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기 전까지 몰랐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과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이렇게까지 개연성이 없을 줄은. 결혼식의 준비 과정은 '함께 살아야 하니 일단 서로를 괴롭혀서 인내심의 한계를 체크해보자' 내지는 '우리 사랑을 응원해주시는 분들(특히 부모님)의 만족을 위해 한 몸 불사르자' 같았다. 거기에 우리보다 날씬하고 얼굴 작고 키가 크지만 아주 조금 우리를 닮은듯한 사람들이 있는 웨딩사진 얻기까지.(우린 결국 웨딩촬영은 하지 않았지만.)
결혼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둘 다 자리만 있으면 드러눕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신혼여행으로는 휴양지에 가서 어지럽힌 몸과 마음을 쓸고 닦겠다는 남편의 말은 너무나 일리가 있었다. 더욱이 내 의견에 단 한 번도 반대하지 않고 오직 묵묵히 따라주기만 했던 사람이, 딱 하나 원하는 걸 너무나 착한 말투로 이야기하니 더더욱. 여행지는 남편의 뇌리에 이 세상의 마지막 이상향처럼 남아있는 푸른 지중해의 우윳빛깔 섬, 산토리니로 결정했다.
"터키의 도시 한 군데 정도는 들렸다 갈 수 있지 않을까?"
슬쩍 운을 떼 본 뒤 구남친 현남편의 낯빛을 살폈다. 때마침 찾아온 석가탄신일 연휴와 두 번의 주말을 붙여서 짠 신혼여행 일정이었다. 실은 결혼식 날짜를 그때로 정한 이유이기도 했다. 회사원에게 다시는 오기 힘든 2주에 가까운 여행 일정. 그것도 한적한 비수기인데. 썬배드와 풀사이드바에서 노닥거리는 걸로만 보내기엔 뭔가 아쉬웠다. 밋밋한 휴양지 일정에 역동적인 문화와 오랜 역사의 흔적이 진하게 남은 도시 여행을 살짝 끼얹지 않으면 안 되지 싶었다.
다행히 인천에서 산토리니까지 가는 직항이 없었기에, 이스탄불을 거쳐 가는 것이 오히려 좋은 코스가 되었다. 물론 파묵칼레의 계단식 석회 온천과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투어가 뇌리를 스쳤지만 보류했다. 당시도 시리아, 이라크와 이란 등과 맞닿은 터키의 동쪽은 잦은 분쟁과 테러가 일어나고 있었기에 허니문에 어울리지 않는 긴장감을 띄고 여행을 하고 싶진 않았기에. 그래도 좋았다. 이스탄불이 어떤 곳인가. 기원전 비잔티움이라 불리며 번영의 시초를 쌓고, 십자군의 점령 전까지 당당히 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이어졌으며, 그 이후 오스만 제국의 번성기까지 담고 있는 곳 아닌가. 약 1,600년 넘게 수도의 명맥을 이어 온 세계사의 중심 무대를 밟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넉넉지 않은 일정이어서 마음이 급했다. 숙소에 짐을 말 그대로 '던지듯' 놓고 나왔다. 재빨리 일정을 시작해야 했기에 이동하며 먹을 수 있는 요깃거리를 찾아보았다. 숙소 앞 번화가를 둘러보니 크고 작은 케밥집이 즐비했다. 걸으며 먹기에 케밥이 딱인듯해 가게 바깥쪽 카운터에 주문했다. 외국인인 우리를 본 주인아저씨가 슬쩍 말을 건넸다.
"어디에서 왔어요?"
"한국이요."
"아녕하쎄요."
"하하하"
전형적인 흐름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몇 마디 더 나누며 아저씨의 진솔한 입담에 빠져들었다.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이 만드는 음식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분이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걸어 다녀도 좋을 거고, 이왕이면 넓은 거리보다는 좁은 골목으로 다녀보라고 했다. 허니문이라고 했더니 모퉁이의 작은 레스토랑도 추천받았다.(저녁에 가서 로맨틱한 식사를 했다.) 건네받은 뜨끈뜨끈한 케밥의 온기만큼 열정적이고 온화한 분 덕에 우리는 숨을 고르고 운동화 끈을 조여 맸다. 이 도시에서는 제법 걷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이후 구글맵이 알려주는 길을 버리고 방향만 설정한 채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녔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느긋하게 농담을 건네 온 도시, 이스탄불의 박자와 흐름을 존중하며.
이스탄불의 구도심을 걸어 다녔다. 웬만한 관광지는 대부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자리해 있었다. 아야 소피아 성당, 예레바탄 지하 궁전, 블루모스크, 그랜드 바자르 등을 보고 탁심광장으로 향했다. 탁심광장의 명물 빨간 트램이 정차한 틈을 타 뒷꽁무니에도 살짝 매달려봤다. 활기찬 이스티클랄 거리를 걸어 갈라타 다리 쪽으로 향했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군밤을 팔고 있길래 사 먹었고, 이국적인 노래 선율이 들리는 곳으로 걸어 엔틱한 악기 가게도 구경했다. 걷다 보니 한 건물 입구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저 멀리 보였던 갈라타 탑에 도착한 것이다. 눈치껏 줄을 서고 탑에 올랐다. 갈라타 다리와 보스포루스 해협을 내려다보며, 바람을 맞았다. 거대한 모스크의 봉긋한 지붕과 탑이 비죽이 솟아있는 모습은 멀리서 봐도 생경스럽다. 먼 곳에서부터 한데 모여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도 서울과 달라 낯설다. 그래서 좋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이 제법 식을 무렵 탑을 내려왔다.
갈라타 다리 근처는 고등어 케밥의 성지였다. 한국인에게 너무나 친숙한 갈라타 다리 근처의 에밀 아저씨, 우리도 만났다. 무뚝뚝한 얼굴로 건네는 물티슈에는 어딘지 실물보다 귀여운 아저씨의 얼굴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글로 '안녕하세요. 한국'과 같은 인사말이 쓰여 있었다. 두툼한 손에 비해 앙증맞은 핀셋으로 세심하게 고등어의 뼈를 바르던 아저씨. 큼직한 고등어를 빵 위에 척 올리고 터질까 걱정될 정도로 많은 양의 구운 채소를 넉넉히 넣어 주었다. 고등어 케밥의 맛은? 말해 뭐하겠나. 마땅히 먹을만한 곳도 없는 노상의 가판대였지만(요즘엔 앉아서 먹을만한 간이 테이블이 생겼다고는 한다.)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만큼의 맛이었다. 뿌연 연기 속에서 홀연히 생선을 굽고 계시던 에밀 아저씨. 건강히 잘 계시기를 기원한다.
이스탄불 여행 후기를 읽다 보면 종종 이 나라 사람들의 오지랖 때문에 불쾌했다는 이야기를 본다.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만난 분들 대부분 상냥하고 친절한 분이었다. 내 짐을 들어주던 남편에게 "그쪽은 매니저로 따라온 거죠?"라고 말하는 상점 직원분이라던지, 식사 후 "그럼 내일 또 봐요. "라고 인사를 하는 식당의 웨이터 분이라던지, 뭔가 일상이 큭큭거림으로 가득한 장난기 넘치는 터키 아이스크림 아저씨들의 도시 같았다. 끈적한 이탈리아 아재들의 느낌과는 분명 다른.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탁심 광장의 테러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선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도시가 더 이상 이름 모를 자들의 욕심에 의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