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 꿈 #1. 절벽과 계단

*잘 때 꾸는

by Redpanda

#1.


초등학교 땐 해마다 키가 10센치씩 자라며 십의 자리만 바뀌곤 했다. 그러다 보니 밤에는 성장통으로 다리가 욱씬거려 10시 드라마를 보며 내내 다리를 주물러야 했는데, 이렇게 잠이 들면 소위 키 크는 꿈이라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으로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절벽에서 떨어질 때면 늘 선택의 순간에 놓였다. 현실에서 절벽에서 떨어지면 식겁해서 심장마비가 오겠지만, (혹은 식겁하려는 순간 이미 죽었을지도) 꿈에선 추락하는 과정에 잠시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떻게 떨어져야 덜 아플까 생각하며 하루는 발 뒷꿈치로, 하루는 발바닥 전체로, 하루는 과감하게 앞꿈치를 세워 추락하곤 했다. 사실 흠칫!하며 깜짝 놀라 깨어나는 게 다 였지만 그래도 그 충격의 질감이 제각각 이었다. 뒷꿈치로 떨어지면 꿍!하며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둔탁한 충격이 순식간에 충격파처럼 전달되는 느낌이었고 앞꿈치로 떨어지면 온몸이 전기충격을 받듯 빠지직 뼈들이 바스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제일 무난한건 발바닥 전체였는데 하반신에 둔탁-묵직하게 전기가 지이잉- 오르는 느낌이었다.


좀 자라며 인지한 내 꿈의 양상은 현실과 비슷한데 현실을 배경으로 하되 현실에선 일어나기 어려운 약간 뒤틀리고 이상한 버전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때론 무의식중에 짊어지고 있는 갈등까지 정확히 반영되어 있었다.대개의 경우 꿈의 기억은 일어나고 신기루처럼 증발해버리지만, 꽤나 인상깊어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또렷한 꿈이 몇 가지 있다.


첫번째 꿈은 8살 무렵 꾼 꿈이다. 동네에 친구가 많이 없어 나를 많이 따르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내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상(당히)마이웨이였던 지라 외로운 동생을 챙겨주고 싶으면서도 이에 금방 싫증이나 귀찮아하곤 했다.


하루는 아직 7살, 유치원생이었던 동생이 초등학교 구경을 시켜달라고 해 모두 하교하고 텅 빈 학교운동장으로 데려가 함께 논 적이 있었다. 가을이 무르익어 쌀쌀한 날씨에 손이 시린, 하늘이 어둑어둑한 오후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가을운동회와 학예회준비가 한창이던 시기라 위에 윗학년들이 양 팔에 흰색 기다란 팔토시를 끼우고 전통춤같은걸 연습하던 시기였는데, 누군가 분실한 듯한 팔토시 하나가 운동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남은 한짝이 있을 거라 생각해 운동장 구석구석을 돌았지만 나머지 한짝은 없었다. 우리는 주인이 잃어버린 한쪽을 찾겠구나 생각해 학교 분실물보관 선반에 두고오기로 했다.


문제는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의 분실물 보관선반이 지하 1층으로 들어가는 층계 사이에 있어 한 낮에나 겨우 햇볕이 드는 어두컴컴한 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어두운 층계참에 주인을 잃은 물건들이 주르륵 놓여있어 한낮에도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쉬는시간이면 친구들과 누가 더 깊이 내려가나 담력테스트를 하곤 했는데 그러다 지하 1층 철문가까이 내려간 누군가가 스스로 놀라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달려올라오기시작하면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허겁지겁 올라오다가 1층 정면에 거대한 전신거울에 다시 한번 질겁하여 교실이 있는 2층으로 다리가 찢어져라 계단을 세칸 네칸씩 뛰어 올라오는 코스였다. 덤으로 누군가는 꼭 넘어져서 같이 가자며 울음섞인 비명을 터뜨리곤 했다.


모두가 하교한 텅 빈 학교 1층 계단참에서 내려다 본 분실물 선반은 더욱 으스스하게 느껴져 동생과 나는 차마 내려가지 못하고 있었다. 서로 팔토시를 억지로 쥐어주며 네가 갖다놓고 오라고 티격태격했던 것 같다. 그러다 결국 팔토시를 나동그라 뜨리고 무슨 귀신에라도 씌인듯 서로 화가나 멀찍이 떨어져 올라왔고 운동장에서 아까 분명 없었던 나머지 한짝을 발견했다. 겁에 질리고 기분이 이상해진 우리는 아무 말없이 집을 향했다. 집 근처 횡단보도에 다다라 서로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해 동생은 나를 밀쳤고 나는 길 바닥에 떨어져있는 분홍색분필로 동생이름을 쓰며 겁이 많은 동생을 약올렸다.(어린시절 빨간 글씨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는 미신은 아이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했다) 동생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집으로 가버렸고 나도 기분이 울적해져(그래도 내가 언닌데 화도나고 동시에 부끄럽기도 했다) 집에 와서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 침대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게 동생을 본 마지막이었다. 며칠 후 이른 저녁 잠들어 있는 나를 엄마가 흔들어 깨웠고, 그 아이가 뺑소니사고를 당해 엄마와 다른 성당분들이 기도해주기위해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혼자 집 잘 지키고 있으라 당부했다. 나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신이 없었다. 교통사고 같은건 티비에서나 나오는 건 주 알았는데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불의의 사고겠지만 내가 쓴 빨간 글씨와 을씨년스럽던 그 날이 자꾸 생각났고 무서웠다.


죄책감은 바로 꿈으로 반영됐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꿈에 그 아이가 나왔다. 애니메이션 웨딩피치에서 본듯한 위아래의 끝을 알 수 없는 황금색 계단이 펼쳐져있었고 그 중간에 그애와 내가 함께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동생은 나에게 언니 우리 위로 더 올라가보자며 내 팔을 잡아 끌었고 나는 왠지 꺼림칙해 싫다고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그 연약한 아이가 괴력으로 나를 위로 잡아 끌었다. 내가 공포심에 완강히 거부하자 그 아이는 그럼 언니는 혼자 거기 있어! 하고 소리치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깃털처럼 올라가버렸다. 나는 황망히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엄마가 돌아오는 소리에 꿈에서 깨었고, 엄마는 그 아이가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했다. 작은 새처럼 가볍고 조그마하던 그 아이는 소리없이 증발해버렸고 이 넓은 세상은 그 아이의 부재가 티도 나지 않았다. 엄마는 그 아이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느낀 첫 죽음은 이슬의 증발과 같았다.


나는 이꿈에 어떤 종교적이거나 미신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뻔한 메타포가 난무하는 이꿈은 내가 가지고 있던 죄책감과 첫 죽음을 마주하고 느낀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리라. 그 아이가 병원에 있단 얘길 들었을 때 이미 불안감이 내 안에 싹 텄고 하필 그아이와 마지막에 내가 한 행동이 죄책감의 비를 내려 그러한 꿈을 꾼 것으로 머리론 이해했지만 한참동안 이 꿈은 내안에 주홍글씨처럼 남아있었다. 나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내 마음은 죄스럽고 이 꿈은 다른 꿈과 달리 잊혀지지 않는걸까 의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와의 마지막 만남에 내가 너무 못난 언니였던게, 울려서 보냈던게 못내 미안하고 죄스러워 마음이 괴로워 그랬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이 꿈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나의 어린 친구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내가 싸구려 공포일화처럼 만들어버리는게 아닐까하는 죄책감에 입이 꾹 닫혔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른 의미로 남아있다. 삶은 순간이고, 우리는 이게 마지막이 될 줄 모르고 이별을 한다. 그녀와의 이별이 그랬기에 마음을 어떻게 해야좋을지 몰랐다. 그 착한 아이가 마지막 순간에 나를 찾아와 같이 가자고 심술을 부렸을리 만무하고, 아직 살아 있는 나는 그녀를 생각할 때면, 매 순간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걸 상기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