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같이 빛나던 작은 섬

발리에서 생긴 일#12. 누사 렘봉안, 누사 페니다, 누사 세니간을 향해

by Redpanda

우붓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짧지만 특별했던 시간도 끝났습니다.

샘은 휴가 종료에 맞춰 다시 영국으로, 브람은 저희가 쿠킹클래스를 참여하는 동안 이미 누사 렘봉안 섬으로, 자비에는 제대로 된 폭포를 보기 위해 발리섬의 다른 지역으로, 엘은 베트남으로 흩어지게 되었죠.


저는 브람을 통해 알게 된 발리 오른쪽의 작은 섬, 누사 렘봉안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의 목표대로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는 작은 섬들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좌측의 큰 섬이 발리, 오른쪽에 작은 섬들이 누사 렘봉안, 누사 세니간, 누사 페니다


차 타고 배 타고 다시 차 타는 과정에서 멀미가 와서 한 이틀 고생했습니다. 저는 숙소를 연계해서 쾌속선을 탔는데, 저처럼 멀미를 하신다면 속도가 느려도 퍼블릭 보트를 타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인연이란 게 신기한 게, 보트 옆자리에 앉아서 새로운 친구 '이지'를 만났습니다. 우연히 다양한 국적의 혼자 여행하는 여자 친구들이 하나둘씩 친해져 모두 같은 숙소, 같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밤 해변에 있는 바에 가서 저희가 대화를 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다가 물어보았습니다. 억양을 보면 이쪽은 프랑스, 저쪽은 미국, 또 이 사람은 독일인데 그리고 그쪽은... 하며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저를 보더군요. 한국에서 왔다니까 대체 저희가 어떻게 친구가 된 건지 물었습니다. 오늘 오는 길에 만났다니 정말 신기해하더군요. 누사 삼인방 섬은 발리처럼 택시가 없어서 길에서 바이크나 부기카를 잡아서 협상하고 이동해야 했는데, 아무래도 명수가 많으니 서로 비용 부담도 줄었습니다. 큰 바나 레스토랑에서는 미리 연락을 하면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는 서비스를 해주기도 합니다.



여덟 명이나 있겠다, 싸게 협상도 해서 다음날 스노클링을 떠났습니다. 일전에 태국 파타야에서 날을 잡고 수상레저활동을 하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보던 색색의 열대어들의 향연을 보고 싶었는데 회색의 무채색의 물고기들이 식빵뿐 아니라 제 손도 물어뜯을 기세로 달려드는 것에 식겁한 기억이 있습니다. 다행히 이곳의 물고기들은 제가 상상하던 총천연색의 향연을 보여주었지만 아아 어제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전날 이동을 그렇게 한 데다가 또 스노클링을 하던 날 파도가 많이 쳐서 갑자기 멀미가 시작되더군요. 나중엔 어처구니가 없어서 저희끼리 웃은 게 여덟 명 중 세 사람은 스노클링 하다가 토했습니다.


과장법이 아니라 실제로요. 저는 두 번 크게, 다른 친구는 기침하듯이 한 번, 또 한 명은 무려 네 번의 거사를 치렀다고 하더군요. 토하다가 물고기 보다가 토하다가 헤엄치다가 토하다가 장소 옮기다가 했습니다.


이후에 사진을 보니, 다들 밝게 웃고 있는 와중에 배경에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멀미인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 많이 웃었습니다.





저희가 머물던 숙소는 지어진지 얼마 안 된 나 홀로 여행객을 위한 호스텔이었는데, 어찌나 시원하고 편안한지 며칠이 하루처럼 지나가며 쉴 수 있었습니다. 밤이면 다들 빈백과 해먹 혹은 풀장에 폭 빠져들어가서 반대편 섬의 불빛과 밤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습니다. 따뜻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책을 보다 보면 갑자기 열대지방 특유의 소나기가 새하얀 장막처럼 퍼붓기다가 또 거짓말처럼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렘봉안 섬에서는 자주 걸어 다닐 수 있었습니다. 시골 골목이 어찌나 평화롭고 예쁘던지 길을 잃어도 하하호호 웃으며 행복하게 헤매는 시간이었습니다. 누가 예쁜 옷을 샀다고 하면, 모두 같이 아 그 골목 끝길에 있는 옷집?이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섬이었습니다. 옷가게가 하나밖에 없었거든요. 숙소 오른쪽에 있던 작은 슈퍼마켓의 소년도 생각납니다. 작은 꼬마가 엄마를 도와 가끔 손님맞이를 도와주었는데, 외국인들과 대화를 하는 게 부끄러운지 연신 수줍어하며 도와주던 모습이 참 착하고 예뻤습니다. 다른 가게에서 관광객에게 파는 가격과 현지인에게 파는 가격이 다를 정도라 늘 바가지를 쓰는데 익숙했는데, 이곳은 미안할 정도로 싸게 파는 물건이 많아서 연신 다시 가격을 확인하기까지 했습니다. 발리섬보다는 훨씬 더 현지인들 본연의 삶이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섬 왼편에 데빌스 티어라는 파도가 블로우 홀에 들어갔다가 거대하게 부서져 나오는 곳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갔을 땐 뭣도 모르고 스윽 둘러보고 음... 별거 없네 하고 돌아왔었는데, 후에 해 질 녘에 다시 가보니 여기가 같은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모습을 봤습니다. 큰 건물이 하나 없어 지평선 위에 하늘밖에 없는 공터를 봤을 때야, 그동안 이런 지평선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 질 녘의 하늘이 보여주는 마법 같은 시간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파도는 하늘 높이 매우 쳐서 여러 번 관광객들을 뒤덮을 정도로 멋지게 부서져 내렸고 온 하늘은 보라색과 분홍색 물감이 뒤섞여 온 세상을 분홍색으로 뒤덮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머물던 누사 렘봉안의 바로 옆에 꼬마 섬이 하나 붙어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누사 세니간. 노란색 다리를 건너가면 들어갈 수 있는 섬이었습니다.



이 조그마한 섬이 어찌나 예쁘던지, 여기서 숙소를 찾았어도 괜찮았겠다 생각했습니다. 페인트로 알록달록 그려진 예쁜 벽화와 현판이 많아 골목골목 귀여운 섬이었습니다. 블루라군을 보기 위해 섬의 동쪽을 향해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바다색은 딱 칵테일 블루라군에서 보던 색이라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비현실적으로 밝게 빛나는 바다의 색과 파도가 칠 때마다 수십 미터의 전경이 새하얗게 보글보글 올라오는 것을 보며 그 칵테일의 이름이 괜히 그렇게 지어진 게 아니구나 무릎을 탁 쳤습니다. 칵테일로 만들어진 바다 같았습니다.


블루라군




누사 페니다는 일정이 맞는 사인방이 함께 떠났습니다. 저와 독일에서 온 니콜, 그리고 프랑스에서 온 루이스, 캐나다에서 온 디가 함께했습니다. 누사 페니다는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섬인데, 필터의 효과인 건지 실제로도 그런 장관을 보여주는지가 궁금했답니다. 누사 삼인방은 개발이 거의 되지 않아 비포장 도로가 많은데, 산비탈이 많은 데다가 땅이 울퉁불퉁한 바위 투성이라 이곳에서 스쿠터를 타던 자비에가 크게 다친 적이 있는 곳입니다. 때문에 저희는 기사분을 고용해서 갔습니다. 다른 곳이면 모를까 누사 페니다는 차를 타셔야 합니다. 차 안에서도 어찌나 길이 험한지 롤러코스터 타듯이 엉덩이를 찧으며 돌아다녔습니다. 실제로 눈앞에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고 멈춰있거나 사고가 난 스쿠터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세가 이렇게 험준한 만큼 원석처럼 강하고 거친 자연의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장관에 압도돼서 관광지 같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습니다. 초록의 굵직한 산세는 마치 공룡의 등처럼 쭉 뻗어내려 가고 그 아래는 온통 스카이 블루 빛의 바다가 넘실거렸습니다. 공룡 같은 섬이었어요. 갑자기 울부짖으며 섬이 일어설 것만 같은 패기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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