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let of the Little Cafe', Brian Crain
꿈 이야기다. 목표로서의 꿈이 아니라 정말 잠을 자며 꾸는 꿈 이야기. 꿈은 잠을 자고 있는 기나긴 시간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를 꿈속 그 장면을 유영하며 자각이 없는 나는 알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꿈이란 보통 맥락이 없다. 분명 꿈을 시작할 때는 방에 있었는데 고개를 돌리면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서있고, 같이 대화하던 사람이 분명히 남자였는데 눈 깜빡하면 여자로 바뀌기도 한다. 같은 꿈속에서 총을 들고 뛰어가는 나는 바로 앞에 있는 문을 여는 순간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꿈은 맥락뿐 아니라 현실성도 없다. 온통 초록색 타일과 흰색 타일의 체스판 무늬로 도배되어있는 도서관이 배경인 꿈을 꾼 적이 있다. 나는 초록색 옷을 입고 초록색 타일 위에 서있었다.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칼을 들고 돌아다니며 나는 노려보는 상황, 흰색 타일로 발을 뻗으려는 찰나 노란 옷의 사람들은 나에게 칼을 휘두르며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나는 초록색 타일이 안전한 곳임을 깨닫고 멀리 있는 커다란 도서관 문을 향해 초록색 타일만 밟으며 달려 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문 앞에 서고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는 풀밭만 있던 그런 현실성 없는 꿈.
그러나 가끔은 너무나 잔인하게 현실적인 꿈도 있다. 잊고 살았던, 내 곁을 떠나간 망자들이 꿈속에 나타나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못다 푼 회포를 푸는 그런 꿈 말이다.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웃고 떠들며 행복한 시간을 나누지만, 갑자기 망자는 떠나가야 한다며 사라지고 만다. 간혹 가까운 가족, 친구 중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그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는 꿈을 꾸기도 한다. 키우던 개가 죽는 경우도 있다. 꿈속의 나는 그의 죽음과 함께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대화할 수 없다는 슬픔에 당황한다. 그리고 동시에 끓어오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한없이 쏟아내며 잠에서 깨어난다. 배게는 이미 눈물로 젖어있고 상쾌해야 했던 아침 공기는 눈물의 짠기가 대신하는 그런 꿈에서 깨어난다.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나면 순간적으로 이게 현실인지, 꿈이 현실인지 구분이 안될 때가 있다. 달콤한 꿈이라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기분 좋은 꿈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해 오늘 밤에 같은 꿈을 꾸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 때도 있다. 한편 안타깝고 슬픈 꿈이라면 잠깐의 혼돈 끝에 이것이 꿈임에 안도한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음에 감사를 느낀다. 그런 꿈은 다시는 꾸게 하지 말아 달라며 저 하늘의 누군가에게, 아니 나 자신의 무의식에게 기도한다. 그리고 침대를 나서고 이불을 개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나는 꿈의 내용을 새까맣게 망각한 채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꿈은 그 좋고 나쁨을 떠나 온전히 휴식에 집중해야 하는 수면시간에 정신을 활성화시키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현실에서 마주한 스트레스는 꿈에 많은 영향을 주는데, 특히 극심한 스트레스들은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있다가 그날 밤 꿈에 나타나 휴식을 방해한다고 한다. 꿈을 많이 꾸는 사람은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다는 의미다. 흔히들 말하는 '군대 꿈'이 그런 경우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곳에 있다가 나오면 무의식에 있던 군대에서 겪었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쉬고 있는 사람의 휴식을 방해하게 된다.
잠을 자는 동안 분명 느끼는 것들이지만 현실에서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 인물, 소리, 느낌, 우물에서 튀어나오는 귀신과 숲 속에서 기어 나오는 좀비들까지, 모두 그런 스트레스가 만들어 낸 환상이다. 환상, 환상이라는 단어가 꿈을 묘사하는데 가장 정확하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임에도 현실처럼 보이는 그런 것들. 가끔은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화려하고 황홀하기도, 가끔은 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처럼 털끝이 곤두서기도 하는 환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상일지라도, 그런 환상의 순간순간에 나만의 낭만이 숨어있다. 이루고 싶었지만 차마 다가가지 못하는 것들을 꿈에서 즐길 수 있다. 눈 덮인 고요한 북유럽의 어느 산골짜기에서 나무를 패고 장작을 태우며 진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한때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익숙한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다. 차가운 여름날, 한강에 잠긴 빙하를 뒤집어쓰고 태평양 하늘을 뛰어다닐 수 있다. 유머로만 듣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태닝을 하며 눈싸움을 할 수 있다.
낭만이 숨어있는 환상, 꿈은 안타깝게도 잠에서 깨어나면 금방 잊히며 평생토록 같은 꿈을 꾸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무섭고 슬픈 꿈도 마찬가지다. 한껏 취해있던 낭만과 슬픔에서 깨어나면 그것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나는 무의식에서 해독된다고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 간에서 알코올을 해독하듯, 취해있는 낭만과 슬픔은 무의식에서 해독되고 저장된다. 그렇게 꿈과 함께 들이킨 낭만과 슬픔이 더 이상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잠에서 깨어날 때 환상에서도 깨어나 비로소 현실을 현실답게 살아가게 만든다.
나를 취하게 만드는 낭만과 슬픔을 가득 담은 환상을 대체 누가 만들어내는 걸까, 어떤 고약한 사람이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면들을 뇌리에 박아 넣고 나 몰라라 다시 망각시키는 걸까. 하늘에 물감 한 방울 떨어뜨려 퍼져나가는 수채화를 꿈속에 그려낸 그 작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온갖 모순되고 그 자체로 반어법이 되는 행동과 상황들로 가득 찬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환상. 휴식을 취하기 위한 수면시간을 스트레스로 얼룩지게 만드는 환상. 그 환상을, 꿈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부탁하고 싶다. 이왕 겪는 스트레스, 슬픔 없는 낭만의 순간들로만 꾸며달라고. 새까맣게 타버려 그을음을 달고 다니는 스트레스에게 형형 색깔 물감을 끼얹어 더 화려하고 찬란한 환상을 만들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