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헤프게 쓰기

글썽이는 애틋함으로_제주 일년살이 기록

by 홍지이


월요일인데 잔뜩 무기력한 날이었다.


제대로 마무리한 일이라고는 오랫동안 미뤄둔 메일 두어 통을 보낸 것과 저속노화 식단을 갖춘 삼시 세끼를 챙겨 먹은 것. 프라이팬 위의 부침개처럼 침대에서, 소파에서, 러그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집었다 폈다. 제대로 게으름을 부리고는 밀려오는 죄책감에 고급지고도 궁색한 변명도 읊조렸다.


'뭐 어때, 미술관과 박물관도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라고.'


늘어지는 마음의 결을 따라 게으름뱅이의 시선으로 둘러보니 오늘따라 한껏 새초롬한 표정의 바다가 보였다. 제주는 어딜 가나 금방 바다에 닿는다. 황송하게도 호사스러운 삶이다. 볼일을 보러 총총거리며 오갔던 길에 마주친 바다를 흘낏 보기만 했다. 원래 같았으면 기어코 어딘가에 차를 세우고는 창문을 활짝 열고 한참 바라보거나, 박차고 내려서 반려견 무늬와 해안가와 나란히 만들어진 인도를 느슨하게 걸었을 거다.


바다는 참 그렇다. 뭘 믿고 저리 맨날 예쁘고 난리인지. 마음 속에선 오늘도 이미 감탄의 축제가 열렸지만, 무관심의 심술을 부려보았다. 어차피 내일도 보고, 모레도 볼 수 있으니까 오늘은 헤프게 써볼게요. 하지만 이미 머릿 속에 바다 생각이 한가득이다. 바다 내음, 바다 소리, 바다 색깔, 바다에 떠 있는 고깃배들, 바다와 맞닿은 하늘의 안부, 바다와 나, 바다를 가기로 했던 약속, 바다, 바다, 바다.


바다가 말을 걸었다.

오늘은 텄고, 내일부터는 찰랑거려도 보고 철썩거려도 보라며. 그것도 싫으면 숨 참고 다이브라도.

분명 그렇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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