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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Feb 25. 2021

내게 가장 친한 동물을 소개해줘서 고마워

나의 반려견과 친해진 남편 이야기

솔이는 거대하다. 당장 산책을 나가서 몰티즈나 포메 친구들을 만나면 솔이는 초초초 대형견이다. 내가 보기엔 작고 작은 강아지 같지만, 솔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두 솔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표현을 한다. 산책 삼아 솔이를 데리고 나갔다. 연애시절 Y가 잠시 우리 집 앞에 들렀다. 그저 행인인 줄 알았던 Y가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솔이가 정한 반경 안에 Y가 들어왔는지, 솔이는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두 개의 송곳니를 뽐내며 왕왕 짖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Y. 리드 줄을 짧게 잡고 솔이와 Y를 안정시켰다. 


그리 좋지 않았던 둘의 첫 만남. 이후 솔이는 가끔씩 집에 놀러 왔던 Y를 내내 탐탁지 않아했다. 이따금 힐끗거리며 쳐다보긴 했지만 본거라기보다는 Y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것에 가까웠다. 조금 가까이 왔다 싶으면 왕왕 짖거나 코를 찡그려 윗입술을 들어 올린 후 선홍빛 잇몸과 이빨을 뽐냈다.


“솔이는 나를 싫어하나 봐.” 

“아냐, 솔이는 너‘도’ 싫어해.”


의기소침해진 Y에게 진실을 이야기했다. 솔이는 큰아빠도, 사촌동생도, 이모도, 그리고 형부도 싫어했던 전력이 있다. 함께 사는 가족 빼고는 좋은 관계를 맺은 적이 없던 솔이었다. 생각도 안 해본 문제였다. Y는 예비 장인어른보다 솔이에게 허락받기 더 어려운 거 아닐까.


그 후 Y와 난 결혼을 했다. 10여 년을 함께 살며 매일매일 볼 수 있었던 솔이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 언니마저 떠난 본가에 솔이와 부모님만 남았다. 조용한 집에서 들리던 솔이의 발자국 소리, 한밤중에 혼자 깨서 촵촵 거리며 물 마시던 소리가 특히 그리웠다. 학교에 출근할 때라 여름과 겨울 방학 때마다 신혼집에 솔이를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데려다주셨다. 차 타는 걸 좋아하고 멀미도 하지 않는 솔이였기에 서울까지 오는 것도 거뜬히 해냈다. 솔이는 보통 2주, 길게는 3주씩 머물다 갔다. 


솔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Y가 주게 하는 것으로 점수를 따게 했다.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고 한 공간에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큰 소리를 무서워하는 솔이를 위해 Y는 재채기도 조심히 했다. Y는 혹여나 솔이가 돌변해서 식탁 밑의 자신의 발가락을 물진 않을까 겁났다고 했다. 산책을 할 때 리드 줄을 Y가 잡게 했다. 자신의 리드 줄을 잡은 Y를 보고 당황한듯한 솔이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둘은 친해지길 바라 중이었다. Y는 여전히 솔이가 너무 크고 거대한 강아지라 생각했고, 솔이는 Y를 오다가다 만난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던 언젠가, Y가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이 왔다. 솔이는 ‘코치기’라는 행동을 잘한다. 앉아있는 사람에게 다가와 무방비상태인 손의 손바닥 쪽으로 자신의 콧등을 넣고 툭툭 튕긴다. 그럼 우리의 손이 들린다. 이 행동은 ‘자 어서 손을 들어 나를 쓰다듬어라.’ 혹은 ‘자 어서 내게 간식을 내놓아라.’ 등을 뜻한다. 보통은 쓰다듬기만 해도 매우 흡족해한다. 


솔이가 Y에게 ‘코치기’를 했다.

 Y는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아, 솔이가 내게 코치기를 했어.”라고 말했다. 


‘너에게 코치기를 허하노라.’ 이후 둘은 많이 가까워졌다. 아니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었다. Y의 프로필 사진에는 어김없이 솔이가 등장했다. 우주대개불출처럼 어디 가서나 솔이 자랑을 늘어놓았다.  


Y의 삶에는 어떠한 동물도 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솔이를 만나기 전까지. 집에서 그 흔한 새 한 마리 키운적 없다고 한다.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시도도 해본 적 없다고 한다. 반려동물에 대한 기댓값이 없는 삶을 살아온 30대의 남성이 솔이를 만나 개와 함께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이제 Y는 산책길에 만나는 동네 강아지를 알아보고 눈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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