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걸어가신 선생님들의 발자국 따라 걷기 #2
든든한 언니샘들
"야, 얘 너 동생이야?"
"응. 같이 놀자."
"그래, 얜 깍두기 하면 되겠다."
어렸을 때 언니를 따라서 놀이터에 가면 언니 친구들이 있었어. 성인이 되어서야 아래위 3살 차이쯤 아무것도 아니지만 4살과 7살, 7살과 10살처럼 어린 시절의 3살 차이는 꽤 큰 편이었지. 막내 동생이 어려서 엄마보다는 주로 언니의 손을 잡고 따라다녀야 하는 운명이었던 난 언니 친구들과의 놀이에서 늘 깍두기였어. 깍두기는 인원을 나누거나 역할을 정해서 놀 때, 한 사람의 몫은 못 하는 사람도 놀이에 낄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 만든 자리야. 반대로 놀이에 참여한 다수보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도 깍두기가 되기도 했어. 우리는 이미 7살 때 놀이터에서 상냥하게 배려하며 관계의 균형을 잡는 법을 체득했지만,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무수한 경쟁에 떠밀리며 서서히 잊어버린 건지도 모르겠어.
관리자와 의견 충돌이 있어서 답답한 상황이 생겼어. 업무 분장에 없는 새로운 업무를 추가하자는 건데, 그 이야기의 시작이 '내가 어디 어디 학교에 가서 봤는데 그 사업 너무 좋더라. 홍 선생이 맡아서 좀 해줘요.'였어. 아니, 학교 상황과 학생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멋지고 좋아 보이는 사업을 연간교육계획 수립 때도 아니라 학기 중간에 하라니. 당시의 내겐 어쩌면 교사로서의 교육 철학의 근간을 흔들지도 모르는 요구였어. 일전에 컨설팅 장학의 늪에 빠졌을 때 선배 선생님의 도움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엔 혼자 끙끙 앓는 시간을 줄였어. 학교 안에서 믿고 따르던 선배 선생님 한 분께 은밀히 말씀드려 보고 좋은 조언을 얻었어. 그런데 아무래도 교내에 계시다 보니 그분도 관리자와의 개인적인 친분이 있고 멀리 돌아가면 업무 적인 이해 관계도 조금 있을 수 있겠더라고. 소수 교과의 교사이다 보니 교내에는 나의 상황을 가깝게 느낄 분도 안 계셨고.
그래서 인근 학교에 계신 같은 교과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해보기로 했어. 연락처는 지역 교과협의회의 총무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린 후 연락처를 전달받았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지역 교사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메신저도 있고, 업무 포털에서 학교 이름과 교사 성명으로 검색하면 보낼 수 있는 내부 메일 등 좀 더 공식적인 방법으로 연락을 드릴 수도 있었어. 그렇지만 조금 번거로워도 전화를 드리고자 한 건 그게 조언을 구하는 자가 취해야 할 예의 같았어. 참 옛날 사람이지? 하하. 카톡으로 이별도 하는 시대에 말이야. 난 여전히 문자보다는 목소리의 힘을 믿어. 아, 어쩌면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조곤조곤 말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도 같고.
서너 분의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어. 처음에는 낯선 이의 전화에 조금 당황하신 듯했지. 차분히 전화를 드리게 된 상황을 전했더니 정말 선생님들 어느 분 하나 귀찮아하지 않고 몰두해 주셨어. 내가 처한 문제 상황을 면밀히 검토해 주신 뒤 나름의 솔루션도 주시고 각 학교의 상황과 철학이 다르므로 우리 학교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말씀도 해주시고. 보이진 않았지만, 전화기 너머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계신 선생님들의 모습이 떠올랐어. 냉철한 조언을 해주시는 분도 계셨지만 버럭 하며 화를 내 주신 선생님도 계셨어. 학교에서 어쩜 그런 요구를 교사에게 할 수 있냐며.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나눠주신 선생님들의 지혜로운 의견과 기꺼이 공유해 주신 각 학교의 해당 사업 관련 데이터를 잘 정리해 타 학교 사례 분석 보고서를 쓴 뒤 관리자에게 제출했어. 보고서에 대한 피드백은 특별히 없었지만 나를 향했던 새 교육사업의 푸쉬는 거짓말처럼 사라졌어. 다른 부서에서 하지도 않았고. 일을 기피하고자 그랬던 게 아니라,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진심을 왠지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것 같아서, 원래 하던 일들에 더 집중했어. 이상하게 발현된 동기부여였지만 다행히 해당 일의 성과가 좋아서 관리자를 볼 면은 섰지.
새 사업 담당이 되지 않은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일어났어. 그때 전화로 의견을 여쭙고 도움을 읍소했던 선생님들과 교원공동체 모임을 하게 된 거야. 그때 전화 통화를 할 때 잔뜩 화를 내주셨던 선생님 계시지? 그 선생님께서 주축이 되어 모임을 완성해 주셨어. 첫 모임 때 선생님들께 덕분에 난관을 잘 극복했다고, 존경과 감사를 듬뿍 담은 인사를 했던 게 생각나. 선생님들과는 두세 달에 한 번씩 만나서 교과 관련 주제 협의도 하고 조촐한 세미나도 했어. 어느 해에는 교과 연계 독서도 하고, 날씨가 좋을 때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소풍도 갔지.
해마다 인원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지만 난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퇴직 전까지 모임에 계속 참여했어. 협의 이후 가진 티타임이나 회식 때 선생님들의 경험담을 듣는 건 어느 학식 높은 교육전문가의 저서에서도 찾을 수 없는 진짜 꿀팁이었지. 난 모임의 막내라서 모임의 행정업무와 총무를 맡았는데 기꺼이, 너무 즐거운 마음으로 했어. 정말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거든. 협력수업, 진로연계수업, 지역사회 기관 연계, 창의체험활동, 학생상담처럼 각 선생님들마다 몰두하고 계신 교육 주제가 있잖아. 잘 모르고 경험이 미진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날엔 깍두기처럼 설익고 부족한 의견을 드러내도 서로 보완해서 둥글고 빛나는 혜안을 만들곤 했지. 선생님들과의 만남에서는 누구나 깍두기가 될 수 있었어.
'사랑하는 언니샘들.'
선생님들과 만든 단톡방의 이름이야. 퇴직을 했지만 선생님들 모이실 때 한두 번씩 나가곤 해. 학교 밖에서의 내 삶과 선택도 응원해 주시고 여전히 따뜻한 손길로 다독여주셔. 사회에서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될 줄이야. 숨통이 트이는 모임이었어. 혹시 숨이 가쁘거나 답답하면 학교 밖으로 눈을 돌려봐. 학교 밖에도 멋진 분들이 계시거든. 일을 할 때 모퉁이 너머의 갈림길에 접어들면, 어디로 갈지 잠시 고민되잖아. 이 선택이 학생들의 성장에 최선일까? 교사로서의 나의 성장에는? 그 고민의 갈림길에 서서 바닥을 보면 여지없이 많은 발자국이 있을 거야. 먼저 걸어간 선배들의 흔적이지. 좀 더 깊이 파인 발자국이 있는 곳으로 따라 걸어보렴. 묵묵히 앞서 걸은 선배들의 뒷모습 어른 거릴 때쯤, 서서히 발 밑에 생긴 작고 예쁜 길이 보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