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임시보호를 할 수 있을까

펠라 임보 일기 18

by 홍지이


펠라가 가고 나서 며칠간은 조용한 집이 어색했다. 우리 집은 원래 조용했다. 원래 무늬와 둘이 지내는 일상의 고요를 즐겼었는데, 펠라와 보낸 한 달 간의 소란스러운 일상이 생각보다 더 진하게 몸에 익었나 보다.


화장실 문을 살짝 닫아 놓으면 문틈으로 긴 코를 들이밀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눈을 맞추던 펠라가 생각난다. 이젠 문을 꼭 닫고 샤워를 할 수 있지만 가끔 문틈 사이로 보이던 펠라의 까만 코가 그리워 괜히 문을 다 닫지 않아 본다. 거실 테이블의 의자도 완벽하게 넣어놓지 않아도 의자를 발판 삼아 테이블까지 올라가는 대범한 강아지도 없다. 배변패드를 씹어 먹거나 패브릭 소파의 모서리를 뜯을까 걱정돼서 설치했던 웹캠도 집어넣었다. 집에서 산책을 기다리는 다른 개가 없기에 반려견 무늬와 예전처럼 한가하게 산책할 수 있게 되었다.


펠라를 향한 남편의 그리움도 짙었다. 펠라가 가고 다음 날 밤, '펠라'라는 이름의 공유 폴더에 미쳐 올려놓지 않았던 펠라의 사진을 모두 올렸다. 남편으로서는 미공개 사진이었을 거다. 이렇게 사진이 많았냐며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거실에 혼자 앉아 내가 올린 펠라의 사진과 영상을 한참 들여다봤다. 남편은 혼자서 훌쩍거리다 펭 하고 코를 풀다 헤헤거리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평소보다 조금 늦게 침실로 들어왔다.


며칠간은 "펠라였다면" "펠라가 있었다면"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우리 집의 유행어였다. 남편과 무늬와 셋이 산책을 하다가, 차를 타고 가다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이 순간 펠라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 거라는 상상을 늘어놓으며 펠라의 빈자리를 추억으로 채웠다. 처음에는 비릿한 슬픔이 올라왔지만, 언젠가부터는 희미하게나마 미소 지을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농담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펠라를 잊는 게 아니라 더 오랫동안 행복하게 펠라를 기억할 수 있는 우리 가족 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도 그렇고, 나를 아는 지인들은 임시보호 초반부터 걱정했다. 정이 듬뿍 들어버린 임보 견이 입양 가고 나면 우울하고 쓸쓸해서 어쩌려고 그러냐고. 한번 마음을 내어주면 다 주는 편인 나와 남편을 워낙 잘 아는 분들 다운 사려 깊은 당부였다. 그러나 사실 처음부터 그 점은 전혀 염려하지 않았다. 당연히 슬프고 당연히 그리울 거라 알고 있었지만, 그 당연한 감정이 두렵고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후회 없이 사랑하고 마음을 다 쏟아서 오랫동안 그리워할 수 있어서 어떤 의미로는 후련하다. 게다가 임보자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할 감정만 잘 다스리면, 죽음 앞에 있던 어느 한 강아지는 새로운 가족을, 새로운 세상을 얻는다.


예상대로 펠라는 멋지게 잘 적응 중이다. 오물로 뒤덮인 외양간에서 태어나 소변으로 목을 축이고 썩은 사료를 골라먹던 아이가 위액트라는 동물보호 단체의 구조 덕에 임보 가정을 만나 사람과 함께 사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몇 달 만에 보란 듯이 매일 보송한 수건으로 얼굴과 발을 닦고 깔끔한 소파와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자고 깨끗한 물을 마시고 보드라운 장난감을 앙앙 거린다.


마음 한 켠에는 언젠가 멋지게 적응해서 다복한 한 가정의 어엿한 반려견이 된 펠라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펠라가 나와 남편은 못 알아봐도 늘 엉덩이를 맞대고 낮잠 자다가 투닥거리며 싸우듯 놀았던 무늬는 기억하지 않을까. 무늬를 앞세워 인사하면 그래도 조금 반가워하지 않을까.


다시 임시보호를 할 수 있을까? 남편과는 반려견 무늬가 감당할 수 있고, 우리가 3개월 정도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적당한 시기에 일정을 조율해 임시 보호를 하자고 했다. 임시보호를 하는 건 모든 가족 구성원의 배려와 협력이 꼭 필요하다. 시작은 내가 했지만 남편의 든든한 지원과 이해가 큰 힘이 되었고, 펠라에 대해 의사결정을 할 때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옳은 결정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주어 늘 고마웠다. 반려견 무늬에게도 내가 개의 언어를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을 만큼 커다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며칠 뒤엔 세 가족이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펠라와 함께하며 미뤄둔 서로의 일상을 돌보며 다시 셋이 만들어가는 삶의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 그 균형을 찾아갈 때쯤이면 펠라처럼 마음에 쏙 들어오는 다른 아이를 임시 보호하려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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