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13. 여기 같은 나라 맞아요?
그렇게 작은 섬에 매력에 푹 빠진 저는 더 작은 섬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 이름은 길리.
길리 트라왕안, 길리 에어, 그리고 길리 메노 셋이 나란히 붙어있는데 이름만큼이나 어여쁜 섬들입니다.
숙소 근처 노란 다리 옆에 선착장이 있다는 말에, 아침 일찍이 일어나 내려가서 티켓부터 샀습니다. 일단 셋 중 가장 크다는 트라왕안으로 정했습니다.
비가 오는 흐린 선착장에 앉아서 다른 배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놀란 건, 누사 렘봉안에서 출발한 배가 바로 길리로 가는 게 아니고 다시 발리 본섬(나니!)까지 돌아갔다가 발리에서 길리로 가는 더 큰 배를 타고 가더군요. 멀미 꾼인 저이지만 다행히 기절한 듯 잠들어서 실려왔습니다.
누사 렘봉안에서 먼저 길리로 떠난 네덜란드 친구 비키가 머물고 있다는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섬이 어찌나 작은지 선착장에서 삼백미터 정도 걸으면 바로 앞에 숙소가 있었습니다. 길리섬은 모터를 이용한 운송수단을 사용할 수가 없어서 보통 걷거나, 좀 빠르게 가고 싶으면 자전거를 타고, 큰 짐이 있으면 마차를 탑니다. 보트에서 내리자마자 숙소까지 가는 손님을 잡기 위한 호객행위꾼들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씩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습니다. 삼백미터 따위! 드디어 이 운전 못하는 뚜벅이에게 맞는 곳에 온 것 같았습니다. 제가 처음에 상상했던 발리의 크기가 딱 길리 T의 크기였습니다.
헌데 같은 인도네시아인데도 길리와 발리는 굉장히 다르더군요. 생각해보면 이렇게 큰 나라를 참 모르고 살았습니다. 발리는 16세기에 이슬람 세력의 침입을 피해 왕족과 귀족들이 피난 오면서 유일하게 힌두교 문화가 명맥을 유지한 섬입니다. 그 외의 섬은 대부분 이슬람 문화권이란 걸 길리에 와서 느꼈습니다. 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모스크였고, 일부 소녀들은 히잡을 쓰고 몸을 대부분 가리고 있었습니다. 이슬람권으로 여행을 와 본 것이 처음인지라 섬 전체에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고 있는 코란을 읽는 소리가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발리에선 주로 개와 강아지가 많던 것과 대조적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고양이들이 다 흔히 말하는 개냥이들이라 사람을 보면 다가오고 밥이라도 먹으려고 하면 의자 위까지 올라와서 기웃거립니다. 어딜가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고양이들이 많이 보여 고양이 섬이라고 불려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신기해서 찾아보니 이슬람교에서는 개를 부정적으로 보고,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그렇게 애묘인이었어서 그렇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설마 싶었습니다. 근데 정말 발리에서 그 많던 개를 길리에선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양이들 꼬리가 뭔가 이상합니다. 중간에 잘린 것처럼 짧고 뭉툭한 것이 누가 괴롭히기라도 했나 걱정스러웠습니다. 어째 귀가 살짝 패인 아이들도 많고. 다행히도 꼬리는 유전적인 요인이고, 귀는 너무 불어나는 고양이 개체를 조절하기 위해 중성화가 된 아이들이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보니, 어젯밤에 생일인 친구가 있어 큰 파티가 있었다며 그 여파로 숙소에서 요양하고 있던 독일 친구와 프랑스 친구를 만났습니다. 요일마다 가야 하는 바가 정해져 있을 정도로 밤문화가 꽤나 엄청난 것 같았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이 친구들과 석양을 보기 위해 해변으로 나왔습니다. 해변은 선착장을 중심으로 섬 반 바퀴 정도를 식당과 칵테일 바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 큰길을 벗어나 안쪽 골목으로 들어오면 집들이 있고 고양이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섬 한가운데엔 모스크 탑이 우뚝 서있는 게 길리 T의 전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섬이 작으니 정말 해변을 따라 걷고 또 걸으면 처음 그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선착장에서 오른쪽으로 상점의 행렬의 가장 끝집까지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맥주를 마시다가 바로 바다로 걸어 들어가 달빛 아래서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직원 분이 제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지금은 철수했지만 바로 옆에서 윤 식당을 촬영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윤 식당을 보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방송을 찾아보니 다 알겠는 곳이라 반가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푹 자고 있는데 새벽같이 코란을 읽는 방송이 시작되며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이게 뭔 상황인가 커튼을 젖히고 나니 반대편 침대에서 역시 몸을 일으킨 같은 방 친구가 웃으며 "믿을 수 없지? 나도 처음엔 그랬어"라고 말하는 인사를 받으며 기상했습니다. 그 친구는 사우스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로, 오늘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오후에 도착했다는 저에게 놀라운 정보를 흘려주었습니다.
그냥 자전거 타고 해변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데서 스노클링 마스크를 끼고 들어가면 바다거북을 만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