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라 임보 일기 14
펠라와의 마지막 날, 펠라와 촘촘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남편은 휴가를 썼다. 특별한 일을 하거나 멀리 다녀오면 펠라의 컨디션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소소한 일정을 짰다. 평소 우리가 무늬와 다니며 좋아했던 서울 근교의 산책코스와 브런치 카페를 다녀오는 것. 남편은 아침부터 외출 준비를 하며 '아직 실감이 안 나.'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씩씩하고 즐겁게 보이려 애쓴 것 같다. 한 번 눈물이 터지면 눈가가 짓무를 때까지 멈추지 않는 편이라 울음을 꾹꾹 눌러 담아 가슴 깊숙이 넣어 두었다.
짐짓 어른스러운 말투로 포장해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가 슬플 필요가 없잖아. 우리는 펠라가 가족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 했고, 결국 펠라는 좋은 가족을 만나는 거고. "
그리고
"슬픈 감정은 우리 인간의 몫이야. 그거야말로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지? 펠라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라며 이 슬픔은 당연히 우리가 감내해야 함을 강조했다.
양평 즈음까지 가보려 했는데 서울을 빠져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제법 길이 막혔다. 길지 않게 외출을 하고 일찍 감치 집에 들어가 펠라를 편히 쉬게 할 생각이어서 하남과 미사 근처에서 멈췄다. 마음속으로는 나중에 분명 '그때 펠라랑 양평 생태공원을 가서 함께 억새를 봤어야 했는데.' 라며 후회하겠지 싶었다. 슬픔에 이어 후회도 미련스러운 인간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으로.
오픈 시간에 맞춰가려 했던 브런치 카페의 주차장이 빈자리가 거의 없이 차로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루프탑에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좋은 자리가 딱 하나 남아있었다. 펠라와 무늬를 나란히 이동가방에 넣어 의자에 앉혀놓았다. 둘은 이제 차에서도 하나의 카시트에 편히 앉는 요령이 생겼고, 거실의 넓고 긴 소파에서도 가장자리에 함께 붙어 앉는 다정한 사이가 되었다. 무늬는 다년간의 카페 메이트 경력을 가진 강아지답게 호젓한 표정으로 여유를 즐겼고, 오가는 사람들을 경계하던 펠라도 시간이 지나자 제법 의연하게 앉아 있었다. 브런치 메뉴와 커피가 생각보다 맛있었다. 커피를 마신 후엔 지루했을 펠라와 무늬를 위해 카페 옆 강변을 따라 새로운 풀과 꽃 냄새를 실컷 맡게 했다. 무늬와 펠라를 보고 예쁘다고 해주시는 행인도 몇 분이나 만났다. 펠라와의 소중한 시간이 어김없이 좋은 기억들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반려견 동반 아울렛에 들렸다. 반려견 전용 이동차를 빌려 둘을 태웠다. 차로 이동하는 게 지루했을 것 같은 무늬와 펠라를 위해 옥상 정원을 찾았다. 그곳에 조성된 반려견 전용 운동장에서 리쉬를 풀고 다른 강아지 친구들과 놀고 신나게 뛰었다. 펠라가 처음 본 친구들과 예의 바르게 인사를 나누고 마찰 없이 어울리는 걸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펠라는 분명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멋진 아이로 자랄 것이라 다시 한번 확신했다. 무늬와 펠라를 데리고 다니며 주변을 살피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생각보다 긴장을 많이 했나 보다. 하루 종일 이별의 슬픔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집에 온 무늬와 펠라는 좋아하는 간식을 나눠먹고 좋아하는 소파 자리에 함께 누워 낮잠을 잤다. 한숨 자고 일어난 두 아이를 차례로 씻겼다. 펠라의 털이 그새 좀 자란 것 같다. 검고 보드라운 펠라의 털은 꼬마 남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느낌과 비슷하다. 씻기고 나왔는데 펠라를 안은 남편이 "씻어도 펠라한테 펠라 냄새가 나네."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체취가 다르듯 강아지도 냄새가 다 같지 않은 듯했다. 펠라와 무늬의 냄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 펠라의 정수리와 등에서 나는 펠라의 고소한 냄새가 익숙하다. 아마 펠라에게 우리 집 냄새가 섞여있어서 그런 것 같다.
펠라의 짐을 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반려견 무늬도 임시보호를 나서서 해주신 분 덕분에 보호소에서 구조되어 우리와 가족이 될 수 있었다. 우리가 받은 그 호의를 이제 펠라를 통해 조금이나마 돌려 드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 모든 일은 감사하고 행복한 과정이 된다. 여한 없이 아끼며 품었던 펠라와의 이별이 소중한 출발이 될 수 있으므로, 진심으로 깊이 슬플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만큼 펠라가 다정하고 사려 깊은 반려견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밤이 되니 슬픔이 몰려왔다. 할 일 없이 펠라 주변에 앉아 머물렀다. 아무것도 모르고 편히 늘어져 자는 펠라를 내려다보나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펠라가 놀랄까 봐 소리 내지 않고 울다 뜬금없이 속마음을 말해버렸다.
"슬픔은, 참 힘들어."
그렇지만 대책 없는 이 진한 슬픔에 펠라의 몫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위액트 입양 담당자께서 알려주신 펠라의 입양신청자(3주 간의 트라이얼 기간을 거친 후 정식 입양자가 되는 시스템) 분들은 펠라에게 딱 맞는 가족 같았다. 내일 뵙게 될 펠라의 가족분들은 분명 좋은 분들일 거라 확신하며 울렁이는 마음을 다잡았다. 마지막 날인만큼 첫날처럼 다 함께 거실에 누워 잤다. 이제 펠라도, 무늬도 우리 주변에 편히 자리를 잡고 잔다. 우리의 뒤척거림에도 깨지 않고 두 눈 꼭 감은 펠라의 통통한 배가 얕게 오르락 내리는 속도에 맞춰 숨을 쉬어 보았다.
내일이면 따뜻한 가족의 품을 향해 훨훨 날아갈 펠라야. 좋은 꿈 꾸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