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14. 안녕 바다거북
마치 동화에 나오는 요정처럼 “얘야 해변에 들어가 보면 바다거북을 만날 수 있을게다”라는 말을 날린 후 그 친구는 떠났습니다.
오늘은 바다거북을 찾아봐야겠다 생각하며 쭈그리고 앉아 짐 정리를 할 때 뒤에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새로운 친구가 들어오나 보군 하며 짐 싸기에 매진하고 있는데 뒤에서 묘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뭐지? 하고 뒤를 돌아보니... 돌아보니... 우붓에서 함께 여행 한 자비에였습니다! 와 그 반가움이란! 배낭여행객들이 가고자 하는 코스가 겹칠 때가 많아서 이전에 봤던 사람들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보는 경우가 흔히 있긴 했지만 이 반가움과 비할 데가 못됐습니다.
여행지에서 친해진 친구들과는 언제쯤에나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작별인사를 하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친구들은 헤어질 때 쿨하게 특별한 작별인사도 안 하는 것 같았는데 저는 누구 하나 떠난다고 하면 너무 아쉬워서 새벽같이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배웅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퀘벡을 여행 가야 다시 볼 수 있으려나 했던 자비에를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되다니! 참 많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가장 편하게 대화를 나누던 친구와 더 함께 할 수 있다니 운이 참 좋았습니다.
제 놀라는 얼굴을 보고 자비에가 씩 웃더군요. 제가 길리에 도착했다는 걸 먼저 알고 있었거든요. 놀라게 하려고 오고 있다는 얘기를 안 해주고 나타난 듯했습니다. 자비에를 방으로 안내해준 호스텔 스텝 분도 반가움에 호들갑 떠는 저희를 보고 처음엔 어리둥절하고 서있다가 이내 상황을 이해하고 웃었습니다.
우붓을 떠난 뒤 각자 여행한 곳에 대한 얘기는 천천히 나누기로 하고 호스텔에서 자전거와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 소문 속의 바다거북을 찾아 나섰습니다.
바다거북 찾기 Take 1.
찌는듯한 온도와 작렬하는 열대의 햇볕 아래에서 찌그렁 찌그렁 소리를 내는 자전거를 타고 울퉁불퉁한 돌을 피해 달렸습니다. 왼편에선 한 낮의 바다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스노클링을 하고 있는 스폿에 들어가라는 조언을 따라 괜찮은 곳을 찾아 나섰지만 마땅한 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너무 더워서 일단 한 번 열기를 좀 식혀볼 심산으로 수심 얕은 바다라도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바닥에 산호 껍데기가 많이 깔려있어 오리발을 먼저 껴야했습니다. 오리발을 끼고 걷는 게 불편해서 수영하며 나아가는 게 낫겠다 싶어 누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접시물에 코 박고 수영하고, 자비에는 뒤로 걸으면 편하다며 오리발을 끼고 문워크를 시전했습니다. 결국 자비에도 끝나지 않는 접시물을 걷느니 입수가 낫겠다 싶었는지 입수를 선택했고 곧바로 절규했습니다. “뜨거워!!!” 네, 얕은 바닷물을 뜨거울 수 있더군요. 그렇게 두 덤앤더머는 더위 식히려고 온천에 들어왔습니다. 영화 ‘나 홀로 집에’에 나오는 어설픈 도둑 2인방이 불현듯 떠올랐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제 장비에서 물이 새서 한참 장비와 씨름하다가 안되겠다 싶어 한차례 퇴각했습니다. 숙소를 들러 장비도 교체하고 카페에서 커피와 당 충전도 하고 나자 이번에는 아까랑 달리 반대쪽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지난밤 갔던 끝집(윤 식당 촬영지 부근)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 보니 이쪽이 깊은 물이었습니다. 서쪽 해변이 물이 얕아 그네 같은 것을 설치되어 있었고, 남동쪽은 수심이 깊어 배가 드나들고 수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다거북 찾기 Take 2.
선착장 근처 비치베드에는 선탠을 하다가 물에 들어갔다가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배가 드나들 정도면 꽤나 깊겠구나 하며 반신 반의 하는 마음으로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수월하게 풍덩!
처음엔 굉.장.히 많은 물고기에 놀랐습니다. 그냥 바다로 걸어 들어갔는데 스노클링을 할 수 있다는 게 경이로웠습니다. 형형 색색의 물고기들에 홀린 듯이 따라들어갔는데 코 앞에서 수심이 급격히 깊어져서 놀랐습니다. 마치 수중 절벽 위에 서있는 듯했습니다. 한 발짝 더 내밀어도 물이 있으니 추락하진 않겠지만 여기부턴 정말 자연의 세계인 ‘바다’ 구나 싶어 그 거대함 앞에 압도되었습니다. 한걸음 차이로 선명한 경계선이 그어진 듯 했던 두 바다의 빛깔도 물고기의 수도 달랐습니다. 한 걸음 전은 모래사장에서 빛이 반사되어 띄는 스카이 블루빛 바다, 한 걸음 앞은 끝을 알 수 없는 짙푸른 아쿠아 마린 색의 바다.
게다가 해수욕장과 달리 파도 외에도 물 안에서 옆으로 흐르는 해수의 흐름이 따로 있었는데 어찌나 빠른지 가만히 있어도 수영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그쪽으로 휩쓸려 가는 식이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해양세계는 정말 멋졌지만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간신히 해류에 휩쓸리지 않고 버티기가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자칫 하면 엄청난 해심의 바다로 날아가 버릴 수 있겠구나. 아무리 수영을 할 주 알아도 바다와 체력 싸움은 말도 되지 않기에 힘이 빠지기 전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진짜 바다의 일부를 이제야 엿본 것 같았어요.
바다거북 찾기 Take 3.
조금 더 자전거를 타고 가보니 Turtle Point라고 적힌 나무 표시판이 작게 꼿혀있었습니다. 크게 간판이나 입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이 세워 놓은 것 같은 눈에 띄지 않는 표시판. 앨리스가 토끼굴을 발견해 들여다보듯 호기심에 한번 더 바닷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습니다.
다행히 이곳은 물살도 수영할만했습니다. 한참을 눈앞에 펼쳐진 해조류를 보며 연두의 바다숲 위를 날아들어갔습니다. 좀 더 깊어지자 이젠 산호 숲이 나타났습니다. 신기한 물고기를 보면 서로 스노클링 마스크를 물고 “으! 으!! 흐으!” 이상한 소리를 내며 서로 알려주고 있는데, 갑자기 자비에가 다급하게 저 앞 허공을 가리켰습니다.
뭘 보라는 거지? 하며 눈 뜬 봉사처럼 갸웃거리고 있는데… 있는데… 거대한 바다거북이 유유히 그 앞을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거북이는 자기를 가리키며 굳어있는 저희를 힐끔 보더니 깊은 파란으로 천천히 날아 들어갔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거북이를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바닷속에서 본 거북이는 경이로웠습니다. 육지에서 느릿하게 기는 모습만 봐서 바닷속에서의 모습은 이럴 것이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물속에선 좀 빠르겠지 했었는데 물 만난 고기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거북이는 바닷속을 날.고 있었습니다. 여유롭고 부드럽게. 햇볕이 커튼처럼 흩날리는 수면을 향해 더 높이 높이 훨훨.
*저희는 물속을 들락날락 하느라 촬영할 수 없었지만, The Gili Guide에서 거북의 사진을 첨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