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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에서 제일 작은 애

by 홍지이


강아지랑 함께 살다 보면 문득 초등학교 때 반에서 제일 작아서 늘 맨 앞에 서던 친구가 생각나곤 해.

저렇게 작은데 어떻게 아침에 일어나서 책가방을 매고 학교에 왔을까.

어느 날 우유 급식 당번이 된 그 애를 보며 '쟤가 저걸 들 수 있을까' 신경 쓰였어.

그렇지만 보란 듯이 우리 반 우유 박스를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 안도했던 것처럼.

강아지들도 '저 작은 애가 뛰어넘을 수 있을까' 싶은 큰 웅덩이를 훌쩍 뛰어넘곤 해.


그렇게 걱정이 걱정으로 끝나 다행인 날들을 살아가.


내가 바라는 세상의 질서는 오래 준비한 진심을 품은 사람에게 기회가 왔을 때,

모두가 숨 죽여 기다려 주는 것. 침묵을 함부로 깨지 않는 것. 고요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강아지랑 함께 살다 보면 오랫동안 차례를 기다려온 작은 존재가 마침내 기회를 잡을 때까지, 곁에서 함께 기다려 줄 수 있는 인내를 배워. 심지어 개는 38.5도의 평균 체온을 지녀서, 태생적으로 인간보다 따뜻하기도 하지. 그러니 올 겨울도 잘 부탁해, 우리집에서 제일 작은 무늬야 . 생각날 때마다 부비적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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