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하여_

'Somnus inst.', FFXV

by 레드오렌지

주섬주섬 노트를 꺼내 책상에 편다. 원목으로 만들었는지, 합판으로 만들었는지 모르는 갈색 나무 무늬 책상에 올려진 노트 옆에 만년필을 올려둔다. 휴대폰을 켜서 어떤 음악을 들을지 잠시 고민하다 지브리 ost의 재즈버전을 선택한다. 천천히 음악이 흘러나오는 휴대폰을 종이 머리맡에 올려두고 책상보다 조금 더 짙은 무늬를 가진 만년필을 든다.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그래. 글쓰기 그 자체가 좋겠다. 제목을 뭐라고 할까, 어떤 음악이 이 주제에 어울릴까. 그렇게 고민하며 노트 첫 번째 줄에 만년필 촉을 기댄다. 검은색 잉크와 조용한 재즈가 어우러진 문장 하나가 완성된다.




어렸을 때 독후감을 많이 썼다. 책을 정말 좋아해서 그 감상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기보다는, 학교 숙제나 독서 경시대회 때문이었다. 보통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는 학기별로 독서 경시대회를 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 나이대 아이들에게 글의 퀄리티를 요구하기보다는 독후감을 얼마나 많이 썼는가로 순위를 매긴다. 순전히 내가 하고 싶어서, 독서 경시대회에서 상 받고 싶어서 독후감을 많이 쓴 건 아니었다. 워낙 가정교육에 열성이셨던 어머니의 강력한 의지에 "상 받으면 게임기 사줄게" 같은 보상이 주된 목적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독후감을 위한 공책을 따로 지급해 주었다. A4 사이즈 갱지로 만든 50페이지 정도의 공책이었다. 줄글로만 구성된 독후감 공책은 학생들을 따분하게 만들기 충분하기에, '감상을 만화로 그리기', '만화 감상문 쓰기', '책 광고문 만들기' 같은 다양한 콘텐츠도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오늘은 독후감 한편을 쓰라는 어머니가 내주신 숙제에 처음부터 줄글을 쓰기는 싫어서 만화부터 써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책을 다 읽지도 않고 그냥 대충 줄거리만 확인한 뒤 완성한 한 편의 만화가 어머니의 숙제 검사를 통과했을 때의 기분이란...


성인의 눈으로 본 만화 독후감이 얼마나 대충 그린 시간 때우기로 보였을지 그 당시는 몰랐지만, 어쨌거나 어머니의 숙제로 완성된 독후감 공책은 방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결국 학교 대표로 각종 글짓기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동대문구 청소년 글짓기 대회다. 그 대회는 열심히 밤새서 준비한 원고를 기한에 맞추어 제출하는 대신 조선시대 과거시험처럼 대회 당일에 글짓기 주제를 공지하여 원고지에 글을 써서 제출하는 형식이었다. 이 때문에 빨간색 테두리의 네모칸으로 가득한 원고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공부해야 했다.


처음 보는 주제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분량까지 맞춰야 했으며 그 안에서 서론-본론-결론을 정확하게 나누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 원고지라는 게 워낙 한글 문법, 특히 띄어쓰기에 정통해야 잘 쓸 수 있었기에 글을 종이에 적는 것 자체가 많이 어려웠다. 물론 나는 지금 하는 것처럼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고, 겨우겨우 분량을 넘겨서 제출할 수 있었다. 그 대회는 가족들과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는 소풍 같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으며 작품 제출시간이 끝나면 무대에서 장기자랑을 했다. 초등학생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데, 나는 그냥 구경만 하고 있던 와중에 장기자랑 상품이 문화상품권이라는 걸 알게 되자 바로 무대 위로 올라가서 뭔가를 하고 문화상품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간간히 숙제나 입시지원 등의 목적으로 쓴 글은 있어도 내 생각을 담은 진짜 '내 글'을 쓴 적은 없다. 입시로 바빴던 이유도 있지만, 학창 시절에는 보통 남는 시간에 친구들과 게임을 하거나 밖에서 캐치볼 같은 것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건 대학교에서 학보사를 하고 난 이후부터다. 우리 학교에는 학교 내 신문인 '학보'를 만드는 동아리가 있었다. 학보사 소속 기자들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에 대해 기사를 쓰기도 했고 어떤 주제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담은 사설을 쓰기도 했으며 각자 읽은 책에 대해 독후감을 쓰기도 했다. 나는 원체 팩트만 전달하는 기사를 쓰는데 재능이 없어서 사설을 주로 쓰곤 했다. 특히 해사 학보 305호에 기고한 소통에 관한 사설과 해사 학보 309호에 기고한 현충원에 대한 사설이 기억에 남는다.




보통 타이핑으로 글을 쓰곤 하지만 가끔은 볼펜이나 만년필을 사용한다. 신기하게도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타이핑과 비교하여 한번 기록한 문장을 수정할 수 없는 대신 한 글자 한 글자를 적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듯하다. 한 글자, 한 단어를 써 내려가면서 수정할 수 없는 다음 단어를 생각하게 되고 자연스레 꾹꾹 눌러 적어 완성한 글. 백스페이스를 수십 번 누르며 완성한 컴퓨터 속의 글과 비교하면 그 문법적 완성도와 문장의 완성도 자체는 다소 떨어지지만, 글자와 함께 꾹꾹 종이에 담긴 감정의 깊이는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펜을 드는 시기는 보통 감정적으로 가라앉아있을 때였다. 안 좋은 일이 있었거나, 슬프거나, 아니면 뭔가 감상에 젖었을 때 말이다. 그럴 때마다 천천히 감정을 정리하고 한 글자 한 글자에 고민을 담아 담담히 글을 적어나갔다. 때로는 감정이 격앙되어 거친 글이 쓰일 때도, 마음이 무채색이 된 듯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글이 쓰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난 화가 나있는구나, 난 슬프구나, 라며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그렇게 "고통이 너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라는 부처의 말처럼 내가 가진 거친 감정을 버리고 편안해진다.


그런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내 글에 내가 파묻히게 되고 아무도 읽지 못하고 나만 읽을 수 있는 글이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 자체로 즐겁고 편안해야 하는 법인데, 감정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레 글 쓰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지는 것이다. 이를 깨달은 이후부터는 글을 좀 더 가볍게 적기 시작했다. 생각을 조금은 덜고 손가락 가는 대로, 펜이 가는 대로. 이 글을 읽으면 나도 즐겁고 독자도 즐거울 수 있는 그런 글을.


사실 나는 글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띄어쓰기 문법에 대해서는 글짓기 대회 이후로 공부해본 적이 없다. 서론-본론-결론의 글 구조가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막상 글을 쓸 때는 의식의 흐름대로 간다. 가끔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손이 가는 대로 타이핑한다. 그렇게 완성된 글을 읽어보면 의외로 괜찮을 때가 많다. 아니, 오히려 표현이 더 풍부해지고 더 깊어지는 글이 될 때도 있다. 잠시 의식을 마비시키고 무의식에게 손을 맡기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글을 보고 아무 기초도 없는, 읽을 가치도 없는 글이라고 비하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 글이 좋다. 이렇게 날 것 그대로의 내 글을 좋아한다.


글을 통해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글에 사상을 숨겨놓고 누군가를 가르치고 계몽시킨다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었을 때 세상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필자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데, 나는 어떻게 생각하지? 필자는 비를 좋아하는데, 나는 비를 좋아하는가? 혹은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고 나에 대해 알아줬으면 한다. 필자는 이런 사람이구나, 필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구나,라고.



그러므로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 나갈 생각이다. 누군가 읽어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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