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어색에서 개덕후로 진화하기까지
결혼 7년 차 30대 직장인. 결혼 전까지 반려동물과 함께한 경험 전무. 대형견 솔이와 8년가량을 산 여자와 결혼하며 인생 첫 반려견과 커뮤니케이션하게 된 사람. 한때 물릴뻔한 위기가 있었을 만큼 둘의 사이는 별로였지만, 극적 사건을 통해 죽고 못 사는 관계가 됨. 부부의 반려견 무늬를 가족으로 맞이하기 전까지, 다섯 번의 여름, 겨울마다 평균 한 달씩 처갓댁에서 솔이를 데려와 아내와 함께 지냄. 이제는 사람보다 개를 좋아한다고도 볼 수 있는 여엇한 개덕후.
Q 솔이와의 첫 만남 어땠나요. 부정확해도 기억나는 대로
아내와 연애할 때였어요. 밤에 아내를 바래다주고 버스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렸는데 아내가 서프라이즈 이벤트처럼 솔이를 데리고 나왔죠.
Q 솔이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까만 밤에 만난 하얀 솔이는 허공에 붕 떠 있는 것 같았어요. 보자마자 왕왕 짖는 솔이가 너어무 무서워서 쓰다듬지도, 다가가지도 못했어요. ‘얘는 날 싫어하나 보다. 그래도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Q 솔이가 언제쯤부터 자신을 가족으로 대한 것 같나요.
신혼집 옷방에서 솔이를 불러서 간식을 줬는데, 코치기를 했어요. (코치기란, 손에 든 간식을 원하거나 자신을 쓰다듬기를 원할 때 콧등으로 손이나 팔을 툭 쳐서 올리는 솔이의 전매특허 애교입니다.) 그 후엔 솔이보다는 저 스스로 벽을 허물었다고 생각해요. 이 아이는 나를 공격할 리가 없어 라고 확신했어요.
Q 솔이에게 자신을 말해야 할 때 뭐라고 칭하나요.
오빠요.
Q 그 호칭이 어색하지 않았나요.
글쎄요. 그다지 안 그랬던 게 솔이는 날 오빠로 대하는 동생같이 행동했거든요. 부모와 자식 같은 위계도 없었고. 오빠와 여동생은 서로 돕고 노는 수평적 관계잖아요. 그리고 실은 나를 만만히 보고 있고, 간식 먹고 싶을 때는 손을 주고 말 잘 듣는 척하니까. 제가 다 알거든요.
Q 특별히 기억나는 솔이와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하나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솔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나와 솔이 단둘이 남겨두고 사람들이 나갔던 일이 있었어요. 긴장되는 순간이었죠. 솔이는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날 공격할 수 있으니까. 사실 이보다 전에 솔이 등을 쓰다듬으려 했는데 솔이가 왕 하며 제 손을 물려한 적이 있었거든요. 이후 일주일 가량씩 솔이가 우리 집에 머물다 가곤 했는데, 간식을 주며 조금씩 친해졌어요. 날 경계하던 애가 내가 주는 간식을 받아먹는 게 신기했어요. 그 후 아내는 출근하고 저는 휴가였던 시기, 처음으로 단둘이 시간을 보냈죠. 둘이 산책 나가며 친해졌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때 처음으로 솔이가 제게 배를 보이고 누워 애교를 부렸어요. 영상도 찍었는데 그때 솔이의 밀땅에 당한 것 같아요. 발밑에 누워있으면 언제든 발가락을 잃을 수 있겠다 생각했던 존재인데.... 솔이에게 마음을 홀랑 빼앗겼어요.
Q 솔이가 가장 행복해 보일 때는 언제인가요.
하나, 최애 간식을 꺼내서 주려고 하는 그 순간.
둘, 장인 장모님이나 아내를 오랫동안 못 봤다가 만났을 때. 뛰쳐나가서 점프하는 모습. 가족 상봉의 모습을 닮았어요. 그때는 솔이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행복해 보여요.
Q 솔이에게 고마운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미 사랑하는 존재인 언니(나)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을 관찰한 후 자연스럽게 내게 마음을 열어준 것. 저는 특별히 애쓰지 않았는데 우리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솔이가 마음먹어주었기 때문이거든요. 이 역시 무늬를 반려하기까지, 반려한 후에 좋은 영향을 주었어요.
Q 솔이에게 미안한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무늬와 산책하며 느낀 건데, 솔이와 산책할 때는 솔이 변을 한 번도 안 치웠고 아내가 다 치웠던 거 같아요.(그건 솔이가 아니라 아내에게 미안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데 왜 한 번도 안 했을까, 왜 내가 먼저 하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혹시 내가 은연중에 솔이 변이 더럽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Q 솔이를 알고 나서 ‘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 자체가 없어요. 반려견과 인간이 관계를 맺고 산다는 걸 인지는 했지만, 그러니까 교감 그게 무엇인지 감도 못 잡았어요. 몰랐던 거죠. 이젠 어렴풋하게 알 것도 같아요.
Q 솔이는 올해 14살입니다. 솔이가 나이 들었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언제였고,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최근에 솔이와 만났을 때, 눈을 봤는데 동공이 뿌옇더라고요. 그리고 의자 다리 같은 곳에 살짝 부딪히기도 하고. 안쓰럽고 마음이 좋지 않아요.
Q 아내는 솔이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나요.
결혼 후, 농담처럼 아내에게 ‘나야, 솔이야?’라고 물으면 아내는 ‘솔이는 말을 못 하잖아.’라고 대답하며 말을 돌리곤 해요. 저와 솔이를 비교할 만큼 아내는 솔이를 사랑하는 걸로 보여요. 그래서 너무 걱정이죠. 솔이가 강아지 별로 갔을 때 아내의 상실감이 어마어마할 것 같거든요. 내가 살아가면서 어떤 존재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라고 느낀 것 중, 솔이에 대한 아내의 마음이 최상이에요. 그 마음이 너무 커서 걱정돼요. 확률 상 아내는 남겨져서 솔이를 보내야 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Q 솔이가 말을 알아듣는다면 or 말할 수 있다면) 솔이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 or 알려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만약 아프다면 어디가 아픈지 말하기. 자궁 축농증 걸렸을 때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하면 늘 미안하거든요.
Q 만약 반려동물을 꼭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동물을 기르고 싶은가요. 왜?
개요. 모든 동물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사람과 깊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생명체니까? 아니다. 바꿀게요. 개가 제일 귀여우니까요.
Q 마지막으로 솔이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그건 다음에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