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이와의 산책은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난이도를 높이는 두세 가지 요인 중 첫째는 힘세고 오래가는 개너자이저 솔이 컨트롤 하기의 어려움이다. 늘 솔이가 나를 봐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솔이가 온 힘을 다해 리드 줄 방향과 반대로 달리면 아마 일방적인 줄다리기의 약한 쪽처럼 나는 그 방향으로 줄줄 끌려갈 만큼 솔이의 힘이 어마 무지하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린 가늘지만 튼튼한 리드 줄 연맹이다. 솔이와 우리의 유대감 덕에 우리의 산책은 비로소 평화를 찾느다.
그러나 때론 무턱대고 손을 뻗고 달려오는 아기나 길고양이 같은 갑작스러운 존재가 등장하기도 한다. 순간 머리카락이 삐죽 서는 듯 긴장하게 된다. 솔이의 순간적인 반응에 놀라서 리드 줄을 놓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100% 나의 잘못임을 알기에,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심지어 넘어지더라도 리드 줄을 생명줄처럼 잡고 있게 되어, 땅을 손으로 짚지 못해 신나게 무릎을 깐 적이 몇 번 있기도 하다.
신나게 노즈 워킹 중인 솔이, 어쩌면 솔이의 좌우 앞뒤를 보디가드처럼 살피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돌발 상황을 솔이보다 먼저 알아채야 하므로. 비록 솔이의 후각과 청각에 비하면 비루한 능력이지만, 못지않게 오감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원 잔디에 뒹구는 정말 이해 안 가는 것들도 주시해야 한다. 감자탕의 고기 뼈다귀와 족발이 왜 바닥에 떨어져 있는지 모를 일이다. 강아지가 본능적으로 주워 먹기 딱 좋은 음식이므로 바닥의 수상한 것들을 살펴본다. 어렸을 땐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물고 던지며 놀기도 해서, 버린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심한 욕을 하며 피해 가곤 했다.
치우지 않은 다른 친구들의 똥을 나도, 솔이도 밟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러움을 떠나 기분이 매우 나쁘다. 몇 번 밟아서 운동화 밑창에 콕 박힌 걸 닦아내야 할 때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런 나의 분주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책길에 나선 솔이의 발걸음은 언제나 신난 편이다. 발랄하게 흔들리는 솔이의 엉덩이를 바라보면 사실 이런 수고스러움은 금세 별 거 아닌 일이 된다. 더욱이 이런 일들은 솔이와 내가 마음을 맞추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우리의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하는 요소는 뜻 밖에도 사람들의 가시 돋친 말인 경우가 많기 때문.
첫 번째, 솔이가 크다는 사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말.
“어머 송아지야 뭐야. 너무 무섭다!”
“이렇게 큰 개를 아파트에서 키운다고? 아휴~”
“학생, 개 좀 꽉 잡아요. 우리 애 지나가게! (우리 애= 소형견)”
“아니 왜 큰 개를 길거리에 데리고 나와?”
두 번째, 솔이의 배변활동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의 말.
“아무 데나 찍찍 오줌을 싸고 난리야! 재수 없게.”
“똥 좀 잘 치워요! 사방이 다 개똥이야.”
세 번째, 다 모르겠고 그냥 우리가 만만한 사람들의 말.
“이야, 개새끼다. 개새끼.”
“개팔자가 상팔자네. 우리 때는 저런 개 동네에 돌아다니면......(뒷말은 너무 저급해서 옮기고 싶지 않다.)”
두 번째 말을 했던 할아버지는 거리를 두고 따라오던 남편의 존재를 눈치채자 갑자기 발걸음을 재촉해 가버렸다. 같은 길로 산책을 다니는 아빠는 한 번도 저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하신다. 유독 나와 엄마에게만 벌어지는 불쾌한 일들. 베베 꼬인 마음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지만, 몇 번 겪고 나니 엄마와 내가 작거나 어려 보이는 여자이기 때문에 쉽게 대꾸하지 못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의 짓거리 같다.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의 날카로운 말에 놀라 심장이 벌렁거리고 두려웠다. 하지만 비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몇 번 겪으니까 슬슬 그 사람들의 말이 우스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응대하는 것도 그 사람을 배려하는 것 같아 이제는 그냥 무표정으로 빤히 쳐다본다. 대신 최선을 다해 온 눈에 경멸의 빛을 담아. 그럼 보통 하던 말을 멈추고 민망한 표정으로 사라진다. 내가 떳떳하지 않게 행동하면 상냥하고 착한 솔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져 버리는 게 싫었다. 눈치 빠른 솔이가 금세 달라진 공기를 눈치채는 게 속상했다. 정말 솔이는 잘못한 게 정말 하나도 없다. 침을 뱉지도, 꽃을 꺾지도, 아무 데나 담배꽁초나 음식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
우리 그냥 평화롭게 산책하게 해 주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