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에 대하여_

'Falling', Yiruma

by 레드오렌지

땅 밑으로 꺼진 싱크홀에 한없이 떨어져 내리면 차라리 내핵에라도 발에 닿아 뜨거운 열에 갇혀 고통을 면할 수 있었을 텐데. 밑바닥 없이 끝없이 뚫려있는 부끄러움이라는 구멍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머리 위에 흩날리는 서린 칼날들이 들끓고 발 밑에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정신을 아득하게 한다. 끝없이 떨어져 내리는 이 중력의 끝이 어딘지 모르게다만 시간이 지나도 지나도 나는 그것에 휘말려 끊김을 모른 채 낙하하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만은 선명하다. 언제부터 떨어져 내렸을까, 그 시작은 어디였을까, 아니, 애초에 나는 여기에서 태어났던 건 아닐까, 아무것도 없는 공허의 소용돌이가 벼락 쳐 내려 한도 끝도 없는 이 구멍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누군가 와서 구해줬으면 좋겠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안중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어딘가로 끝없이 떨어져 내려갈 뿐이다. 주변의 시선과 비판에 몽롱해진 정신은 그저 바로 앞에 있는 사물만을 시야에 들어오게 하고, 떨리는 손과 발에 흔들리는 공기는 다시 주변으로 전해져 또다시 부끄러움이라는 구멍으로, 나락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인생을 살아온 겪었던 많은 경험은 지금 겪고 있는 부끄러움이 시간이 지나면 좋았던 추억 혹은 딱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외치며 몽롱해진 정신을 계속 깨우려 시도하지만, 그 순간에 갇혀버린 부끄러운 정신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영원히 그 속에 갇혀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떨 뿐이다.


아아, 부끄럽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없는 것, 그게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이미 어느 정도 세상을 안 채로 지금까지의 경험을 맞닥뜨리는 새로운 것들에 적용해야 할 시기이지만, 나는 여전히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고, 아직 서툴고, 아직 어렵다. 눈뜬 채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무언가 아는 척, 무언가 세상에 할 말이 많은 척 유세를 떨고 앉아있지만 그 속에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한 명이 웅얼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부끄럽다. 아는 척 떠들고 있는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있으면 끝없는 구멍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손끝이 떨리고 정신이 몽롱해진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건가, 아직까지 나는 아이일 뿐인 것인가. 배우고 익힌 것들을 실천해야 함에도 아직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나는 언제쯤 성장한단 말인가. 아니, 성장해야만 하는 건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이 한심한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성장에 대한 갈증으로 몸부림치는 뜨거운 사막의 개미지옥에게 잡아먹히게 되는 건 아닐까. 아무리 개인주의가 일반화된 사회라지만 세상은 아직 나에게 그 나이에 걸맞은 인품과 지식, 경험을 요구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아남아 인정받기 위해서 나는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몰라도 아는 척해야 하고 어려워도 쉬운 척해야 한다. 그 부조화가 부끄럽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자부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수없이 날아오는 질문 세례에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정도의 앎을 가지려면 그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정확한 앎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까. 그 속에서 모르는 것이 하나라도 나온다면, 나는 그것을 아는 것인가 모르는 것인가? 그 속에서 모르는 것을 나는 모른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진실로 알게 되는 것인가? 공자가 말한 앎은 언제 어떻게 완성되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그가 말한 문장 자체를 나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걸까.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게 진짜 앎이라면 나는 앎에 대해 거짓을 고하고 있다. 세상을 아는 것처럼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있다. 그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토대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재된 주관성과 성향을 배제할 수가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내가 사용하는 언어로 표현할 뿐이다. 모르는 자가 본다면 내 모든 것들이 지식과 철학이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아는 이가 본다면 이것은 독자 연구와 혼잣말이 이리저리 얽힌 하나의 괴물체일 테다. 그것을 드러냄과 동시에 나는 나의 무지를 세상에 드러내고 있다. 앎으로 포장한 모름, 지식으로 포장한 무지를 이 세상에 거짓으로 고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거짓을 고함으로써 앎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포장된 글을 쓸 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가 선명해진다. 그리고 완성된 글을 하나하나 읽어나갈 때마다 조금씩 그 경계가 벌어지고 있다. 하나의 문장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앎을 하나의 문단에서 비로소 알게 된다. 문단들이 모여 하나의 글이 완성되면 그제야 나는 내가 그 주제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무지와 부끄러움을 담아 글을 하나씩 내보낼 때마다 천천히 앎의 포장에서 벗겨져 비로소 모름으로 완성된 진실된 앎을 마주하게 된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보일 글들이 부끄럽다. 지금 느끼는 이 부끄러움은 개안의 시작인 걸까, 나는 이제야 눈을 뜨기 시작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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