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실례되는 말이지만, 이제는 말하고 싶다. 아니, 말해야 한다. 십만 토마토(주최 측 추산) 헤이터들이여 일어나라.
'나는 토마토가 싫어요!'
토마토를 미워하는 이유 중 제일은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탐스럽고 반짝이는 생 토마토. 그런데 그 표면을 반으로 가르면 보이는 사뭇 다른 반전의 단면이란. 이웃했지만 한 데 섞으면 볼품없는 노랑과 초록과 연두와 주황과 빨강이 무질서로 엉켜있다. 그 과육의 색감뿐 아니라 물컹한 덩어리로 이뤄진 형질도 너무 큰 배신이다. 형태도 색감도 표리부동 자체, 반사회적인 채소 계의 회색분자 토마토. 토마토와 마주하면 어느새 난 반사적으로 입꼬리에 잔뜩 힘을 주고는, 절대 벌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케첩, 과카몰리, 토달볶, 라따뚜이, 볼로네제 파스타, 카프레제 샐러드, 샥슈카, 에그인 헬, 가스파초. 그리고 대부분의 샌드위치와 햄버거. 살면서 잘 피해온 음식들이다. 어쩌다 토마토를 먹지 못하게 되어 이 고생일까. 특별히 토마토에 알레르기가 있는 건 아니다. 이젠 언제부터 어떻게 토마토를 먹지 않았는지 더듬어 갈 기억의 실마리도 희미하다. 내게 남은 거라곤 토마토에 대한 단상뿐이다. 음식에서 토마토를 만나면 곧바로 알아차린다. 어떤 향신료로도 덮지 못하는 냄새가 있다. 마치 흙과 줄기와 뿌리 언저리를 떠올리게 하는, 방금까지 땅에 있다 온 게 분명한 그 특유의 싱싱한 풋내. 그 향을 감지한 순간, 좁고 높은 곳에 한 발로 서 있는 듯 아찔한 기분이 들어 멀미가 난다.
'왜 토마토를 안 먹어?'
토마토를 먹지 않는다고 말하면 대부분 충격에 빠지거나 신기하게 바라보며 저렇게 짧고 굵은 질문을 건넨다. 대답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다. 나도 잘 모르겠기 때문에. 토마토의 맛과 향을 알고 있다는 건 먹어봤다는 건데, 편식을 용납하지 않던 부모님께 토마토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아주 오래전부터 먹지 않았다는 것일 테다. 한 가지 추려본 단서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인 어린 시절, 다른 음식과 토마토를 먹고 체 해서 구토를 한 적 있었던 것 같다. 피처럼 붉은 토사물을 게워낸 게, 저런 게 내 몸 안에서 나오다니 싶어 큰 충격을 받았었다. 서서히 멀어지는 인간관계의 행방처럼 토마토와 나의 사이도 차근차근 성실히 서로의 거리를 넓혀 갔다.
토마토를 먹지 않는 삶은 까다롭고 너저분하다. 패스트푸드를 먹으러 가면 햄버거 사진을 자세히 관찰한다. 번과 번 사이를 켜켜이 채운 음식 중에 반짝이는 빨간 '것'이 있나 빠르게 살핀다. 패티만큼 도톰한 붉은 것은 대개 토마토 슬라이스다. 확실하지 않아도 의심스러운 붉은 끼가 사이에 누워있으면 '안 먹음'의 영역으로 보낸다. 그러고 나면 먹을 수 있는 햄버거가 1,2개 정도 남는다. 학생 때는 롯데리아에서는 새우버거, KFC에서는 타워버거, 버거킹에서는 치킨샌드위치, 맥도날드에서는 필레 오 피쉬로 먹을 수 있는 햄버거 메뉴를 고정해 두었다. 현란하게 변경되는 메뉴 화면을 매직아이 하듯 노려보고 싶지 않았거나, 토마토를 먹지 않는 아이로 주목받고 싶지 않아서.
이랬던 내가 어느 날, 제주의 한 카페에서 결심했다.
그것도 1초 만에.
'그냥 토마토를 먹자.'라고.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