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존재의 가장자리에서
별 시덥잖은 사진 몇 장을 올려두고 존재가 어떻니, 인식이 어떠하니 떠드는 것이 스스로도 우습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한때는 사진을 진지하게 공부했고, 그 공부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속을 꽤나 썩이기도 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결국 카메라를 놓지 못한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글과 사진들을 봐주시는 분들이 늘 고맙다. 또 한편으론, 불친절한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도 궁금하다.
지금은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며 빚을 줄이고, 가족을 부양하는 재미로 살아간다. 그 와중에도 사진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사진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왜 시작했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이참에 스스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했고,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비슷한 길을 걸었던 아버지의 만류로 미술에 대한 꿈은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조직생활이나 학문탐구에는 감흥이 없었기에, 미술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남들이 입사 준비와 토익 공부에 몰두할 때, 나는 스스로 디자인을 배우고 작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사진을 활용하는 작업 이었기에 수많은 사진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브라질 금광 노동자 사진을 보게 된 것이다.
그때 나는 이미 미술의 길이 닫혔다고 생각했지만, 살가도의 사진은 마치 콘테로 거칠게 그린 듯한 질감과 빛의 유려한 흐름으로 마음과 눈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로부터 1년이 채 되지 않아,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첫 월급으로 샀던 노트북을 팔아 카메라 한 대를 샀고, 사진학원에서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다.
당시의 나는 살가도를 좇는 다큐멘터리 사진만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시장과 노동자의 현장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다.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이었고, 렌즈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그 즈음, 대학원 입학 지도강사였던 한 선생이 나의 다큐멘터리 열정을 비웃듯 한마디 했다. 그리고 당시 경일대의 교수였던 이상일 작가를 소개받았다. 그의 사진은 충격이었다. 강한 스트로보 라이트를 직사로 맞은 인물의 표정은 공허하고 거칠었으며, 그 중립적인 톤은 물리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묘한 거리감을 만들었다.
그것이 시작이었을까.
그때부터 나에게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사진으로서의 증언이란 가능한가’에 대한 회의와 의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내 사진은 길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나 방황은 길을 잃은 상태가 아니었다. 길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새로운 감각을 배우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와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던 시절, 나는 ‘증언’이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몰랐다. 타인을 찍는다는 것은 그들을 기록하는 일인 동시에, 내가 가진 시선의 권력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수록, 나는 대상에게서 멀어졌다. 빛은 늘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을 담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증명하고 있었던 거다.
그 무렵,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시작됐다. 사진은 세계를 기록하는 수단이 아니라, 나와 세계의 거리를 드러내는 장치가 아닐까. 그때 만난 것이 메를로-퐁티였다. 그는 ‘신체’를 단순한 육체가 아닌, 세계와 맞닿아 있는 지각의 매개로 보았다. 세계는 나의 감각을 통과해 다가오고, 나는 그 안에서 세계를 느낀다. 사진은 그 감각의 흔적이었다.
그 이후 나는 ‘보는 것’보다 ‘느끼는 것’을 배워야 했다. 사진은 더 이상 인식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가 내게 스며드는 지각의 사건이었다. 빛이 떨어지는 방향, 공기의 냄새, 발밑의 온도, 모두가 사진의 일부였다. 세계는 내가 열어젖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런 감각의 변화를 설명해준 또 다른 단어가 있었다 — 응시(le regard).
라캉이 말한 그 응시는 단순히 내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지 속에서 되돌아오는, 세계의 시선이었다. 사진 속 사물, 명암, 그림자 속 빈틈들이 나를 바라보는 듯한 낯섦을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세계를 찍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불편하고 섬세한 감정이, 사진을 다시 시작하게 만든 힘이었다.
그때부터 사진은 사건이 되었다. 빛이 꺼진 자리에서 문득 열리는 순간, 세계는 스스로 열림의 형태로 다가왔다. 나는 그저 그 열림의 흔적을 받아 적는 사람이었다. 사진은 더 이상 내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세계가 스스로 드러나는 사건의 기록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작아졌지만, 오히려 자유로웠다. 보는 자에서, 보이는 자로 옮겨가는 그 자리 — 그것이 내 사진의 출발점이자, 다시 시작점이었다.
이제 나는 그 시절처럼 거창한 주제를 말하지 않는다. 단지 일상 속에서, 빛이 머물다 사라지는 짧은 순간들을 붙잡는다. 그 안에는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된 세계의 시간이 숨어 있다. 사업과 가족, 현실의 무게 속에서도 사진은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여전히, 나와 세계가 만나는 조용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빛은 늘 사진의 언어였다. 하지만 이제 나는, 빛이 아니라 열림을 찍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열림’은 능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 듯, 세계가 잠시 스스로 틈을 내어 보여주는 일이다. 그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나는 다만 그 자리에 머물 뿐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세계의 벽을 두드리는 일이 아니라, 그 벽에 생긴 작은 균열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일이다. 그 틈을 통해 들어온 빛이 잠시 나를 스치고, 사라진다. 그때의 잔향이, 사진으로 남는다.
나는 더 이상 ‘좋은 사진’을 원하지 않는다. 대상을 재단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려는 욕망도 내려놓았다. 이제 나에게 사진은 ‘무엇을 보여주는가’보다 ‘어디까지 열리는가’의 문제이다. 삶 또한 그렇다. 사업과 가족, 피로와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가끔 세계는 불쑥 열려 짧은 순간, 나를 통과해간다. 그 순간만이 진짜다. 그때 나는 다시 카메라를 든다. 어둠이 스러지고, 빛이 머무는 찰나— 그것이 나에게 사진의 사건이며, 세계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열림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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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어로 올림
아마도 얼마 후 부터는 일주일에 1~2회로 발행 일수가 줄어들것 같습니다. 사진작업을 하고 생각을 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기존 블로그에 정리했던 사진들을 조금씩 재배열하고, 글에 살을 입혀 올리면서 매일 발행했지만, 졸작이라 하나 현생과 더불어 진행하는 일이 생각보다 힘도 손도 많이 갑니다. 부족하지만 봐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