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빨간 중년기 05

평화의 비둘기 上

by 코 빨간 중년

냇물을 건너듯 쌓인 낙엽을 헤치며 걷다 보니 새벽 사이 많은 이슬이 내렸음에도 미처 안쪽에서 목을 축이지 못한 녀석들이 바스러지며 아우성이다. 인천 공항에서 평택, 천안을 거쳐 청송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4시간 남짓 소요되는 먼 곳에 매부의 유골을 안치하기로 한 것은 그 옛날, 30년도 더 지난 일이니 그 옛날, 매부의 외가댁 분들이 진보면에 터를 잡고 계셨었고 매부의 외할머니께서 잠들어 계신 선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매부를 도맡아 키우신 외할머니에게 정이 많았다는 판단으로 그곳에 같이 모시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정오쯤 천안에서 화장을 하고 바로 이동했음에도 산간지역 특성상 이미 어스름이 내려앉았기에 주변 호텔에서 짧은 밤을 보낸 뒤 외가 친지분들을 만나 선산에 오르기로 했다. 사돈어른께서는 산속이긴 해도 차가 닿을 수 있는 곳과 멀지 않다고 말씀하시니 산을 타야 하는 걱정은 사그라들었다.



다음 날, 싫어하지 않을 메뉴 하나쯤은 있을 법한 동네 김밥집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늦지는 않았지만 노곤함으로 여유를 부린 바람에, 눈치채기 힘들 만큼 미세한 생리 신호는 신경 쓸 것도 없이 서둘러 운전대를 잡았다. 전날 저녁과 아침을 든든하게 드셔서 그런지 사돈어른께서는 약간이나마 기운을 차리신 듯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장례 행렬이 선산으로 오르기 직전 결심한 듯 다시 한번 통곡의 벽을 마주하셨다. 우는 것도 체력이니 식사는 제대로 하셔야지 않겠느냐며 간절히 권했었는데, 가뭄에 이를 만큼 바짝 비워내고 재빨리 회복의 과정으로 넘어가는 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눈물의 양은 정해져 있다고 알고 있었다.


쌓여있는 낙엽을 거슬러 오르며 전날 저녁을 상기해 보았다.





자식 잃은 슬픔으로 끼니를 거르시는 사돈어른을 위해 청송에서 횟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 와중에 무슨 횟집이냐고 하겠지만, 사돈어른께서 평소 소(小)식을 하시는 와중에도 좋아하시는 해산물만큼은 무척 잘 드셨기에 매형이 제안한 것이다.


청송은 영덕과 인접해 있어 바다와 멀지는 않지만 사방이 산맥과 천으로 둘러싸여 육지의 섬이라고 할 정도로 천혜의 요새라서 우리가 흔히 아는 '청송교도소'의 전신인 보호감호소가 들어섰고 그에 따른 부정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지면서 인구의 유입이 줄어들었다. 읍내 중심을 제외하면 여전히 시골스러운 풍경이 대부분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교도소가 군민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고 오히려 현수막까지 걸고 추가 건립을 환영하는 상황이다. 군(郡) 자체적으로도 많은 노력 중이지만, 고속도로(청송 IC)가 준공된 지도 이제 겨우 10년 차에 접어들었을 뿐이라 여전히 관광객의 유입은 많지 않고, 읍내의 저녁 길거리는 한적하기만 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동네 횟집에서 뭘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다만,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메뉴에 모둠회가 전부였던 곳들과는 달리, 비록 적은 양이긴 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싱싱한 해산물과 회를 준비해 준 곳이 있었다. 고작 두 개뿐인 테이블에는 이미 손님이 자리 잡고 있었고 바로 옆에 붙은 카페에서, 회나 해산물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식사를 하기엔 소극장 무대 위만큼이나 어색한 곳에서, 회를 먹은 것은 꽤나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당연하게도 두 가게의 경계로 벽이 존재하지만 마치 한 집인 듯 문이 뚫려 있어 서빙에는 문제가 없었고, 조촐했지만 다행히 어르신의 입맛에도 잘 맞아서 매형과 나는 안주 삼아 몇 점 맛을 보기만 했다.


식사 후에 사돈어른은 피곤하시다는 이유로 먼저 숙소행을 택하셨지만, 맛 좋은 해산물을 하늘에 있는 자식과 함께 즐기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고, 다시 슬픔의 바다로 뛰어들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은 늘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양이 부족했던 매형과 나는 '앙트레'와 '푸아송'을 끝낸 프랑스 사람처럼 근처 돼지갈빗집에서 '비앙드'를 즐기기로 했다. 변두리 치고는 갈비와 숯이 일품이었고 그에 따라 소주를 곁들이지 아니할 수 없었지만,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어 가는 상황이니 현대인답게 절제력을 발휘하여 10시 조금 넘은 시각에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지방 소도시의 식당은 10시가 마감이었고 직원들이 서두르며 눈치를 주기 시작했으니 그들에게 동냥하듯 얻어낸 30분의 '인쥬리 타임' 동안 급히 마지막 병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적잖이 마신 술 덕분에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숙소를 나서기 전, 어쩔까 잠시 고민을 해보지만 그리 급한 일은 아닌 듯해서 무시하고, 날도 쌀쌀하니 차도 예열할 겸 10분 일찍 밖으로 나선다. 우선은 믹스커피에 담배 한 개비가 간절했다.






보폭이 좁아지고 잰걸음을 걷기 시작한다.

손은 옆구리에 차고 호흡은 가빠진다.

더 이상 참는다는 것은 객기라고 생각될 때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전한다.


"매형, 저 큰일 난 거 같은데요..?"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