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과 탐험가, 내 안의 여행자들

지금 내 삶은 한량 한량 해~

by 홍문화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한 사람은 한량. 어디에 있든 느긋하게 머물며 인생을 음미하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어 한다. 다른 한 사람은 탐험가. 호기심 많고, 새로운 길을 만들며 나아가고 싶어 심장이 뛴다. 한량의 의견대로만 움직이면, 탐험가는 지루해진다. 탐험가의 방식대로만 가면, 한량은 삶의 의미를 잃는다. 사실 이 둘은 내 안에 공존하는 자아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더 환영받는 쪽은 아마도 탐험가일 것이다. 진취적이고, 뭔가를 개척하고, 성취해 내는 모습. 돌아보면 30대는 거의 탐험가로 살았다. 한량의 존재는 유배를 당한 듯 멀어졌고,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길을 가는 데에 몰두했다. 그 모습을 좋게 봐준 분들도 많았고, 분명 그때 의미 있는 일들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쉬고 싶다’는 마음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번아웃으로, 다시 나아가고 픈 방향과 동력을 찾기 위해 꽤 긴 시간을 들였다.


이제 나는 내 안의 한량과 탐험가가 함께 여행한다. 속도는 조금 느려졌지만, 삶은 더 생생해졌다. 갈 땐 가고, 멈출 땐 멈추는 리듬 속에서 삶을 풍성하게 느끼고 선택한다.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바람을 느끼고, 어디가 내가 갈 곳인지 끌림을 따라갈 수 있는 감각도 더 살아났다.


하지만 가끔 불안하기도 하다. ‘어머.. 이 분이 책을 냈네’ ‘와, 이런 걸 시작했다고?’ ‘기술이 왜 이렇게 빨리 발전하는 거야’ 그래도 불안 때문에 달려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 안의 탐험가가 원하게 빠른 속도, 더 많이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이제 알기 때문이다.


사실 24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는 동식물은 모두 자신의 속도로 산다. 그저 자신의 시간 속에서 오늘 해야 할 것을 하면서 살고 자란다. 나무는 계절과 환경에 따라 어떤 날은 많이 자라고, 어떤 날은 쉬고, 어떤 시기엔 그냥 조용히 숨만 쉬기도 한다. 모든 계절을 여름처럼 살 순 없는 거다.


요즘 나는 자꾸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진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설계하고 싶어진다. 이전 삶의 전환기에는 변화해야겠다고 느끼는 강력한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딱히 어떤 이슈가 있어서는 아니다. (지금 사주상 대운이 바뀌는 때에 있다던데, 그래서일까?). 지금 나의 한량력은 만렙이다. 놀아도 또 놀고 싶고 쉬어도 또 쉬고 싶다. 충분히 느끼고 사유하고 여기에 머무르고 싶다.


나는 믿는다. 겉으론 메말라 보이는 겨울의 고요가, 가장 많은 가능성이 자라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다시, “얏호~ 봄이다! 다시 속도를 내볼까?” 하고 말할 날이 올 거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내 안의 한량은 탐험가의 지난 여정을 재미있게 들어주고, 함께 하늘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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