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빨간 중년기 06

평화의 비둘기 下

by 코 빨간 중년

은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냥 일행의 뒤를 쫓는 것은 무모했다. 주차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또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관성이 최고조인 지점에 도달했고 하물며 사촌은 땅을 산적도 없건만 배알이 뒤틀리고 장이 요동쳤다.


어제 고작 몇 병을 들이킨 탓이다. 이것은 변명이 아니다. 전조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생리 신호는 통상적으로 으레 생각하는 상승 곡선이 있지 않던가?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돈어른께서도 바로 앞이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갑작스러운 강풍에 금세 찢어질 듯 간신히 버티는 천막의 꼴이나 다름없다. 한스 브링커의 필사의 심정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글을 쓰는 이 와중에도 나를 재차 그날의 의식 위로 되돌려놓지 않는가 말이다.

다급해진 보폭과 가빠진 숨결, 공포에 질린 듯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동공, 평정심을 잃고 아랫배를 움켜쥔채 엉덩이를 내뺀 엉성한 자세, 이마와 뒷 덜미에 결로가 생겨 맺히기 시작한 서늘한 땀 방울들, 주뼛주뼛 돋아나는 닭살과 모근의 가시 같은 질감 그리고, 발등을 스치는 낙엽의 미세한 떨림은 지구를 벗어난 시커먼 우주의 먼지들과 함께, 헛디딘 발바닥에 전해 오는 둔탁한 요철들로 균형을 잃은 나를 하염없는 곳으로 날려 보냈다.


비록 마을의 영웅이 됐다고는 하지만 혼신으로 막아내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한스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형이 겨우 눈치챌 정도의 눈짓만을 남기고 무한의 우주를 헤쳐나갔다.





내려가는 길은 곧게 뻗은데다 왼편은 병풍처럼 세워진 산으로 막혀 있고 오른편은 낭떠러지에 가까운 경사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산을 등지고 서면 무대 인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일반적인 산 길과는 달리 차량 한대는 충분히 오갈 수 있을 만큼 넓직해서 어디서든 눈에 띌수 밖에 없는 지형이었다. 마땅한 곳을 모색해서 꽤 멀리까지 내려가봤지만 소용이 있겠는가. 줄기를 간지럽히는 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어쩔 수 없이 차가 있는 곳까지 내려가야겠다 싶은 와중에 다시 한번, 강렬하고 사나운 통증이 살벌하게 문을 두드려댔다. 북으로 보내달라는 설경구가 자신을 쏘고 가라는 안성기와 대치 중이었다.


더 이상의 이동은 불가능했다. 핏불 테리어가 나의 엉덩이를 물고 늘어졌다해도 이만큼 고통스럽진 않았을 것이다.


다급히 두리번거리던 찰나, 나의 시선과 맞닿은 곳은 병풍쪽, 비가 올 때나 물이 흐르는, 작은 골짜기에 가까운 비탈지고 메마른 도랑이었다. 조금 위쪽으로 비집고 들어가면 성인 남자 하나 쯤 숨을 공간은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 정면에 보이는 산기슭에 누군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어색하게 쪼그려 앉아 쉬는 척 해보자. 아니 아무래도 상관 없다. 고민할 틈도 없이 경사를 기어올라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막상 올라보니 예상보다는 깊은 도랑 은엄폐는 비교적 수월했다. 비록 미천하지만 이것은 나에게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어릴 때 가끔은, 식사중에 목이 매여도 미련하게 일부러 물을 마시지 않은 적이 있다. 오랜 간절함 뒤에 마시는 물 한잔의 희열을 느끼고자 그런 바보같은 짓을 했었다. 그때와 상황은 다르지만, 버금가는 것을 훌쩍 넘어서는 단연코 최고의 간절함이었다고 고백한다.


필사적으로 참아왔던 분노와 고통들은 비로소, 비둘기 떼의 날갯짓과 함께 푸근한 안도감과 해방감으로 찾아왔다. 이것이 극락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찰나 같아서 찬란했던 봄날'이었다. 행여나 누군가 비둘기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길 바란다. 바지에 지리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눈살을 찌푸리는 당신, 만일 산속이 아니라 도심 한 복판이라도 이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텐가? 구석에서라도 바지를 내릴텐가? 아니면 선 채로 지릴텐가? 헛소리 하지마라, 지금 근거리에는 화장실도 없고 당신은 더 이상 한발자국도 뗄 수 없다. 단지 고민할 시간인 3초만 주어졌다.


안도감도 잠시, 기사에는 후속기사가 따르듯 위급한 상황은 모면했으나 마무리, 수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제 겨우 심폐소생이나 하인리히법 같은 응급구조가 끝났을 뿐이다. 더럽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원효대사의 해골 물에 비하면 밤새 이슬이 내려 눅눅 아니, 촉촉해진 낙엽들은 천연의 물티슈와도 같았다. 손이 닿는 곳에서 품질이 좋은 녀석들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아기용 물티슈처럼 유해성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인간은 늘 자연과 함께였으니 태초로 돌아갈 뿐이다.


눈을 감고 티 없이 맑은 보드라운 티슈를 상상하라.



정확히 다섯 놈이 희생되었다. 희생되었다는 말이 적절한가는 의문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생명을 다하여 떨어져 나온 게 불만인 놈들을 확인 사살한다는 의미에서 희생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 녀석들에겐 부관참시 만큼이나 치욕일 것이다. 순간만큼은 그 녀석들이 나의 부처이고 영웅이었다.


다섯 번의 숭고한 과정을 거쳤다. 다만, 그대로 일어나기엔 찜찜한 구석이 분명히 있었다. 샤워 후 물기를 마저 닦지 않았거나 눈이 쌓인 머리를 털기만 하고 방치한 그런 기분. 산을 오르면서 연신 아우성 대던 녀석들이 촉촉한 녀석들 밑에서 나를 빼꼼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서!! 이제 내 차례야! 나를 가져다 쓰라고!!"


다급한 마음으로 바스락 거리는 녀석들을 그대로 사용했다가는 사포로 문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내심을 가지고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총부리에 올려 놓은 바둑알이 찰나의 실수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숨을 세 번 고르고 마지막 숨에서 살짝 내쉰 채로 진정되길 기다린다. 맥박의 진동이 잔잔한 틈을 노린다.


톡톡.. 톡톡.. 화장솜으로 얼굴을 두드리듯 신중을 기한다. 수분이 날아갈 정도로만 조심스럽게, 어둠 속에서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기도비닉을 유지하며, 남몰래 사귀고 있는 여자의 기숙사 방문을 노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천국의 문을 두드렸다.


추적당하지 않도록 낙엽들을 뿌려 흔적을 지운다.

비탈을 벗어나는 와중에도 아래에 있는 녀석들은 왜 자신을 택하지 않았냐고 아우성 댄다. 선택받은 자가 있다면 그렇지 못한 자도 있는 법이야. 생물을 포함해 모든 물질과 반물질에 적용되는 법칙이지. 실없는 사람처럼 속으로 시치미를 떼고 뻔뻔하게 걸음을 옮겼다.





너무 오랜 시간 대열을 이탈했던 터라 일행이 내 몫의 짐까지 나눠지고 목적지에 도달할 때쯤 가쁜 숨을 내쉬며 대열에 다시 스며들었다. 산소에서 성묘를 하고 매부를 보내드리는 과정의 막바지에 사돈어른께서는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자식에 대한 비통함과 살을 파고드는 애통함을 절박한 마음으로 쥐어짜시는 것 같았다. 되돌릴 수 없음에 안달이 난 곡소리가 절절하게 메아리쳤다.



눈물의 양은 정해져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눈물 샘의 깊이가 얼만큼인지 타인도 나도 알 수 없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슬픔은 여진을 동반한 지진과 같다. 갑작스러운 복통 후에 겨우 추스리고 방심한 틈을 타 다시 습격하는 복통과도 같다.


언제 이 어스름한 현실에 동이 틀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 번 찬란한 봄날은 찾아올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인생이 그런 걸 어쩌겠어.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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