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직전 날이 돼서야 짐을 싸기 시작했다. 처음 왔을 때보다 분명 짐이 늘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방 안을 둘러 보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했다. 분명 당시 내겐 꼭 필요해서 샀던 것 같은데 이젠 그것들이 숨을 막히게 했다. 미안한 마음에 조금 주눅이 들었다. 붙들고 싶은 것이 제 깜냥보다 커지면 사람이 흐려지는 게 아닐까. 앞으로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나머진 다 버리고 가기로 했다.
일이 늦은 시간에 끝나서 몸이 지쳐있던 게 도움이 됐다. 꼭 필요한 것들엔 의심이 없을 테니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들면 버리자. 물건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는 길에 마치 더는 널 좋아하지 않는다며 헤어짐을 고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애정이 끝나가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관계를 정리하는 일은 그 무엇에게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밤을 꼴딱 새워 정리를 끝냈다. 마지막 짐을 버리고 간소해진 짐을 바라보는데 기분이 홀가분했다. 그간 쉽게 무거워지던 마음은 너무 많은 것에 욕심내려 한다는 반증 아니었을까? 불필요하게 많은 것들을 내 것으로 짊어지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은 사람을 애써 무리하게 만드니까, 그래서 그동안 심적으로 쉽게 지쳤던 게 아닌가 싶었다.
이곳에서 삶은 이 정도면 감히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다고 말할 수 있다. 또 그만큼의 이면도 알려주었다. 이젠 내게 중요한 것들에만 오롯한 애정을 쏟으며 살아보고 싶다. 그런 삶의 방식엔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비우고 줄여나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꼭 필요한 것만 남겠지.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레 나를 통과하게 둘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더욱 자연스러운 내가 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