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만 해도 다행이다

Singapore, SINGAPORE 2019. 05. 23 13:11

by 홍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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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을 넘길 무렵, 엄마와 둘이 여행을 다녀왔었다. 한 사람을 잃고 찾아온 거대한 상실을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군데군데 무너진 마음의 벽에 보수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계획은 없었다. 그저 하얀 눈이 쌓인 초록 녹차밭을 마음에 품고, 전라도 보성으로 차를 달렸다. 정작 녹차밭을 봤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차를 멈추고 내려서 봤던가. 경사진 녹차밭 꼭대기에 위치한 찻집 창가에 앉아 내려다봤던가. 아니면 그 두 번 다였던가. 스마트폰을 쓰지 않던 시기라 찍었던 사진도 어디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온전히 남아있는 기억은 낮을 소거한 뒤, 밤부터 시작한다. 바닷물로 온천을 할 수 있는 바닷가 옆 작은 리조트에 방을 잡았다. 살살 걸어 나와서 녹차를 먹여 키웠다는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겨울밤 바다를 걸으며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왔음을 실감했다. 새삼 어색해서 잠을 설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금방 잠들어 다음 날 아침 숙소 창가에서 내려다본 바다 풍경이 남아있다. 기억은 얼기설기 엮여있지만, 엄마는 생각보다 괜찮은 여행 메이트였다 생각했던 건 또렷하다.


언니는 최고의 여행 친구였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휴가를 맞춰 일본이나 중국 같은 가까운 여행지를 함께 다녀왔다. 오랫동안 서로 부딪히고 깎여 봤기에, 삐죽한 부분을 서로에게는 들이대지 않는다는 무언의 평화협정을 맺은 관계였고 거기에 여행 스타일마저 잘 맞는 사람이었다. 서로의 특이한 소비 행태나 독특한 취향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이여서 각자의 돌발 행동을 적당히 말리고, 적당히 내버려두는 편이었다. 이를테면 일본 여행에서 원하는 캡슐 토이(작은 캡슐 안에 들어 있는 장난감이 나오는 자동판매기)가 나올 때까지 가진 현금을 모두 탕진하는 건 내버려뒀지만, 4인용 코타츠(좌식 테이블 아래 화로나 난로를 넣고 이불이나 담요로 덮어 사용하는 온열기구)를 사서 항공 택배로 보내겠다는 건 말렸다. 우린 보고싶은 건 꼭 봐야 했기에 관광지로 유명하지 않은 곳도 현지인에게 물어물어 가며 씩씩하게 찾아다녔다. 하루 종일 걸어다녔어도 깔끔한 여행 동선에서 놓친 장소 없이 계획대로 다 돌아다녔다면 부르튼 발바닥을 주무르며 서로에게 쌍따봉을 날리곤 했다. 무엇보다 언니는 고상한 술집에서의 칵테일 한 잔보다, 호텔방에서의 캔맥주와 편의점 안주로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풍류를 아는, 내 기준에서 매우 매력적인 여행자였다.


결혼 후 언니는 잘 생긴 아들을 낳아 엄마가 되었다. 언니 덕에 엄마는 할머니가, 나는 이모가 되었고. 그렇게 할머니, 엄마, 이모가 된 우리는 2019년 봄, 운 좋게 각자의 남편을 떼어내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5살 조카와 함께이면서 오래 걷는 게 이젠 조금 버거우실 엄마를 모시고, 훌륭한 음식과 쾌적한 기반시설을 갖춘 도시를 좋아하는 언니와 내게, 싱가포르가 딱이었다. 이상했다. 살면서 싱가포르는 단 한번도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니었는데 그 때만큼은 최적의 여행지였다. 짧은 거리를 이동할 일이 많았는데, 더운 날씨 탓에 조카랑 엄마가 힘들까 그랩 택시를 타고 다니며 이동했다. 그러다보니 걷다보면 만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마주하는 즐거움을 놓쳤다. 싱가포르 도심에는 커다란 몰들이 즐비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펼쳐진 쇼핑 천국이로구나! 라며 반색했다. 그치만 조카의 물집 잡힌 발을 보호해줄 운동화를 득템하는 미션을 달성한 후, 우리에겐 쇼핑할 시간도 여력도 나아있지 않았다. 예약을 받지 않고 현장에서 웨이팅 해야 하는 음식점은 진작에 재꼈고, 편하고 넓은 테이블 좌석이 있고 메뉴가 나쁘지 않으면 밥을 먹었다. 우리는 다시 없을지 모를 우리들의 여행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겼다. 다만, 우리들의 예전처럼 한밤중의 조용한 바닷가 산책도, 촘촘하게 기워낸 여행 동선을 클리어한 후의 성취감에 취할 일은 없었다.


조카를 재운 후 밤마다 숙소 거실 쇼파에 저마다의 편한 자세로 둘러 앉았다. 매일 어김없이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사놓은 맥주는 씻고 나오는 시간동안 냉장고 안에서 충분히 차가워져 있었다.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아들을 놓칠새라 하루종일 방방거린 엄마, 그런 엄마를 앞질러 뛰어 조카손을 잡던 괴력의 할머니, 졸지에 가이드이자 통역사가 된 이모.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온 눈매를 낮은 조도의 노란 조명으로 대충 가리고, 한국에서 챙겨온 펑퍼짐한 파자마와 느슨한 헤어밴드를 장착하고 나니 아늑한 수다 자리가 완성되었다. 사촌들과 한 동네에서 한 초등학교를 다닐 때의 이야기, 방학 때 마다 강원도의 외갓집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이야기, 아빠와 멀어질 뻔 했던 늦은 사춘기 시절, 서로의 남편들 흉보기, 다민이가 태어나고 나서 달라진 모두들, 어느 덧 할머니 나이가 되었으나 여전히 아가같은 반려견 솔이. 오래 전 이야기들의 향연 속에 싱가포르에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잠깐 스치듯 나왔다 사라졌다. 줄곳 그곳에 없는 시간과 장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새벽이 되어 누구 하나가 꾸벅 졸아야 마무리 되던 그 자리는 밤이 오면 시작하는 여행 속 여행, 새로운 시간 여행이었다. 우리는 옛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먼 싱가포르까지 온걸까. 편의점에서 사온 감자칩과 창 밖으로 일렁이는 강물에 비친 클락키 야경은 조용한 바닷가 산책과 호텔 방에서 기울이던 맥주의 낭만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칠순이 곧이라, 우리도 남들처럼 따뜻한 나라로 날아가 리조트에서 마시고 쉬며 노는 여행을 꾸려보자 이야기를 나눴었다. 모두 휴가 일정만 잘 맞추면 전혀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일이, 지금은 너무 멀어 뿌옇게 보인다. 그래도 모든 게 다행이다. 더운 날 내쳐 달려대던 개구쟁이 조카의 달아오른 얼굴과 오랫동안 싱가포르 사진을 프로필로 해놨던 엄마의 카카오톡, 엄마의 배려 덕에 짧은 시간 함께 쇼핑을 했던 언니와 나까지. 욕심 부리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함께 한 싱가포르만 해도, 충분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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