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yazaki, JAPAN 2018. 01. 28 13:18
초록창에 '미야자키 맛집'을 입력했다. 줄줄이 나오는 블로그 포스트와 카페의 글들을 차례로 클릭했다. 먹기는 했을까 싶은 각 잡힌 설정샷, 호들갑스러운 맛 감상, 비슷비슷한 캐릭터 스티커가 등장하는 후기글 투성이다. 호들갑 지뢰밭 사이사이 보석같이 빛나는 포스팅도 있지만, 아주 드물다. 아, 멀미. '바다의 풍미를 한 입에 품는 맛',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할 맛집'처럼 도저히 동조하기 힘든 하이 텐션이 난무하는 글 몇 개를 읽고 나니 어지럽다. 빠르게 휙휙 넘겨가며 유독 반복하여 등장하는 식당을 체크했다. 뜻하지 않게 미야자키를 찾은 한국 관광객 단체 정모의 현장에 참여할 생각은 없으니. 그렇다고 여행지에 도착해서 발 닫는 대로 아무 곳이나 갈 모험심은 먹는 것에 있어서는 없다. 성의 없이 굴다가 진정성 있는 로컬 식당을 갈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날려버릴 배짱 또한 없기 때문.
소식가에 간헐적 페스코임에도 음식에 진심인 편이다. 국내 포털 사이트 유람을 마치고 타베로그와 구글맵, 쟈란넷에 접속했다. 숭고함에 가까운 자세로 묵묵하고 성실히 맛집 리스트를 점검했다. 여행지에서 음식점을 고를 때, 실패하지 않으려 세워둔 나름의 규칙이 있다. 우선 주인이 바뀌거나 업장 위치를 변경한 적 없는 노포(몇 대째 이어온 곳이라면 더 좋다)여야 한다. 특히 일본이라면 가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니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이다. 그와 함께 이왕이면 그곳 특산품을 주재료로 한 음식이 대표 메뉴여야 한다. 혹 그게 아니라면 지역의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향토음식이어도 좋다. 이렇게까지 식당을 찾는 것에 공을 들인 이유는 미야자키에서 허락된 식사가 단 한 끼뿐이었기 때문이다. 일정 상 미야자키는 공항에 내린 뒤 렌터카를 찾기 위한 거점 도시였다. 실패하지 않을 점심을 든든히 먹은 후, 어두워지기 전에 키리시마의 숙소로 가야 했다.
결국 고른 곳은 오구라 혼텐 본점. 아주 조금 찝찝한 건 이 식당은 포털사이트와 일본 웹 사이트 모두에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주력 메뉴는 흔해 빠진 치킨 난반이면서, 곁들여 먹는 타르타르소스에 혼이 담겨있다는 공통의 후기들에 마음을 굳혔다. 몇십 년을 이어온 노포인 데다 소스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면 음식이야 말할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멋 부리며 잰 체하지 않는 외관도 마음에 들었다. 공항에 내려 렌터카를 찾자마자 달려오니 점심 피크타임을 조금 넘긴 때에 도착했다. 적당히 소란스럽고 또 적당히 정돈되어 있다는 게 이 곳의 첫인상이었다. 벨벳 의자와 나무 테이블, 하얀 레이스 커튼, 어둡지만 광택이 있는 바닥 장판을 반짝이게 하는 밝은 형광등. 90년대 경양식 집과 패밀리 레스토랑의 중간쯤 되는 분위기였는데, 조화롭지 않지만 그게 또 아늑함을 줬다. 늘 정돈되어 있기 힘든, 그래서 가족들의 생활감이 묻어있는 가정집 느낌과 비슷해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깔끔하게 갖춰 입은 어르신 직원분께서 친절히 안내해주신 자리에 앉았다. 주문을 하니 얼마 되지 않아 머리 위에 뽀얀 김을 올린 음식들이 줄지어 나왔다. 가게가 준 인상과 일관성 있게 음식이 담긴 그릇 역시 엄마 집 주방에서 꺼내온 듯한 익숙한 디자인이었다. 포실포실 잘 익은 치킨 덩어리를 작게 잘라 유명한 타르타르소스를 듬뿍 찍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치킨에서 베어 나오는 고소한 기름과 새콤한 소스의 조화는 필승 조합이다. 짭조름한 메인 메뉴를 먹고 나니 자연스레 그다음으로 생각나는 건 밥. 역시 밥이다. 치킨 난방과 함께 서빙되었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던 밥을 그제야 봤다. 생각보다 넉넉히 담겨있었다. 순간 '밥이 좀 많네. 남길지도 모르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한 숟가락 먹었다. 띠용. 이게 뭐지? 밥이 너무 맛있었다. 다시 한 숟가락을 떠서 눈 앞에 두고 유심히 바라봤다. 그리고 맨입에 다시 밥을 한 숟가락 먹었다. 좋은 품종의 쌀일 것임은 분명했고, 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떡밥도 아닌, 적당히 찰진 않은 오묘한 식감이 좋았다. 대부분 이 곳의 타르타르소스를 칭찬했지만, 뜻밖에도 난 이 집의 밥에 푹 빠졌다. 남길 줄 알았던 밥은 치킨 난방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져 결국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사진 찍을 때만 해도 몰랐다. 그래서 위쪽 귀퉁이에 비죽이 나온 접시에 담긴 밥을 찍을 생각도 못했다. 미야자키를 떠나 규슈를 돌아다니는 동안,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이 집의 쌀밥이 내내 떠올랐다. 엄청나게 유명한 맛집인데 살짝 군내가 올라오는, 어쩜 어제 짓고 남은 밥을 내놓았는지도 모를 식당을 스칠 때도 생각난다. 나는 음식에 진심이었지만, 이들은 쌀밥에 진심이었다. 왜 노벨상에 음식 부문이 없는지. 만에 하나 생긴다면 첫 번째 수상은 이 곳의 쌀밥이 차지했으면 좋겠다. 쌀밥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는 부분에서 수년간 성과를 내고 있지 않은가. 흠. 어차피 일어나기 힘든 일이니, 나 역시 글로나마 이 곳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몽니 좀 부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