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 집의 김치는 정말 온갖 노력이 깃든 것 같다. 오랜 시간 연구하고 고심한 흔적이 남은, 그런 김치의 맛이다. 특히 고기와의 조화는 더할 나위가 없기에, 정말 김치를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점도 있다. 김치도 달고 고기도 달아서, 자칫 물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너무 단맛으로 잡내를 없애려고 한 건 아닐지 의문도 든다. 하지만 생각보다 물리지도 않고, 아껴먹을 정도로 맛있었다.


4년 전, 보쌈을 먹고 싶어서 달려온 내게 4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던 사장님은 기다린 보람을 느끼게끔 맛있는 고기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시킨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주면서 보쌈을 기다린 것에 고마워하셨다. 회기왕족발보쌈은 그래서 따뜻한 곳이다.


이름에는 족발이 앞에 있지만, 이곳에서는 보쌈이 1등이다. 혹시라도 이곳에 갈 일이 있다면 족발보다는 보쌈을 강추한다. 물론 족발이 맛없다는 건 아니지만.


처음으로 돌아가서 보쌈을 좋아하는 내게 "족발이 더 맛있다"는 친구들에게 이 집을 꼭 소개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족발은 보쌈을 이길 수 없다. 회기왕족발보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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