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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Oct 22. 2023

우리는 그저 작은 평교사일 뿐이라고요

  학교에서 수완과 처세와 눈치라는 건 언제나 등 뒤에 찰싹 붙이거나 주머니 속에 잘 넣고 다녀야 하는 덕목이더구나. 이것 중 하나라도 놓치는 일이 발생하면 수완, 처세, 눈치가 가진 원래 의미의 세계관 확장이 일어나. 교사로서의 자질 혹은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소환되기도 하고 연차에 맞춰 사회적 지능이라는 것도 함께 상승해야 옳은 게 정설처럼 돌곤 해. 신규 업무를 잘 수행하는 것보다 잘 거절하는 게 더 큰 능력이 될 때가 있어. 학생 상담을 빠르고 신속히 마치면 교사로서 멋진 스킬을 발휘했다고 부러움을 사기도 해.   


  서로의 능력과 자질을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건 학교 안에 은연중에 자리한 서열 때문 아닐까 생각해 봤어. 법적으로 카스트 제도가 폐지된 인도에도 곳곳에 관습처럼 계급 사회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더라고. 영국이나 태국 같은 나라에도 상류층, 상위층 같은 개념을 사회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다며. 학교도 비슷한 것 같아. ‘관리자, 부장을 제외하면 우리 모두는 평교사’라는 말은 내가 애용하던 농담이었어. 말할 때 자조 섞인 미소 추가가 필수야. 


학교 민원 평교사들이 떠 안아, 교장·교감이 1차로 책임져야
"장학사가 평교사로?" 교육청 인사 파장 확산
23년 차 평교사가 승진 안 하려는 이유


  포털 사이트에서 '평교사'로 언론사의 기사를 검색해 보니 저런 제목이 나왔어. 읽어보진 않았지만 제목만 봐서는 밝고 명랑한 내용을 기대하기 어렵고, 어딘지 외롭고 쓸쓸한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을까 싶더라. 교장이나 교감, 장학사 부류와 반대편에 서 있는, 수는 훨씬 많은데 힘을 다 합쳐도 대척하기 힘든 사람들이 패배감으로부터 숨고 싶을 때 쓰는 이름 같아 보여. 근무 내내 평교사였던 난 어느 해에도 평범한 교사도, 평등한 교사도 되어본 적이 없었어. 사실 관리자와 평교사 외에도 학교 내부의 교사 사회에는 훨씬 다양한 위계가 존재하긴 해. 내가 근무한 몇 개의 학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학교 안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서열에 대해 정리해 봤어. 하하하. 너무 진지하고 우울해질 수 있으니 일단 한번 크게 웃어보고 시작.  



첫째, 교장과 교감

관리자. 주로 별실에서 근무.(교장은 개인실, 교감은 제일 여유로운 교무실 한쪽에 파티션으로 막아놓은 공간 이용) 업무량에 비해 책상 사이즈가 큼.(부러움) 교육청 주도 사업 시, 업무 분장 시 등 특정 상황에서 불합리와 막말의 힘 폭발. 수업도, 담임도, 행정 업무도 맡고 있지 않지만 발언권 가장 셈. 둘은 학교 상황에 따라 협력 관계도, 원수 지간도 될 수 있음.  


둘째, 부장교사

물론 부장이라고 다 같지 않음. 행정 1,2팀인 교무와 연구가 원투탑 권력을 가짐. 나머지 부장은 학교마다 조금씩 다른 듯. 교감으로 가려 사력을 다하는 야망가라면 부서의 성과를 위해 부원들을 달달 볶을 수 있음. 가끔 일만 죽어라 시키려고 만든 새 부서에 끌려온 불쌍한 젊은 부장도 더러 있음.


셋째, 원로교사

세상이 변했다 해도 여전히 현장에선 건재한 호봉의 힘, 짬의 힘. 교장 혹은 교감과 막역한 사이라면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 학교의 주요 가십을 전하거나 관리자가 무리하게 진행하는 사업에서 좋게 좋게 하자고 거드는 여론을 형성하는 것 등으로 모종의 거래를 한 사이. 베네핏으로는 꿀정보 먼저 입수, 기피업무 선정 시 면책 특권 등이 있음. 


넷째, 주요 교과 교사

국영수 교사. 아무도 영수국, 수국영이라 하지 않듯, 사람들 입에 붙어있는 순서가 마음속 내재된 순서일 것. 교과 관련 협의회나 행사, 시수 배정, 충돌할 때마다 주요 교과 교사가 은근히 좋은 것을 선점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곤 함.


다섯째, 담임교사

여기부터는 사실 나눠가질 권력이 없음. 요즘엔 학부모나 학생 등과 깊게 연을 맺는 게 탐탁지 않아 대부분의 교사가 담임 맡기를 기피함. 그래도 교사는 담임이지, 수업이지. 같은 상징성으로 남은 분류보다 한 단계 높였을 뿐 실질적인 차이는 거의 없음. 심지어 잔업무량은 폭발인데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함. 

   

여섯째, 비담임 교사 & 비교과 교사

위치가 애매해서 주로 잡무 담당의 가능성 높음. 학교 행사 시 주차 관리, 학부모 응대, 귀빈 접대 업무 우선순위가 됨. 행정 업무에 따라 부서 기획을 맡은 비담임 교사가 아주 가끔 큰소리치는 걸 보긴 했지만, 업무량이 그만큼 많아서 악에 받쳐 나오는 신음인 경우와 혼동되기도 함.

  

일곱째, 기간제 교사와 시간제 강사

담임교사나 기피하는 행정 업무가 폭탄 돌리기처럼 돌고 돌아 결국 떠맡게 되는 경우 허다함. 업무 분장 전까지, 혹은 새 학기 시작 당일 까지도 업무가 바뀜. 사립학교의 경우 보직 교사들의 정교사 라이팅 심함. 교무실 자리 배정, 교과별 시수 지정, 지정주차일 경우 주차장 자리, 자율학습 감독 로테이션 등 사소한 것까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나열하기 좀 창피할 정도.    


-이 중 2개 이상 포함되는 교사인 경우 하위 그룹에 속함.(예, 2학년 1반 담임을 맡은 국어 기간제 교사는 일곱 번째 그룹이다.)

-이 진부한 권력관계에서 초연할 수 있는 진정한 권력자 그룹인 이사장의 친인척 라인의 교사(사립학교의 경우만 해당)는 열외.

-초임 교사, 연차가 낮은 교사는 누구나 한 번씩 지나가는 자리라 제외. 정교사도 기간제 교사와 대비될 때 반사이익을 얻는 자리이므로 제외.   



  몇 번의 기간제 교사 근무, 공립과 사립학교에서의 경험, 정교사가 되고 나서 바라본 것들까지. 얼추 10여 년의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쓴 거지만 학교 급, 지역, 규모, 교육과정 등 일선 학교가 처한 상황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 학교에 있을 땐 저 견고한 카르텔 안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었어. 기간제 교사일 때 받았던 상처를 누구에게 돌려주진 않았지만, 특별히 질서를 거스르려 하지 않고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는 순간엔 늘 빠짐없이 치욕스러웠어. 


  어떤 부당한 대우를 내 힘으로 피해봤자, 결국 누군가에게 이 부당함이 돌아갈 걸 아는 것으로 인한 죄책감도 쌓이는 연차보다 더 빠르게 쌓였지. 그럼에도 난 또 네가 서 있는 일선 현장이 조금 더 나아져 있기를 바라는 모진 희망을 품고 있었단다. 퇴근을 한 네가 발갛게 부운 눈으로 맥주 한 잔 사달라며 우리 동네에 왔던 저녁날 전까지. 끝까지 듣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은 진부한 이야기를 들으며, 네가 더 단단하고 강해져야 한다고 다독였지. 돌림노래처럼 10년 전, 5년 전에도 있었던 에피소드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만들어질까. 아마 또 울게 될 일이 생기겠지만, 다음엔 울지 말고 천천히 얘기하렴. 다 들어줄게.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작성한 하나의 의견입니다. 

일반화, 확대 해석 등을 통한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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