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서울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막상 비워 놓고 보니 벅차오르는 게 있다. 겁이 나서 그랬던 걸까. 내가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았던 도시의 귀퉁이를 선심 쓰듯 내어줬더니, ‘공백’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단어를 얻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건너편에 있는 뜻을 취해야 ―가령 충만, 완전, 빼곡하다, 분주하다, 넘치다 따위의― 빈칸을 채울 수 있는 것이었다.
사방이 바다이므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품는 섬. 이곳에서의 1년 동안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우선 무엇인지 모른 채 쥐고 있던 손아귀를 펼치고 나서야 쥘 수 있는 것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겸손한 시간을 얻었다.
신생아의 바빈스키 반사가 그렇듯, 앙다물었던 손에게 공간을 준다.
모처럼 새 마음으로 조우하게 된 익숙한 듯 낯선 서울 속으로 나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