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너는 여기서 뭐 할 거냐?"
이곳은 제주 우리 집. 이사한 지 두어 달쯤이 돼서야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구색을 갖췄다. 때마침 섬의 봄을 만끽하기 위해 제주를 찾으신 시부모님을 집으로 모실 수 있었다. 환담을 이어가던 중, 대뜸 내게 질문을 던진 사람은 시아버지였다. 이어지던 대화의 흐름을 문장 하나로 단번에 뒤집고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자, 부럽다. 문장 안에서 다양한 접속 부사를 누릴 수 있을 테니. 아마 나는 눈치를 보고 있음을 들키지 않으려 눈치를 봤을 거다. 그리곤 힘을 주면 단단한 방패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 잔뜩 경직된 양 입술 사이로 말을 뱉었다.
'제주에 글쓰기 전지훈련을 왔는데요.'
머릿속에 떠오른 저 말 대신,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성과에 대해 주절 거렸다. 마침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고,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도 시작했으며 슬슬 준비해야 할 다음 책 구상도 합니다. 어떤 행동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어딘가 있을 테지만, 나는 그런 이와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동창이자 사촌 동생의 절친인 남편과 결혼을 하기로 했을 때도,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을 때도,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을 때도, 주말 부부를 해보기로 했을 때도, 그리고 여기 제주도로 오기로 했을 때도. 물론 고민의 시간은 짧지 않게 쓴다. 하지만 설명하기 위한 정의와 근거를 찾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 시간일 뿐이다. 번지 점프대에 올라 뛰어내리기 전과 비슷하달까. 결심을 세우고, 행하며 찾아가는 방식. 그게 내 삶의 질서라면 질서였다.
전지-훈련 轉地訓鍊
명사
1. 신체의 적응력을 개발ㆍ향상하기 위하여 환경 조건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하는 훈련.
선수단은 동계 전지훈련을 거치면서 기량이 눈부시게 달라졌다.
[표준국어대사전]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을 내가 만들어냈다. 글을 쓰기 위해 전지훈련을 떠난다니. 평소 글쓰기는 감정 노동으로 보이는 육체노동이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게 맞나? 에라. 모르겠다. 해보자, 전지훈련. 기량이 눈부시게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네댓 달을 살아보니 제주 여기저기엔 눈부시게 빛나는 영감이 흩뿌려져 있긴 했다. 기웃기웃거리다 반짝이는 것이라면 우선 주섬주섬 주워 담으며 이리저리 굴려보려 한다.
계속 글 쓰는 자로 남기 위해, 글로 도망치지 않으려 제주로 도망친? 글쓰기 생활자의 전지훈련기.
훈련의 시작에 앞서,
스트레칭 삼아 다 함께 라떼열사 김상중 씨가 외쳐주는 자존감 회복 주문부터 함께 보자! :-)
https://youtube.com/shorts/BuCzLroSO54?si=3KV8-o3Wck42wnD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