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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갑분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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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Sep 22. 2021

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때에 대해 써라

그녀의 장례식을 치르던 내내 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여서 정신이 없었다. 나를 볼 때마다 어른들이 자꾸 할머니를 기억하게 하는 질문을 했다.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 중에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냐는 말에 병어찜이라고 대답했다. 솔직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 중 아무거나 말했다. 다 귀찮았다. 할머니는 서울 어딘가에 계실 것 같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언제든 볼 수 있는 거리에 말이다.


3 차가 되던  아침이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옆에 그녀를 묻기 위해  같이 버스를 타고 묘지로 이동했다. 내릴  즈음엔 모두들 눈망울이 새빨개져있었다. 어른들이 관을 끈에 매달아 천천히  속으로 넣으니 나만 빼고 다들 울기 시작했다. 그녀 위에 흙이 덮이기 직전까지 말이다.


도우미 아저씨가 무심한 얼굴로 흙을 한 삽 푹 떠 할머니의 관 위에 뿌렸다. 그 순간이었다. 마취되었던 감정이 한순간에 풀린 것처럼 나는 갑자기 현실을 자각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저 사실이 내 머리를 세게 때렸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 산소에 갈 때마다 사촌들과 놀았던 미끄럼틀 주차장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 뒤편으로 달려가 짐승처럼 포효했다.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아무리 울어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날 뒤따라 온 사촌언니가 내 등을 토닥이며 함께 울었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돌아오니 새 비석이 땅에 박히고 있었다. 할아버지만 있던 곳에 이젠 할머니도 나란히 있다. 자녀들과 손주들의 이름이 박힌 곳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적어도 조금은 위안이 됐다.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나는 그녀의 손녀였다.


아까 탔던 버스를 타고 다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모두 평화롭지만 조금은 지친 얼굴로 곰탕에 깍두기를 먹었다. 일정은 끝났지만 다들 근처 고모 댁에 들러 남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아이들은 사촌언니가 맛있는 케이크 집을 안다며 데려갔다. 나는 고삼이라서 일찍 김포에서 분당으로 향했다. 혼자 5호선을 타고 레슨을 받으러 가는 길에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가고 있었다. 레슨을 마치고 집에 가겠다고 인사했다. 항상 조금 더 연습하고 가라고 하시던 선생님이 묘한 표정으로 그래 들어가 라고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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