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에 뭐가 있는데요?

발리에서 생긴 일#15. 길리섬에서의 나날들(상)

by Redpanda

그럴 때 있는 거 아세요? 나에겐 너무 자연스러운 일에 다른 사람한텐 말도 안 되는 일인. 제가 낚시를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게 자비에에겐 그런 일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선 워낙 호수가 많아 수영과 낚시가 흔한 취미이다 보니 낚시를 안 해봤다는 게 마치 태어나서 아이스크림을 한 번도 안 먹어봤다는 것처럼 들렸나 봐요. 서로 배경이 다르니 배경지식과 경험도 다른 게 당연한 거지만 때로는 놀람이 생각보다 먼저 튀어 나가곤 합니다. 그럴 때면 '당연한 일'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우리는 대부분 집 근처에 호수가 없고 다른 류의 취미생활을 한다고. 다른 배경에서 온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당연했던 삶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그렇게 생애 최초의 낚시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낚시란 게 그저 낚싯대를 쥐고 세월아 네월아 신선처럼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불현듯 떠오르는 해답처럼 물고기가 잡히는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느릿한 제게도 맞겠다 생각해서 덥석 낚싯배에 올랐는데 제가 바로 미끼 문 생선이었습니다. 세상에 물고기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보다 꽤 부지런해야 했습니다.


낚싯배 아래에 투명한 유리창이 있었는데, 그 유리창을 통해서 밑에 굉장히 많은 물고기들이 보여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던진 바늘 앞을 알짱거리는 물고기를 보며 살살살 낚싯바늘을 흔들어 댔습니다. 물어라 물어라! 그리고 물었다! 그럼 이젠 낚시왕 강바다처럼 월척이오! 하고 들어 올리려는데 꿈.쩍.을 안 했습니다. 물고기보다 힘이 달리다니. 아무리 용을 써도 당최 낚싯줄을 감는 게 잘 되지 않아서 으어어어어어 하고 괴성만 지르며 허둥대는 사이에 물고기는 미끼만 쏙 빼먹거나 아예 이빨로 낚싯줄을 끊어 유유히 도망갔습니다.


생각이나 정리해볼까~하고 시작했다가 전쟁 같은 힘싸움을 했습니다. 하필이면 끌어올리지도 못하는 제 것만 계속 입질이 오는데 그걸 계속 놓치니 동승인들이 사방에서 끌어! 올려! 돌려! 를 미친 듯이 외쳐대는데 컬링선수 팀의 영미!!! 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미친 듯이 돌리고 돌리고. 저라는 초심자는 그저 물고기의 힘을 손 끝으로 느낀다는 게 신기해서 계속 웃기 바빴습니다.


2018-02-23_17;49;08.png 올려!!!(입질이 왔는데 왜 끌어올리질 못하니...)


저희가 잡은 건 네 마리. 사진 속 밝은 줄무늬가 있는 아이를 보고 친구가 피라니아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게 막 잡았을 땐 밝은 주황색 무늬가 선명하고 이빨도 톱줄 같은 게 좀 무서웠습니다. 동승했던 현지분은 타이거 피시라고 했습니다.(@최강희님께서 트리거 피시로 불린다 정정해 주셨습니다:). ) 사실 생선을 손질하고 굽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나이트 마켓에서 사 먹는 게 낫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최초의 낚시를 해봤다는 데 의의를 느낍니다. 저희는 여유 있는 취미생활이 목적이어서 줄낚시를 했지만 현지분들은 작살 총을 쏴서 잡는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야간에 물고기들이 잠이 들어있을 때 굉장히 많이 잡는답니다. 근데 이게 안 좋은 게 작살이 산호를 관통하면서 많은 산호가 파괴된다고 해요.


IMG_4008.JPG 피라냐 아닙니다
IMG_4021.JPG


길리에서는 거의 밤마다 나이트 마켓에 가서 물고기 구이를 먹었습니다. 정말 큼직한 물고기들을 현장에서 고르면 그릴에 구워주는데 맛도 좋고 밤 시장의 활기참이 좋았습니다. 처음엔 포장마차 두 개 정도가 있는 규모에 나이트 마켓 인지도 몰랐는데, 후에 물어보니 얼마 전 지진이 났을 때 다 무너져 지금은 이 두 가게 밖에 없다며 뒤쪽에 숨겨진 폐허를 보여주었습니다. 해변 대로의 밝은 불빛과 활기찬 가게들 바로 뒤에 어둠 속에 부서진 시멘트들 덩어리로 가득한 폐허가 보여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늘 밝아 보이던 친구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게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강인하게 다시 한번 상처를 딛고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하단의 대형 물고기는 제 뱃속으로 들어갔습니다.
IMG_4002.JPG 블랙피시와 꼬치
IMG_4090.JPG


나이트마켓 가판대에는 크게 생선과 꼬치, 스프링롤, 밑반찬들이 있습니다. 보통 생선을 하나 고르면 쌀이나 미고랭 중에 하나를 옵션으로 줍니다. 양념된 물고기는 30루피(2400원) 양념 안된 블랙피시는 50루피(4000원) 선이었습니다. 굉장히 싼 가격인데 정말 맛있어서 가고 또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간 날에는 70cm가량 되는 대형 물고기(참치라고 했는데 불확실)를 12,000원가량에 사서 둘이 먹다가 다 못 먹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며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무언가의 진가를 알려면 한 번의 시도로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양꼬치 맛이 이상하다고 '별로'라고 판단을 내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 가게가 맛이 없는 걸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음식인 걸 수도 있습니다. 스노클링도 태국에서 해보고 별로다 라고 생각해서 이후로 전혀 하지 않았지만 누사 렘봉안에서 좀 더 멋진 바다를 보았고, 길리에서는 그 이상의 이상을 보았습니다.


이미지 출처_Lonely Planet



지난번 스치듯 바다거북을 보고 열광한 게 무색할 만큼 길리에서의 스노클링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길리에는 물속 석상을 보는 게 인기인데, 묘하게 해저도시 아틀란티스 같은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했는데 일부러 넣은 설치물이라는 걸 알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실제로 보니 조잡하게 관광객을 끌어들이려고 설치한 미끼(?)라기보다 환경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예술작품에 가까웠습니다. 이 조각상은 수중 조각가 제이슨 테일러의 작품으로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는 산호초가 재건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길리 메노 섬 해변에서 조금만 헤엄쳐 들어오면, 석상 사이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물고기 떼들이 헤엄치며 놀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놀이터에 온 것처럼 신나게 놀고 있는 물고기들을 보면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Gili-Air-turtle.png 출처. Blog_Wander with Laura_Bali’s Best Snorkelling? Amed v Gili Air


이어서 바다거북이 많이 출몰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틀 전 길리 T의 해변에서 우연히 바다거북을 만난 것으로도 번개를 맞은 듯한 감동을 받았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거북이들을 한 번에 보자니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평소 저는 '자연'에 크게 감동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산에 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고 자연경관보다는 문명과 사람에 초점을 두고 여행을 했습니다. 트랙킹보단 시장에서 현지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는 게 훨씬 흥미롭다 생각했죠. 그런데 아직 자연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그랬나 봅니다.


바닥에 앉아서 눈을 껌뻑이는 바다거북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손끝을 스치며 춤추는 색색의 물고기 떼들과 고운 미색의 산호들. 그리고 이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지켜야 한다는 전에 없던 강력한 보호의식이 생겼습니다. 곁에서 유영하는 바다거북을 거리를 두고 천천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거북이들이 더 안전하게 오래 바닷속에서 살 수 있길 바라는 것 외엔 더 바랄 게 없었습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연료를 쓰는 운송수단도 쓸 수 없고 커피 한 잔 마시려고 해도 테이크아웃 하기가 여이치 않은 걸 보면서 '불편하다'라고 불평했을 법도 한데 이 모든 불편이 너무도 반갑고 기뻤던 건 제가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붓에서 웰컴 드링크라며 플라스틱 비닐에 담긴 물을 나눠줄 때 목이 마르지만 받지 않는 등 플라스틱 사용을 굉장히 조심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제야 알 수 있었습니다.


테이크 아웃 따위 다 뭐람 텀블러가 없으면 그 자리에서 원샷을 해버리고 나오리라!





* 끝으로 조금이라도 그때의 감동을 나누고 싶어 유튜브 영상을 첨부합니다.


https://youtu.be/EQdw9QOaRL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