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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a Mar 18. 2018

#22.'우연'이 '필연' 되어

제3부 모로코의 우스떼다(Teacher) - 07. 우연이 필연 되어 

07. 우연이 필연 되어 : 주제별 프로젝트 수업     

  

아이들과 함께 매일 음악, 미술, 체육, 만들기 등의 다양한 예체능수업을 하고 있었지만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수업을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였다. 이때 ‘어떻게 하면 모로코 문화에 맞으면서 지속가능한 수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차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스피릿(Spirit)’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보던 만화영화 중 ‘스피릿(Spirit)’을 감상하는 아이들


‘스피릿(Spirit)’을 출발점으로 매 달 한 가지 주제로 다양한 수업을 연계하는 ‘주제별 프로젝트 수업’이 시작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현지인 교사와 아이들 모두 그저 매일 매일 새로운 예체능 활동이라고 생각할 뿐, 주제별로 연계되어 수업이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매달 반복하는 주제별 수업 방식에 현지인 교사와 아이들의 이해도도 높아졌고, 활동물품신청을 통해 보다 풍부한 자료로 프로젝트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젝트 수업의 주제는 ‘가족-이웃-우리나라-세계 여러 나라’처럼 아이들에게 쉽고 접근 가능성이 높은 주제에서 보다 넓고 다양한 주제로 확대시켜 나갔다. 또한 ‘봄-여름-가을-겨울’의 주제를 통해 계절과 자연의 변화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업의 구성도 처음에는 아이들의 개별 활동 위주로 그림 그리기 및 만들기를 하다가 점차 4~5명의 그룹별 활동을 구성하여 아이들의 사회성도 키우고자 하였다. 


이렇게 주제별 프로젝트 수업은 우연 속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차 체계를 잡아가며 시민의 집의 필수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아갔다.      


① 10월 주제 동물 (Les animaux)

  

현지인 선생님이 가지고 있던 ‘스피릿(spirit)’이라는 인디언과 야생말의 우정을 그린 만화영화를 보고 난 후

 “다음 시간에는 영화 속 '말'을 그리고 색칠해 볼 거야.”


라고 무심코 아이들에게 말했던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었지만 내 말에 아이들은 다음날부터 “따따 소피아, 스피릿(spirit)은 언제 그리는 거예요?”라며 끈질기게 물어봤고, 이런 아이들에게 내가 한 말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동물 그림을 찾아 ‘동물 그림 색칠하기’ 수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아이들이 나의 자극제가 되어준 셈이었다.     


선생님돼지가 뭐예요     

  

이렇게 시작된 첫 번째 프로젝트 주제는 ‘동물’이었다. 수업은 먼저 영화 ‘스피릿(Spirit)’의 내용을 다시 한 번 회상해보고, 다양한 동물 그림을 소개해주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신기했던 건 이슬람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모로코에서도 돼지를 볼 수가 없는데, 그래서인지 모로코 아이들은 돼지라는 동물 자체를 몰랐다. 하지만 한국 사람에겐 익숙한 돼지였기에 ‘돼지’ 그림을 프린트해갔던 나는 아이들에게 ‘돼지’를 설명하느라 한참을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여곡절 끝에 동물들을 소개한 후에는 ‘동물 그림 색칠하기’를 했다. 이때도 종이접기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동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활동을 할 때마다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더니 이제는 점점 자기 주관이 뚜렷해지는 것 같았다. 


이전에 선긋기만 해봤을 뿐 처음으로 색칠을 해야 했던 아이들. 물론 몇몇은 꼼꼼하게 색칠하였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한 가지 색으로 선의 구분 없이 종이 전체에 색칠을 하고 있었다. 삐뚤빼뚤 엉성한 색칠이었지만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색칠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기쁜 듯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처음으로 색칠하기에 도전하는 아이들
5세반 아이들은 한 가지 색으로 종이 전체를 칠하기도 했다
다양한 색을 사용하여 색칠하던 미술적 재능이 뛰어났던 6세 헤비브(Habib)

‘동물 그림 색칠하기’에이어 ‘컬러점토로 동물 만들기’, 2년 동안 쓰레기만 가득한 채 방치되어 있던 모래장에서 ‘동물원 만들기’까지 기관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며 다양한 동물 연계 수업을 시도했다.    

  

컬러점토로 염소 모양을 만는 아이
컬러점토로양 모양을 만든 아이


티플렛(Tiflet) 동물원     

  

‘동물’이라는 주제로 한 달간 수업이 진행되면서 틈틈이 각 반의 동물색칠그림을 모아 각 반의 동물원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각 반의 동물원 그림을 연결시켜 하나의 티플렛(Tiflet) 동물원으로 완성했다. 지난번 너무 어려 ‘바닷속 종이접기’를 하지 못한 5세 반 메리엄 선생님이 자기 반도 저런 작품 갖고 싶다고 졸라대는 통에, 이번엔 5세 반까지 포함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동물’ 주제 프로젝트가 끝나는 날. 모두 모여 완성된 티플렛(Tiflet) 동물원을 감상하였다. 그러자 아이들도 선생님도 뿌듯한지 자신의 그림이 포함된 동물원에서 저마다 자신의 동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나 역시 아이들보다 더 신이 나서 동물원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첫 번째 동물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5세, 6세, 7세반의 동물원 그림이 완성된 모습

  

② 11월 주제: 가을 (L'automne)     

  

‘동물’ 주제에 이어 선택한 주제는 모로코의 11월 날씨에 적절한 ‘가을’이었다. 아프리카의 날씨는 365일 무더울 것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큰 착각이었다. 모로코는 한국과 같이 사계절이 있었고, 심지어 겨울엔 아틀란티스 산맥 주위에 눈도 내려 스키장도 있는 나라였다. 이렇듯 사계절이 있기 때문에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 주제는 모로코의 아이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어 적절하다고 생각되었다. 


오감으로 느낀 가을의 추억들      

  

11월이 되자 비가 많이 내리면서 모로코는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져 한국의 가을과 비슷한 날씨가 되었다. 이런 날씨에 걸맞게 ‘가을’을 주제로 선정하고 먼저 아이들과 가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을 날씨는 어떠니?’
 ‘가을 나뭇잎을 본 적이 있니?’
 ‘가을 나뭇잎 색은 어떻게 변했니?’
‘가을 나뭇잎 색은 왜 변하는 걸까?’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현지인 선생님들과 함께 마인드맵도 구성해보았다.      


이후에는 유치원 뒷마당에 가서 낙엽들을 모으고 여름 나뭇잎과 가을 나뭇잎, 가을 나뭇잎으로 변해가는 과정의 나뭇잎들을 분류해보기도 했다. 모아진 낙엽들을 바람에 떨어지는 것처럼 재연도 해보고, 가을 길 산책도 했다. 물론 이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아랍어와 불어공부만을 중요시하던 유치원 원장은 교실에서 수업안하고 돌아다닌다며 싫어했고, 유치원 선생님들도 너무 아이들과 노는 것이 아니냐며 나에게 되묻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난 아이들에게는 글자 공부가 아닌 오감을 느끼는 수업이 필요하다고 열심히 설명을 하며, 꿋꿋이 자연학습을 이어나갔다.     


유치원 뒷마당의 나뭇잎을 모으는 아이들
유치원 뒷마당의 나뭇잎을 모으고 분류하는 아이들
나뭇잎들을 모아 종류별로 분류한 아이들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실험해 보는 5세반  아이들


자연을 관찰하며 ‘가을’을 한껏 느낀 후에는 동요 ‘가을 길’을 불어로 번역하여 알려주었다. 이때 마침 학생 중 한 명이 멜로디언을 가지고 와서 멜로디언으로 음을 들려주며 노래를 가르쳐 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관찰한 가을 낙엽에 색칠을 하여 각 반의 ‘가을 나무’도 만들었다. 이렇듯 한 달 동안 아이들과 나는 모로코 가을에 흠뻑 빠져 하루하루 가을의 추억들을 만들어나갔다.      


유치원 나이트, 디제이는 따따 소피아     

  

추워지는 가을 날씨를 이겨내자는 의미로 일주일에 한 번은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유아 체조’도 했다. 사실 명칭이 유아 체조일 뿐, 신나는 음악에 맞춰 아이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시간이었다. 이때 종종 나는 아이들보다 신이 나서 부끄러움 따위는 멀찌감치 떨쳐버리고 아이들 앞에서 ‘개다리춤’도 추고, 막춤도 선보였다. 그런데 이런 나를 둘러싸고는 진지하게 내 모습을 따라하는 60명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난 늘 행복한 춤을 추곤 했다. 사실 한국이라면 쑥스러워 시도도 못 했을 테지만, 이곳 모로코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했다. 왜 그럴까? 외국이라는 자유로움과 60명의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빛 덕분인가. 어쨌든 곱게 물든 낙엽들과 함께 가을에 흠뻑 취한 아이들과 나의 두 번째 ‘가을’ 프로젝트 수업도 대 성공이었다!!     

동요 ‘가을 길’을 불어로 번역한 가사 판
아이들과 함께 만든 5세, 6세, 7세반의 가을 나무 작품
신나는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 체육시간

     

③ 12월 주제 가족(La famille)


12월 주제는 '가족' 으로 정했다. 원래는 ‘가을’에 이어 주제를 '겨울'로 하려고 했지만, 현지인 선생님들이 아직은 겨울이 아니라며 손을 내저어 ‘겨울’ 주제는 조금 미뤄두고, 아이들과 친근한 주제인 '가족'으로 프로젝트 수업을 구성하였다.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가족’이라는 주제는 아이들 모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하고 친구들의 가족 이야기를 들으며 그 어느 주제보다 높은 집중도를 보여주었다. 이때 나 역시 한국의 가족들을 아이들에게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 엄마, 언니 외에도 키우고 있는 강아지 두 마리를 나의 가족이라고 소개하자 애완동물 개념이 없는 이곳의 선생님과 아이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하지만 이에 더 진지하게 난 강아지도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에게 집에 있던 강아지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가족’을 주제로 하니, 아이들도 자신과 직접 관련된 주제였기 때문인지 이야기 나누기에도 열심히, 가족 그림 그리기에도 열심히, 집 만들기 모래놀이에도 열심이었다. 특히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건 ‘곰 세 마리’ 노래였는데, 율동도 율동이지만 아이들이 접하기 쉬운 음과 ‘으쓱으쓱’이 아이들 마음에 쏙 들었나보다. 현지인 선생님도 이 노래와 율동을 학기 마지막에 공연을 하자고 할 정도로 ‘곰 세 마리’의 인기는 정말로 대단했다. 역시 ‘가족’의 개념과 동요의 힘은 세계 어디에서도 대단하다. 모로코 아이들을 너무나 쉽게 하나로 만들어 주니 말이다.     


‘곰 세 마리’ 동요를 불어로 번역한 가사 판
자신의 가족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
자신의 가족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는 모습


아이들의 그림 속에 비친 모로코

     

아이들이 그린 가족 그림 속에는 모로코의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는데, 그중 몇 가지 재미있는 점들이 발견되었다. 아이들이 그린 엄마의 모습은 하나같이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기 위해 쓰는 천)을 쓰고 있거나 모로코 전통의상인 질레바를 입고 있었고, 남자는 모두 수염이 있는 얼굴에 이슬람 전통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모로코 사람들의 생활풍경과 이슬람 문화가 아이들의 그림 속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 신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7세 반 아이들은 집 안의 살림살이도 그림으로 그렸는데, 그중 한 아이의 그림을 보고 나는 배꼽을 잡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 아이는 네모난 모양에 동그랗고 검은 구멍이 가운데 박혀있는 무언가를 그렸다. 궁금함에 그림을 그린 아이에게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묻자, 그 아이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화장실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사실 모로코 가정집에 있는 화장실은 재래식이 많았는데, 아이의 그림처럼 하얗고 네모난 타일에 동그란 구멍의 모양이었다. 7살 아이의 관찰력과 표현력이 재미있어 배를 잡고 웃었지만, 현지인 교사들과 아이들은 ‘당연히 화장실을 그렸는데 왜 웃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들의 가족 그림 작품을 하나씩 소개해주는 모습
모로코 전통 화장실을 잘 표현한 아이의 그림


사랑받기에 사랑 받아야 마땅한 아이들 ♡     

  

한 달 동안 ‘가족’이라는 주제로 아이들과 함께 연계 수업을 하면서 나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편부모 가족의 아이, 형제가 많은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대가족의 아이 등 아이들의 가족의 형태뿐만 아니라 가정형편에 대해서도 좀 더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의 가족 이야기를 들으며 좀 더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아이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눈빛에서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기에 또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임이 너무나 선명히 드러나고 있어서일까. 그저 이런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일 분 일 초의 시간들과 내가 이들의 선생님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④ 1월 주제 : 이웃 (Les voisinages)  

    

1월의 주제는 12월 ‘가족’에 이어 ‘이웃’으로 잡았다. 먼저 ‘우리 동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놀랍게도 어린 아이들의 눈에 비친 티플렛(Tiflet)의 모습은 정교하면서도 다채로웠다.  

    

  “우리 동네 티플렛(Tiflet)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함만(목욕탕)이요.”    “쥄마(모스크)요.”    “헤누트(슈퍼)요.”   “방크(은행)요.”
 “뽈리스(경찰)요.”    “마드라사(학교)요.”  “까헤와(커피숍)요.”  “다르(집)요.” 


아이들은 앞 다투어 동네에 있는 이름 없는 작은 가게들까지 줄줄이 이야기했다. 기대 이상의 대답에 힘입어 신이 난건 오히려 나였다. “그래 이렇게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이웃’이야. 이웃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웃이 어려움에 처했을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너무 빤한 질문 같지만 현지인 선생님은 ‘이웃’이라는 주제와 교훈이 마음에 든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역시 국가를 떠나 이웃과의 정, 이웃의 소중함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그리고 ‘의사, 간호사, 경찰관, 소방관, 선생님, 우체부, 농부, 미용사’ 등 티플렛(Tiflet)의 직업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직업 그림 색칠하기를 했다. 이제는 60명의 아이들 모두 다양한 색깔을 사용하면서도 그림 밖을 벗어나지 않게 잘도 칠한다. 고사리 손으로 곱게 칠한 그림들을 모아 실제 티플렛 지도와 거의 흡사하게 경찰서, 소방서, 학교, 병원, 미술관을 배치하고, 이슬람인 모로코에서 빠질 수 없는 모스크까지 그려 넣으니 그럴싸한 티플렛 지도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들의 또 하나의 공동 작품이 완성되었다.      


‘이웃’을 주제로 이야기나누기를 하는 모습
고사리 손으로 곱게 이웃들을 색칠하는 모습
60명 아이들의 작품으로 완성된 티플렛(Tiflet) 지도

 

아이들은 그림 실력 못지않게 노래실력도 일취월장하며 늘고 있었는데, 하나의 동요를 익히고 나면 어서 빨리 새로운 동요를 알려달라고 보챌 정도로 아이들의 노래 사랑은 커져만 갔다. 이런 아이들의 열의에 힘입어 이번 ‘이웃’ 주제 동요는 ‘동네 한바퀴’로 정했다. “다 같이 돌자 동네한바퀴”를 부르며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하는 아이들. 일취월장하는 아이들의 실력과 함께 1월 한 달 동안의 ‘이웃’ 프로젝트 수업도 성공리에 끝이 났다.   


⑤ 2월 주제 : 겨울 (l'hiver)     

  

2월은 안 그래도 다른 달보다 짧은 28일인데, 모로코 2월의 첫째 주는 일주일간 겨울방학이고, 둘째 주는 이슬람의 창시자 모하메드 탄생일로 2박 3일간이 연휴였다. 이런 저런 휴일이 많은 관계로 더욱 짧아진 2월은 3월초까지 ‘겨울’이란 주제로 짧은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다. 다른 주제보다 계절은 아이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연계 수업하기에도 쉬운 편이었다.


 게다가 지난 11월에 ‘가을’이란 주제로 수업을 해보아서인지 아이들과 현지인 교사들도 쉽게 받아들였고, 그 어느 주제보다도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 실제로 ‘눈’을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겨울 스포츠며, 눈 내리는 모습, 눈의 촉감, 눈의 결정 모습까지 모두 상상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히 모로코에서는 아틀란티스 산맥 근처인 이프란(Ifran)지역에 겨울이 되면 눈도 내리고, 스키장도 있었다. 이 덕분에 모로코의 이프란(Ifran)지역 사진들과 이프란(Ifrna)을 다녀온 아이들의 경험담으로 ‘겨울’ 주제의 이야기나누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겨울’ 주제로 이야기 나누기를 한 마인드맵

 

아이들 상상 속에서 튀어나온 눈사람     

 

이렇게 ‘겨울’이라는 주제는 아프리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추워진 모로코의 날씨와 우기로 인해 푸르게 변해가는 모로코 풍경과 함께 한국의 눈 쌓인 풍경들과 고드름, 다양한 겨울 스포츠와 여러 모습의 눈사람 사진들을 보며 상상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래도 겨울의 날씨 변화와 옷차림의 변화는 아이들 모두 잘 알고 있었는데, 눈사람은 처음 보았는지 꽤나 신기해했다. 눈도 코도 삐뚤삐뚤한 눈사람이 아이들에겐 꽤 우스웠던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아이들과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그림으로 눈사람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사실 눈사람 그리기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 아이들이 사진 속의 눈사람들처럼 통상적으로 너무 흔한 하얀 눈사람을 그릴까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도 점점 나를 닮아가는 것인지, 내가 그렇게 유도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처음에 독특하게 그린 몇몇 아이들의 눈사람에 과하게 칭찬을 했더니 다른 아이들 그림도 점점 독특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역시 아이들은 칭찬을 해주면 스펀지보다도 빠른 흡수력을 보여준다. 오히려 현지인 교사들만이 통상적인 하얀 눈사람을 그리며 자랑스럽게 나에게 보여줄 뿐이었다.  

    

아이들이 그린 개성 있는 눈사람
모자를 쓰고 알록달록 옷을 입은 눈사람


독특한 개성으로 자신만의 눈사람을 그린 아이들의 작품들을 모아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었다. 내 키를 훌쩍 넘는 60개의 작은 눈사람을 품고 있는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고 나니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하나하나 개성이 담겨있는 아이들의 작품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변화들이 나를 즐겁게 했다. 원색으로 한 가지 색만 칠하던 ‘동물’ 그림에서 개성 넘치는 ‘눈사람’까지의 과정이 머릿속을 스치며 조용히 나 혼자 흐뭇해졌던 2월이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아이들 마음속에는 내가 뿌리고 있는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겠지? 아이들과 커다란 눈사람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아이들 가슴 속의 씨앗들에 물을 주며, 다시금 힘을 내어 보았다. 으쌰!     


아이들의 작품들을 모아 만든 커다란 ‘눈사람’ 공동 작품


⑥ 3~4월 주제 : 교통기관 (Les veicules)     

  

매서웠던 모로코의 겨울도 서서히 풀렸고, 새로운 생명들이 탄생하는 봄이 찾아왔다. 짧았던 2월의 ‘겨울’ 주제가 3월에 걸쳐 끝이나 3월의 수업 일수도 짧아졌는데, 4월의 10일간은 또다시 봄 방학이란다. 그리하여 3월에 짧게 ‘봄’ 이야기를 나눈 후, 4월 한 달까지 ‘교통기관’으로 주제를 정했다. 사실 이 주제를 선정하였을 때 가장 좋아한 그룹은 남자 아이들이었다. 


이 또래의 남자 아이들은 만국 공통으로 자동차, 비행기, 배, 로켓들과 사랑에 빠지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스무고개식의 교통기관에 대한 이야기나누기에 남자아이들의 목청이 제일 컸다. 이런 적극적인 남자 아이들의 대답에는 


“당나귀요.”     “카미용(짐을 싣는 작은 트럭)이요.”
“말 마차요.”     “스쿨버스요.” 등등 


어김없이 모로코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교통수단들이 가득했다. 사실 티플렛(Tiflet) 시골마을의 주요 교통수단은 아이들의 대답처럼 당나귀와 말 마차, 카미용, 화물 오토바이 등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승용차, 버스, 트럭을 생각했던 나의 예상을 깨고 다양한 답들이 튀어나왔다. 정말 아이들의 관찰력은 놀랍도록 흥미롭다. 

‘교통기관’의 주제로 이야기 나누기를 하는 6세반 레일라 선생님


그뿐만 아니라 활동물품 지원을 통해 받은 ‘천재 블록’을 이용하여 교통기관을 만들어 보라고 하자, 처음에는 블록과 블록 연결도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복잡한 트럭과 오토바이, 비행기, 로켓 등등 다양한 교통기관을 만들어 매일 매일 나를 놀라게 했다. ‘천재 블록’ 놀이를 할 때면 ‘천재’가 되는 우리 아이들은 늘 ‘초집중력’을 발휘해 한 시간이 늘 모자라곤 했다.      


천재 블록을 이용하여 비행기를 만든 셀마
점점 더 정교하게 카미용을 만든 헤비브

  

‘색종이 모자이크’로 만든 또 하나의 기적     

  

단지 재료만 제공해 주었을 뿐인데 그 안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만들어나가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과 함께 난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늘 색칠하기 또는 그림그리기를 개별로 했던 아이들에게 그룹별 ‘색종이 모자이크’를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소근육을 이용해야하는 세밀한 작업인 만큼 아이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활동이었다.


하지만 늘 기대 이상으로 따라와 주는 우리 아이들이기에 이번에도 잘해낼 것만 같았다. 먼저 작은 트럭모양에 색종이 모자이크를 한 샘플을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현지인 선생님들은 예쁘긴 한데 아이들에겐 너무 어려울 것이라며 걱정을 하였다. 하지만 난 아이들을 믿어 보자고 설득하였고, 이번에는 현지인 교사들도 참여해 보자고 제안했다. 


늘 아이들 그림을 혼자 준비했었는데, 이번에는 현지인 선생님들에게 4절 도화지에 한 가지씩 교통수단을 선택해 그려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는 현지인 선생님들은 못하겠다며 손을 내저었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다. 괜찮다고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끈질기게 부탁을 하자, 마침내 고맙게도 선생님들도 용기를 내어 첫 그림을 그려주었다.      


늘 새로운 도전은 반대와 두려움에 부딪히곤 한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색종이 모자이크’가 나와 현지인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러한 도전이었다.      


6세 반 레일라 선생님이 처음으로 그린 배
7세 반 쉐마 선생님이 처음으로 그린 소방차


막상 아이들에게 색종이 모자이크의 시범을 보여주며 수업을 시작했지만, 과연 아이들이 색종이를 손으로 찢어 풀로 붙이는 색종이 모자이크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하는 그룹별 작업이었기에 과연 아이들이 다투지 않고 잘해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자신이 선택한 교통기관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그룹별 작업을 시작했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색종이를 잘라 풀로 붙이며 모자이크를 했다. 매일 조금씩 3~4일에 걸쳐 하나의 교통기관이 완성되었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늘 그렇듯 아이들은 나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어 나를 감동시켰다.  

    

색종이 모자이크는 5세 반의 카미용과 택시, 6세 반의 비행기와 돛단배, 7세 반의 로켓과 소방차, 유람선까지 총 7개의 교통기관으로 완성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들의 작품들을 고이 모아 커다란 전지에 붙여 공동작품도 만들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었던 만큼 아이들은 이번 작품이 신기하고, 스스로가 너무나 대견스러운 듯 했다. 현지인 선생님도 자신이 그린 그림이 작품으로 완성된 첫 기념작이었기에 내심 뿌듯해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작은 도전으로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작은 변화와 발전들이 있었다. 작지만 이 모든 것이 나에겐 기적 같은 일들이었다. 용기를  낸 도전은 늘 기적을 만들어 내고, 감동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색종이 모자이크를 하고 있는 6세 반 아이들
색종이 모자이크를 하고 있는 7세 반 아이들
비행기를 완성한 6세반 아이들과 레일라 선생님
배를 완성한 7세 반 아이들
완성된 공동작품을 보는 아이들
‘교통기관’ 공동작품 앞에서 5세 반 아이들과 메리엄 선생님

  

⑦ 5~6월 주제 : 세계 여러 나라 (Le monde)     

  

지난 9월 시작한 학기는 어느덧 더운 공기가 불어오는 여름의 초입을 알리며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지막 주제는 가족과 이웃에서 확장된 개념으로 ‘세계 여러 나라’로 정했다. 세계 여러 나라 중에서도 모로코와 한국을 중심으로 두 나라의 음식, 의복, 건축양식, 문화를 비교하며, 자국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한국을 알리는 기회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도시와 나라의 차이는?     


다른 주제들과 달리 ‘세계 여러 나라’는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조금 어려운 듯 했다. 왜냐하면 처음에 아이들에게 ‘세계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을까?’라고 질문했더니, 아이들은 한국의 서울-부산-대전-대구처럼 라바트(Rabat), 페즈(Fez), 메크네스(Meknes), 이프란(Ifran)등의 모로코 도시를 다른 나라라고 대답했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티플렛(Tiflet)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다른 지역이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도시를 다른 나라라고 당당히 대답하는 아이들에게 현지인 선생님과 나는 모로코 내의 도시와 다른 나라의 차이에 대해 차근히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7세 반 아이들은 이내 가까운 프랑스, 스페인, 미국, 영국 등의 다른 나라들을 생각해내어 대답했다. 이번에도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나라를 대답하는 것과 달리 모로코 아이들은 대부분 알제리,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의 모로코 근처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답했다. 물론 5세 반 아이들 중에는 여전히 도시와 국가의 구분이 잘 안 되는 몇몇 아이들도 있었지만, 세상에는 모로코 외에 다양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언젠가 알아주리라 믿기로 하고 일단락 지었다.      


따따 소피아의 나라, 한국을 만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나라 ‘모로코’와 따따 소피아의 나라 ‘한국’의 옷과 음식, 전통 놀이, 건축양식들에 매우 흥미로워했다는 점이다. 7살 어린 아이의 눈엔 모로코의 음식과 옷차림, 언어가 세상에 전부인 것 같은데, 저 멀리 있는 한국의 색다른 음식들과 처음 보는 옷차림이 무척이나 놀랍고도 신기한 듯 했다. 나도 우리나라에 대해 수업을 하다 보니 좀 더 많이 좀 더 자세히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고 싶어 나도 모르게 흥분하면서 말이 자꾸 길어졌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더니,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한국을 설명하면서 애국심이 불타올랐던 것 같다. 어쨌든 인터넷에서 찾은 우리나라의 지도와 국기를 시작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김치, 떡국, 구절판, 냉면, 한복, 탈춤, 경복궁 등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모로코의 지도와 국기, 모로코 전통음식인 꾸스꾸스, 따진, 헤리라, 쉬베키아, 전통 옷인 질레바, 바부쉬, 터번 등의 사진과 비교하며 아이들과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한국과 모로코우리는 친구     

  

한국과 모로코를 대표하는 사진들을 살펴보며 아이들과 이야기나누기를 한 후에는 한국과 모로코의 국기와 전통 의상으로 그룹별 색종이 모자이크를 하였다. 지난달에는 처음이라 고생을 좀 했지만 두 번째 하니 한 번 해봤던 거라고 아이들 모두 식은 죽 먹기처럼 쉽게 색종이 모자이크를 했다. 4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한 색종이 모자이크는 마침 한국에서 방문한 손님들과 함께여서 지난번보다 더 빨리 끝날 수 있었다. 이렇게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색종이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한국과 모로코의 국기 그리고 한복과 질레바를 입은 아이들이 완성되었다. 학기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작품이자 한국과 모로코가 친구임을 표현한 작품이었기에 모로코 아이들과 현지인 선생님 그리고 나에게도 매우 뜻깊은 작업이었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태극기를 모자이크 하는 아이들
한국 국기를 모자이크 하는 아이들
‘세계 여러 나라’를 주제로 완성된 모자이크 공동작품


1년간의 작지만 놀라운 변화들     

  

1년이란 시간 동안 우연히 시작된 주제별 프로젝트 수업은 작지만 놀라운 변화들을 가져왔다. 매달 새로운 주제로 진행한 총 7개의 프로젝트 수업 속에서 6개의 한국 동요(‘동대문을 열어라’, ‘가을 길’, ‘곰 세 마리’, ‘동네 한바퀴’, ‘비행기’, ‘쥐가 한 마리’)가 불어 및 데리자로 번역되어 아이들에게 불렸고, 매달 완성된 공동작품들은 일취월장하는 아이들의 그림 실력을 자랑하며 강당을 빼곡히 채우며 전시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기관장과 유치원 원장, 현지인 교사의 인식 변화였다. 처음에는 예체능 수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글자교육만 강조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예체능 수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나를 지지해주게 된 것이다. 


이렇게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시작된 1년간의 시간들은 나를 아낌없이 사랑해준 60명의 아이들과 나를 이해해주고 도와주었던 현지인 교사들과 함께 크고 작은 기적들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친구’라는 문구로 완성된 공동작품 앞에서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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