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린 신화 속에 살았다.
개발과 도시화는 무질서의 자연을 질서의 미학으로 포장했고, 한강은 근대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겨울의 끝자락, 그 강변에서 내가 본 것은 화려한 기적의 잔해였다.
색이 바랜 구조물과 공허한 시설물들만이 남아 있었다.
한때의 유토피아는 막을 내렸고, 시계탑은 시간의 무상함 속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도시의 풍경은 더 이상 실재가 아니라, 신화가 남긴 얇은 무대 장치였다.
사진은 그 무대 위에서 사라진 신화를 응시한다.
기적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공허가 오히려 실재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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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나는 하나의 작업을 위해
소중하게 아끼던 35mm 카메라와 렌즈를 모두 팔았다.
그리고 중형 포맷 카메라, 핫셀블라드 503CX를 손에 쥐었다.
무거운 삼각대를 어깨에 메고,
한강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걷고 또 걸었다.
어떤 신념으로 그 무언의 고행을 이어갔을까.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작업과 노트는 부끄럽기만 하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만큼이나 절박했다.
오래된 외장하드 안에는
수없이 겹쳐진 보정 레이어와 미완의 이미지들이 뒤엉켜 있다.
촬영을 마치면 끊어질 듯한 어깨를 두드리며
신사역의 마젠타 현상소로 향하곤 했다.
조용히 필름과 밀착 프린트를 찾아들고,
기대와 실망이 엇갈리는 순간을 견디는 일 —
그것이 내 일상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 동력은 완전히 끊어졌다.
더 이상 작업을 이어갈 용기도, 명분도 없었다.
내 사진이 특별하지 않다는 자각,
그 평범함이 나를 천천히 무너뜨렸다.
그렇게 필름도, 파일도, 카메라도,
그리고 내 십자가 같던 삼각대까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참 부지런했다.
참 열심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 열정도, 힘도 없다.
그 사실이 슬프고, 또 아쉽다.
사진마다 붙인 제목의 뜻도 희미해졌다.
좌표와 숫자, 식별 기호의 나열일 뿐이다.
이제는 그것마저 **‘신화의 잊힌 언어’**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거나 새롭게 단장된 풍경들을 보며,
나는 자꾸 생각한다.
그때 내가 잡으려 했던 실재는
정말 거기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미 사라진 신화를
붙잡으려는 나 자신의 그림자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