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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페페 Jul 22. 2024

가정불화가 내게 준 것

그 시절의 상처와 고통은 지금의 나를

 

제 어린 시절은 꽤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거의 매일 싸우셨습니다.

돈도 별로 없고, 그래서 삶의 여유도 없고, 싸우고 지치고, 저를 돌보는 것도 많이 힘드셨겠죠.


미소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던 어린 소녀는 매일이 전쟁통인 집에서 미소를 잃고 불안과 함께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 누구도 저를 지켜줄 수 없었기에, 매일 매 순간 저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이 되는 길을 안전한 길을 꿈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지방의 어느 작은 동네에 사는 어린아이에게는 그것이 가장 현실성 있어 보였습니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잠이 오면 뺨을 때려가며, 매일밤 대기업에 못 가면 어떡하지? 좋은 대학에 못 들어가면 나는 어떻게 살지? 하는 불안에 눈물을 흘려가며 공부를 했습니다.


특출 나지는 않은 머리와 끈기라곤 없는 엉덩이로 겨우겨우 중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고,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겨우 대기업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저의 행복은,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은 없었습니다.


아직도 엄마에게 의존적인 아이,

아빠에 대한 가득한 피해의식,

습관이 된 불안과 공포,

폐허가 된 내면만이 남아있었습니다.


다시 또 애를 썼습니다.

이번엔 행복해지기 위해서요.

모든 것을 미루고, 이 불안을 견뎌내고,

대기업에 들어가기만 하면 가슴속 불안이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제 유년시절에 맘 편히 웃었던 기억이 없으니까요.

아주 사소한 것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사회는 학교와는 또 달랐습니다.

냉혹한 그곳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저는 철저히 짓밟혔습니다.


그렇게나 미워했던 부모님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망과 증오, 그리고 보상받고 싶은 마음으로 나를 좀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조금씩 과거를 치유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정말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내 미소를 빼앗고, 내 꿈을 없애고, 불안의 구렁텅이에 나를 집어넣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가난한 부모님을 부양해야 할지도 모르는 고통을 쥐어주셨다고.


하지만,

부모님의 불화가 없었다면 끈기도 없고, 특출 난 공부머리도 없는 제가 대기업에 들어와 이 정도 먹고살 수 있었을까요?

생존이라는 강력한 동기부여를 만들어 준 환경이 없었더라면 말입니다.


고통에 몸부림쳤던 유년시절에서 진정으로 벗어나기 위해 20대 초중반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생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공부를 했습니다. 별건 아니지만 제겐 그 또한 생존이 걸려있었습니다. 실패했고, 죽고 싶도록 아팠지만 지금의 저는 꽤 성장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이 모든 게 부모님 덕분이라고, 이 불공평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과 인간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서는 얻을 수도,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었죠.

더 이상의 원망과 후회는 남은 삶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문신처럼 각인된 두려움은 시시때때로 저를 잡아먹습니다. 이대로 멈춰있으면 안 될 거 같고, 뭐라도 해야만 할거 같습니다. 소진되어 버린 몸뚱이는 맘대로 움직여주지도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매일, 매 순간을 알아차리며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합니다. 그냥 그렇게 머무릅니다.


많이, 아주 많이 쉽니다. 많이 자구요.

그래도 괜찮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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