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에 대하여_

'Dandelion', Masaaki Kishibe

by 레드오렌지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갑자기 자라나는 감정의 손톱이 심장 왼편을 콕콕 찌를 때를 설렘이라 한다. 가만히 잠들고 있던 심장은 갑작스레 다가온 충격에 이리저리 쿵쾅쿵쾅 갈피를 못 잡고, 따라 차오르는 머릿속 벅차오름은 뇌의 부분 부분을 급작스럽게 활성화시킨다. 몸을 휘감아 돌던 모든 피와 에너지는 이 둘에 콸콸 쏟아져 내려 곧 손발이 차가워지고 귀가 멀어버리며 시야까지 좁아져 바로 앞에 있는 설렘의 주체 밖에 바라볼 수 없게 한다.


감정의 손톱은 모든 이가 예상하는 화려하고 장대한 순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익숙했던 상황에서 예고 없이 찔러온다. 익숙하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런 평범한 일상. 숨어있던 감성은 계속 숨어있을 거라 생각했던 습기 가득한 오후, 해질녘 노을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가던 순간. 오늘도 평범하게 흘러갔구나, 하고 집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려던 그때가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감정의 손톱이 찔러오는 순간이다.


습기 가득한 여름날, 여느 날처럼 걸려오는 전화 한 통과 갑작스레 던져지는 이상한 질문, 저 멀리서 전화를 들고 뛰어오는 익숙한 사람이 그런 손톱을 가지고 다가온다. 차가운 겨울날 눈사태에 휘말려 추위 속에 죽음만을 기다리던 그때, 브랜디를 목에 걸고 이리저리 귀찮은듯한 얼굴로 눈을 파내는 구조견의 발톱에 그런 감정이 실려있다. 따스한 온돌방 위에 앉아 바깥의 눈 내림을 바라볼 적에 품에 가득 귤을 안고 웃으며 달려오는 어린아이의 두 팔 속에 그런 감정이 함께한다.


설렘, 설렌다, 설레다. 설레게 한다. '설레다'라는 동사는 그가 활용되는 모든 단어를 만났던 순간과 대상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날 피부가 느낀 온도와 습도, 이어폰으로 듣던 익숙한 음악, 코끝을 감돌던 베이커리에서 흘러나오던 빵 냄새, 바라보던 건물과 도시, 분위기, 주변을 지나다니던 자동차의 엔진 소리, 나름 신경 쓰고 나갔던 옷차림. 나를 설레게 한, 혹은 누군가를 설레게 했던 그 시간과 공간의 오감이 그대로 감정의 손톱에 실려 심장에 박혀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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