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빨간 중년기 07

셰리프

by 코 빨간 중년

하나..둘, 셋..목표는 확정적이다.


새해의 첫 달이 지날 무렵,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의 고집은 조금씩 꺽이는 모양새다. 바람 조금 싸늘하지만 못 버틸 수준은 아니다. 시비가 붙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안정된 자세로 표적을 주시한다. 죄인도 아닌데 딱히 몸을 숨길 이유는 없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노출증이 있는 것은 아니니 보란 듯이 티를 낼 필요도 없다. 증거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도블록을 시작해 주변 지형과 건물의 일부를 함께 포착한다.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내쉰 뒤 세 번째 숨에서 살짝 내 쉬고 참는다.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느리고 조심스럽게 화면 두드리면 철컥거리며 문이 닫힌다. 이번에는 천국의 문이 아니라 스마트폰의 셔터다. 조리개가 필요한 만큼의 빛을 들이는 '기억의 문'이긴 하지만 연관성은 없다.


내 손 안으로 들어온 1분 간격의 사진들.


'서울 XX 바 XXXX'

행여나 정보의 오차로 미수용되는 실수를 피하기 위해 다시 한번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한다. 틀림없다!

몇 가지 정보와 함께 곧 안전신문고 앱에서 불법주차 신고가 접수된다.





알다시피 내겐 일상의 루틴 중에 질서정연한 조깅과 때때로의 산책이 있는데, 동네를 한 바퀴 빙 둘러 오는 길에 발견되는 인도와 횡단보도 위의 차량들에게, 그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어기는 법이 없이, 한편으로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망설임 없이 관하지만 정의로운 칼을 빼든다(내게 돌을 던질 사람이 있다해도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기에는 정도가 지나치다 싶은, 보행에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거나 안하무인격인 차량들만이 대상이었으나, 언젠가 마주한 무례한들의 뻔뻔함이 극에 달하면서 결국 자의로 야금야금 '보안관'의 영혼에 좀 먹히고 말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율 브리너', '존 웨인'같은 마초남에게 보이는 카리스마 같은 건 없다. '빌리 더 키드(영건)'의 '에밀리오 에스테베스'처럼 짓궂은 악동과도 같다. 아니면 진짜 악당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모든 차량을 혼자서 감당하기란 쉽지 않고 너무 인정머리 없이 신고하는 것도 못 내키는 일이긴 해서 개인적으로 수정을 거듭해 온, 여전히 수정을 거듭하고 있는 규칙들이 몇 개 있다. 현재까지 수정된 규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두 개 이상의 바퀴가 인도를 침범했을 경우

둘째, 침범의 정도와 상관없이 상습적일 경우

셋째, 횡단보도는 침범의 정도를 따지지 않을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번째는 굉장히 주관적인 잣대로 '인도를 침범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가'이다.


이 네 번째 규칙은 상습적이거나 횡단보도에 주차한 경우에는 적용할 필요가 없는 기준이다. 그것들은 앞서 말한 세 가지 모두 경계를 한참 벗어나기도 하고 경미한 침범에 대한 판단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얼마나 얄밉게 주차를 해놓았느냐가 관건.




마침내 뻔뻔하고 염치없는 상습범이 나를 발견한다. 마치 '오냐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몸을 오히려 꼿꼿이 펴고 몸을 부풀린다. 미어캣이 목을 내 빼는 우스꽝스러운 자세는 아니다. 목도리 도마뱀이 우산을 활짝 피며 위협하는 것처럼 위압감이 넘친다.


염치없는 자는 뒤돌아서 다급하고 짜증 난 목소리로 크게 외친다. 서너 명, 아니 대여섯쯤 될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각자의 출구 밖으로 몰려나온다.


나는 애를 써서 자리를 피하지 않는다.

이젠 가소롭기까지 하니 당황할 필요 조차 없다.

내가 해야 할 남은 일을 묵묵히 이어간다.

나는 하늘 아래 단 한 점의 부끄럼도 없는 사람이니까.


측근들의 말을 빌려, 나는 이 구역의 보안관이다.

이 구역의 미친놈이 나라는 걸 새삼스럽게 알려주어야겠다.


문득, 평소 외우고 있던 대사 하나가 떠오른다.

"We've met before.

But something tells me you're gonna remember me this time"

- American beauty 중에서

(본인의 영어 실력은 형편없지만 아는 체하고 싶은 욕구가 없지는 않아서 시를 외듯이 기억해 둔 문장이 몇 개 있을 뿐이니 오해는 하지말자.)


"뭐 하시는 분인데 사진을 찍는 거예요?"

"뭐 하시는 분인데 차를 인도에 대는 거예요?"


"여기 차를 대는 거랑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지나가기 불편하니 상관이 있죠"


"여기 옆으로 피해서 지나가시면 되잖아요?"

"못 지나가는 게 아니라 불편하다고요"


"영업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인도에 차를 대지 않으면 영업이 안된다는 말이에요?"


"아니 우리만 이렇게 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공평하게 전부 다 찍을 거니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지나갈 때마다 이런 거 보면 상습이잖아요."


무리 중 한 명이 씨알도 먹히지 않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거든다.

"형님 됐어요 됐어! 누님이 저기 구청 가서 얘기하신다니까! 실컷 찍으라고 하세요."

라며 호기를 부린다.


"예예, 그런 건 알아서 하시고요, 앱으로 신고 들어가면 기록이 남아서 바꿀 수가 없어요"


나의 사명을 완수하고 자리를 벗어나는 와중에도 억울하고 분했던지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소리친다.


프레임 수가 충분하지 못한 느린 화면 같다.

주변으로 침이 튀고 우완투수가 공을 던질 때 처럼 손가락질 한다. 격하게 잘가라고 인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난 후식 냉면이 간절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걱정 마세요! 계속 찍을 거니까!! 안녕!!"




불법 주차가 일상인 사람들은 논리적인 기대와는 달리 말이 통하지 않는다. 듣지 않는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 어느 하나 빠트리는 법이 없이 규칙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의 존재 가능성은 극히 낮겠지만 준법정신이 결여되는 것만은 피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덕목 아닌가.


뻔뻔함을 넘어 염치가 없는 사람들의 비율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지만, 왜인지 더 많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최상위 빌런들이 주는 타격감이 극단적으로 거칠어졌고 미디어가 발전함에 따라 발 없는 말들이, 어머니가 그리웠던지, 삼만리도 우습게 가버리는 탓이다.


'앙투안 라부아지에(질량 보존의 법칙)' 형님이 흐뭇해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염치마저 빈부격차가 심해진 것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각자의 자리,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 될 일이다. 사람과 사물을 포함한 모든 것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 질서라는 톱니바퀴는 삐걱거림 없이 그리스를 듬뿍 바른 크랭크 축과 함께 속도를 낼 것이다.


혹자는 내가 처한 현재 상황에 대한 화풀이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지금 지극히 냉철하고 이성적이다. 이성은 분노(화풀이)와 공존할 수 없다. 화풀이를 할 거였다면 애초에 화살은 엉뚱한 곳을 향했을 것이다.

우연으로라도 이성의 끈을 놓았다면 언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일대를 사보타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냐며 서쪽에 가서 따귀를 날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온전한 평정심을 유지한 채 어김없는 질서에 맞춰 산책을 나선다.

나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은 적 없는 우리 동네 보안관이다. 정체가 탄로 난 언더커버 에이전트라고 하면 더 품위 있어 보일지도 모르겠만, 여전히 '노원구 카운티'의 셰리프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