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USA 2017. 08. 19 19:43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의 희망직업 란에는 부모와 학생 본인 모두 '교사, 공무원'이라 적혀 있었다. 그렇지만 줄곳 글 쓰는 사람, 그중에서도 시인이 되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위로는 이미 대학생이었던 언니, 아래로는 연년생인 남동생 사이가 집에서의 내 자리였다. 삼 남매의 학비를 꾸리시던 부모님께는 국문학과를 지망하고 싶다고 에둘러 말했을 뿐이다. 아마 국어교사가 되려 나보다 하셨을 거다. 친구들에게도 '글은 취미로 쓰는 거지' 라며 짐짓 어른인 척했다. 안 그래도 잦은 백일장 참가와 수업 시간에 딴짓이랍시고 책을 보는 애란 이미지가 강해 '문학소녀'라 놀리는 애들에게 시인이라는 꿈은 분명 조롱거리가 될 것 같았으니.
그래서 그랬을까?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꾸자.'라는 체 게바라의 말이 20대 시절의 내게 어찌나 콕 박혔던지. 문헌정보학과를 전공하며 교직이수를 함께 해 졸업 후 때론 사서, 때론 교사로 20대의 대부분을 살았다. 생활기록부에 적어놓은 대로 교사도 되고 공무원도 된 것이니, 운명 참 얄궂다. 최종 전공 선택에서 국문학과가 아닌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당장 먹고 살 일을 궁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문헌정보학을 전공해서 금방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아니었고, 국문학을 전공한들 시인으로 가는 지름길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지만. 월급쟁이가 된 리얼리스트는 여전히 '내 꿈은 시인'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직장에서, 혹은 퇴근 후에 때때로 글을 썼다. 그러다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종종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짓는 남자를 만났다. 알고 보니 남자의 가슴속에도 함께 나이 먹고 있는 꿈이 있었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그 또한 나처럼 리얼리스트의 가면을 쓰고 어둠에 숨어 글을 쓰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미래의 시인과 소설가가 될지 모르는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되었다. 처음으로, 가슴속에 품어왔던 불가능한 꿈을 오랫동안 귀 기울여 줄 사람을 만났기에.
30대 중간 즈음에 만난 영화 'LALA LAND'가 오랜 꿈에 가 닿았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 조명이 들어오기 전에 잽싸게 눈물을 닦으려 남편을 툭 쳤다. 휴지를 달라고 했더니, 이미 남편은 자신의 눈물과 콧물을 처리하느라 휴지를 다 써버린 상태였다. 익숙한 재즈 넘버를 닮은 경쾌한 OST, 캘리포니아 햇살을 닮은 색감, 인상적인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까지. LALA LAND가 지닌 대부분의 요소에 매료되었으나, 특히 주인공 세바스찬과 미아를 아끼고 사랑했다. 영화를 n차 관람하며 꿈꾸는 사람들이 모이는, 수많은 미아와 세바스찬들이 모인 도시 LA의 매력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다음 해 여름휴가를 LA로 떠났다. 안 되는 영어로 구글을 뒤져 영화 속 로케 장소를 찾아 차곡차곡 일정을 쌓아 올렸다.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어렵게 무대에 올랐지만 냉소 어린 평가에 좌절한 미아가 머물던 리알토 극장, 미아가 아르바이트를 했고 둘의 첫 데이트가 시작된 카페 세트가 있는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아쉽게 헤어지던 장면의 배경이 된 Lighthouse cafe, 세바스찬의 들뜬 마음을 로맨틱한 춤과 City of Star의 선율로 풀어낸 곳 허모사 비치(Hermosa Beach), 아름다운 선셋을 배경으로 미아와 세바스찬의 커플 댄스 무대가 된 그리피스 천문대 등등.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위에 언급한 장소들에 간들 영화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허모사 비치(Hermosa Beach)에 가봤자, 노래하며 함께 춤을 추고자 손을 잡아끌어줄 훈남 세바스찬은 없으니. 성의 없이 사진을 찍으면 강원도 동해의 한 해수욕장과도 흡사해 보이기도 했고. 네온사인이 걸려있는 Lighthouse cafe의 벽은 생각보다 작고 허름해서 기대하고 가면 분명 실망할 거다. 영화 장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쓰레기통은 냄새와 함께 해서 그런지 존재감이 매우 컸다. 그래도 우리는 이 곳들을 가기 위해 일정에서 과감히 디즈니 랜드를 제외했다.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이라 그 장소가 나온 영화 속 장면과 노래, 그때의 감정을 나눴다. 영화를 봤을 때 느꼈던 그때의 그 마음을 생생히 간직하고 싶어서 간 거였으니, 우리로서는 장소를 옮길 때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LALA LAND는 주기적으로 다시 보고 있는 영화 중 하나다. 보고 나면 누군가 해줬으면 했던 말들을 들은 기분이다. 무엇이 되었던 가슴속의 이루어지기 힘든 꿈을 부디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그리고 꿈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 애쓰는 외로운 사람들이 제법 있을 거란 상상. 내게는 꽤 큰 응원이 된다. 언젠가부터 꿈을 이룬 사람의 화려한 성공 스토리보다, 묵묵히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람의 소박한 이야기에 가슴이 뛴다. 여전히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지닌 리얼리스트로 살고 있어 좋다. 그래서 혹시 언젠가 시인이 되어도, 다시 가슴속 한편에 불가능한 꿈 하나를 세워둘 거다. 굳이 깨어있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는 늘 꿈꿀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