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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취향 공동체 (2)

by 홍지이

[전편]

https://brunch.co.kr/@redmanteau/219



나를 부른 사람은 동문시장 쪽의 한 에스프레소 바의 오너 분이셨다. 그곳은 운영자의 취향이 보이는 매장의 분위기와 선곡 센스가 좋고, 무엇보다 커피가 정말 맛있다. 1년에 너덧 번 제주를 여행하던 제친자(제주도에 미친 자) 시절, 올 때마다 어떻게든 여행 일정에 욱여넣어 찾곤 했다. 비록 입도한 후 복잡한 시내를 꺼리게 되어 오히려 여행자 시절만큼 못 가는 아이러니에 빠졌지만, 며칠 전에도 육지에서 친구가 와서 자랑하듯 가장 먼저 데리고 간 카페이기도 했다.


난 인사와 함께 대뜸 카페는 어쩌고 오신 거냐 물었다. 쓰러질 만큼 아픈 게 아니면 쉴 리 없는 성실한 분임을 봐 왔기에. 그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내게 이 먼 한림까지는 왜 온 거냐는 질문으로 맞받아쳤다. 내가 입도 후 자리 잡은 동네가 이곳에서 조금 멀다는 걸 알고 계셨기에. 길지 않은 대화 속에 단골 주인장과 손님으로 쌓아온 적당한 관심이 있었다. 가깝되 침범하지는 않는 이 산뜻한 거리감.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두 카페의 오너 분은 지인 사이였고, 먼저 자리를 잡은 에스프레소바 사장님이 새로 오픈한 한림의 카페를 살필 겸 겸사겸사 오신 거였다. 그러고 보니 두 카페의 분위기가 묘하게 닮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최근 좋아하게 된 카페에서 오랫동안 좋아해 온 카페의 오너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되는 걸까.


그 만남이 있고 며칠 뒤였다. 서쪽 바다의 세련미가 슬슬 익숙해질 때쯤, 말갛고 청순한 동쪽 바다가 보고 싶었다. 마음 굳게 먹고 1시간을 내처 달려 동쪽으로 향했다. 동쪽 바다에 안부는 전했고, 달려온 탓에(운전을 한 거지만) 시원한 커피가 고팠다. 호주식 커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작은 카페를 찾아갔다. 바깥 자리에 걸터앉았는데,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이 나의 반려견을 보며 엄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려견의 이름을 묻기에 ‘무늬’라고 알려주고, 반려인과 커피러버의 중간쯤에 있는 주제로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지며 ‘무늬야 안녕. 건강하렴.’이란 그분들의 다정한 인사가 우리 인연의 마침표일 줄 알았다.



“앗앗앗!! 저희 기억하시죠?”



조용한 주말의 이른 아침, 한림 카페에는 오픈런을 한 우리뿐이었다. 뒤를 이어 들어온 손님이 말을 걸었다. 건강을 바라던 다정한 그분들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서 계신 것. 국내에서 인구 대비 카페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 제주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이 카페는 카페 생태계를 흔드는 대자본을 들인 대형 카페도, SNS에서 제주핫플 리스트에 있는 카페도 아니다. 다수의 선택지에 있는 쉬운 답안이 아니라는 것. 많고 많은 카페를 지나쳐 이곳에서 만나게 된 건 엄청난 우연도 역할을 했지만, 무엇보다 카페를 고를 때 취하고 버린 조건이 비슷했기 때문이지 싶다.


넓은 우주, 느슨한 취향 공동체 탄생의 현장이었다.



우리가 만든 우연의 축제를 조용히 즐기며, 모두 최근 제주에 살게 된 이주민임을 알게 되었다. 서로의 인스타그램도 팔로우했다. 얼핏 예감했지만 피드를 보니 역시나 좋아하는 공간, 카페 취향이 비슷해 보였다.




제주도는 생각보다 넓다. 그 넓은 곳의 아주 좁은 지역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살고 있다. 나머지 너른 공간은 사람 대신 돌과 바람과 말, 당근과 마늘밭, 오름이 채운다. 아직은 낯선 이곳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나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쓸쓸함을 가라앉히곤 했다. 카페에서 조우한 인연들과의 우연 덕에 그 쓸쓸함을 담담히 마주 보았다. 취향의 공동체가 있으니 조금 쓸쓸해도 괜찮다며. 취향을 포개면 어떻게든 만나지는 인연이 있는 걸까. 이 넓은 우주에서 아직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해도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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