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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a Mar 18. 2018

#21. 따따 소피아의 유치원 수업

 제3부 모로코의 우스떼다(Teacher) - 06. 모로코 유치원 수업

06. 따따 소피아의 유치원 수업      

  

유치원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기관에 어떤 물품들이 있는지 살피는 과정에서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시민의 집이 운영을 시작할 때, 한국에서 지원해준 크레파스와 색종이, 도화지가 모두 비닐도 뜯지 않은 채 유치원 원장 사무실 캐비닛에 가지런히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자물쇠로 꼭 잠긴 채 말이다. 아마도 이런 물품들을 모로코에서 구하기 어렵고, 가난한 우리 아이들이 쉽게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아껴 쓰려고 했던 것 같다. 이런 사정 때문에 예체능 수업을 위한 활동 물품을 얻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이 맨 몸으로 수업을 할 수는 없었기에 유치원 원장과 한참을 이야기한 끝에 크레파스 4개와 도화지, 색종이를 1묶음씩 얻었고, 고무공 2개, 캐스터네츠 4개, 트라이앵글 2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수업 자료들이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순수함 가득한 아이들을 보며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힘차게 첫 유치원 수업을 시작했다. 


① 월요일(Le Lundi) : Art 1 (미술)     

  

누구나 첫 번째 경험짜릿함떨림으로 결코 잊지 못한다. 


나 역시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짜릿함으로 끝이 났던 모로코에서의 첫 수업이 가슴 깊숙한 곳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2010년 9월 20일, 드디어 떨리는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예체능 수업을 하기로 했던 교실 옆 강당에서 아이들의 수에 맞게 자리를 세팅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다렸다. 2시, 3시, 4시가 되자 각 반의 아이들이 ‘기차 -칙칙’ 하며 한 줄로 쪼르륵 들어왔다. 떨리는 첫 수업. 드디어 시작이다!


아이들에게 오늘 할 활동을 소개해주고, 도화지를 4등분으로 나누어 16절지를 만들고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먼저 화이트보드에 4가지 모양의 선을 그어 시범을 보였다. 직선, 곡선, 나선형 등. 크레파스를 처음 사용하는 아이들은 그저 알록달록한 크레파스만으로도 신이 나 있었다. 


물론 처음이었기에 연령이 낮은 아이들과 소극적인 몇몇 아이들은 하얀 종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못 그리고 있었지만, 이내 현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하나 둘 그림 그리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비록 수업이 끝난 후 몇 개의 크레파스가 사라지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못할 만큼 정신없이 지나갔지만, 60명의 아이들과 3명의 현지 선생님들 모두 새로운 경험과 노력하는 나의 모습에 서로 만족했던 짜릿한 첫 수업이었다.     

강당에서의 첫 수업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첫 수업을 하던 미술 수업, “선긋기”
7세 쉐마반 아이들과의 첫 수업


② 화요일(Le Mardi) : Sport (체육)     

  

화요일은 신체운동을 하기로 했다. 작은 교실에서 온종일 답답함을 느꼈을 아이들에게 커다란 강당에서 폴짝폴짝 뛰며, 마음껏 몸을 움직이고,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 선택한 체육 수업이었다. 사실 아이들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슬펐었다. 아이들의 작디작은 얼굴에서 ‘아이다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그저 시키는 대로 큰 소리를 내며 웅변을 하는듯한 아이들은 웃음을 잃은 ‘어른 아이’ 같았다. 


그때의 느낌을 쉽게 지울 수 없었던 나는 다짐을 했다. 적어도 나와 함께 하는 수업에서는 아이들이 최대한 많이 웃고, 아이다움을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신체활동. 


처음에는 클래식이나 재즈 음악을 틀어 놓고, 제자리 걷기, 점프, 팔운동을 하다가 점차 아이들이 익숙해지자 달리기, 율동 등을 결합해서 ‘짤랑짤랑’의 율동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했다. 아이들이 모르는 한국말을 따라 하며, ‘짤랑 짤랑 으쓱 으쓱’ 할 때는 정말이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조그만 어깨를 어찌나 잘 으쓱 되는지 모른다. 아이들도 어깨를 으쓱으쓱 하는 나를 사랑스럽게 봐주겠지. 

 

이렇게 매주 화요일마다 3시간 연속 3반 60명의 아이들과 신체활동을 하다보면, 숨이 턱까지 차고 땀에 흠뻑 젖곤 했다. 어느 날은 ‘짤랑 짤랑’을 아이들과 한 100번은 한 것 같았다. 덕분에 난 퇴근하고 집에 가자마자 기절해 버렸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에 내 마음 어딘가에서 화수분처럼 힘이 솟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화요일이 살짝 두렵기도 했다. 봄의 새싹처럼 철철 넘쳐흐르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이길 자신이 없어서 말이다.     


강당에서 음악에 맞춰 춤추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체육 수업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아이들과 ‘짤랑짤랑’ 율동을 하는 모습
온몸을 움직이는 체육수업에 신이 난 아이들


③ 수요일(Le Mercredi) : La Musique (음악)     

  

수요일은 음악 수업이 있는 날이다. 음악 수업은 미술, 신체, 게임, 색종이 접기 중 가장 힘들었던 수업이었다. 왜냐하면 모로코에서는 음악 교과목이 교육과정에 없어 아이들은 물론이고 현지인 선생님들도 노래, 박자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던 것이다. 


게다가 피아노도 없고, 다른 악기도 없었다. 물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처럼 아이들과 함께 초원위에서 노래를 부르겠다며 모로코 시장에서 거금 7만원을 주고 산 통기타가 있었지만, 코드도 제대로 못 치는데 어찌 아이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겠는가. 또한 시골마을에 음악 학원이 없어 기타를 독학하고 있는 실정이니 기타반주는 무리였다. 


이렇게 해서 노래도 잘 못하는 내가 오로지 나의 생목소리와 트라이앵글 2개, 캐스터네츠 4개로 음과 박자를 맞춰 나가야했다. 처음 목표로 잡은 곡은 ‘동동동대문을 열어라’였다. 먼저 이 가사를 불어로 번역하여 혼자 불러보고는 도화지에 가사를 적어 수업을 시작했다. 한 마디에 4박자가 있고, 가사가 없어도 4박을 치고 다음 가사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손바닥을 치고, 트라이앵글과 캐스터네츠를 치며, 별표를 그려가며 수업했다. 


처음에는 과연 아이들이 부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나자. 이게 웬일인가. 7세 반 아이들은 모두 정확한 가사와 음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기적이었다. 불어로 번역되긴 했지만 우리의 전통노래 ‘동동동대문을 열어라’가 모로코 아이들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것은 감동적이었다. 부디 아이들에서 아이들로 오래오래 이 노래가 불리기를 바랄 뿐이었다.


‘동동동대문을 열어라’의 성공으로 고무된 나는 내가 아는 우리나라의 전통 노래를 불어로 번역해서 아이들에게 모두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하여 한 달에 하나씩 월간 한국 노래가 시작된 것이다. 동요 외에도 클래식 음악 속 악기들을 소개해주며, 악기의 소리를 구별해보는 음악 감상도 시도해보았다. 낯선 음악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율 때문인지 아이들과 선생님들 모두에게 만족도가 가장 높은 수업이었다. 


음악수업은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음치인 나에게 처음으로 노래와 음악을 배우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 하지만 음악은 즐기는 시간이 아니었던가. 음악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던 나와 이런 나의 마음을 읽어주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늘 서로 교감하며 즐거운 음악수업을 이어갔다.      


클래식 음악 감상을 하는 아이들
‘동대문을 열어라’를 불어로 번역한 가사 판
‘동대문을 열어라’ 노래에 맞춰 ‘동대문 놀이’를 하는 아이들


④ 목요일(Le Jeudi) : Les Jeux (대집단 활동 게임)

  

목요일은 게임을 했다. 아이들은 대집단 게임을 하면서 집단의 규칙과 게임의 규칙을 익히고, 친구들 간의 협동심을 배우게 된다. 게다가 아이들은 게임을 할 때 가장 행복해 한다. 나 역시 아이들과 목청이 터져라 각 팀을 응원하는 게임 수업이 제일 즐거웠다.


게임 수업은 강당에서 이루어지며 남녀를 적절히 분배해 아이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팀별로 원하는 팀 이름을 지은 후에 게임 규칙을 현지인 교사와 함께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게임을 시작한다. 각 주별로 게임이 다르긴 했지만, 의자 돌아오는 달리기, 페트병에 물을 넣어 골대를 만들고 하는 축구 게임, 동대문 놀이 등 사용가능한 재료를 최대한 이용해서 게임을 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동대문 놀이’였는데, 수요일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를 이용해서 ‘동대문 놀이’를 하면 아이들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가끔 아이들이 놀이에 심취해 노래를 안 부르고 있으면 나 혼자 목청 터지게 노래를 부르게 되곤 했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두 팀으로 나누어 게임하는 것과 규칙들이 어색한지 계속 자기 차례만 되기를 기다리며 “내가 할래요.”라고 부르짖던 아이들이 한주 한주가 지나며 이제는 제법 차례도 기다리고, 자기 팀을 응원할 줄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늘 기대 이상으로 따라와 주어 나를 감동시켰다. 학기 초 아이들의 팀 이름의 단골은 ‘파피용(나비)’이었다.     


물통을 이용한 축구게임

 

‘동대문을 열어라’ 노래에 맞춰 ‘동대문 놀이’를 하는 아이들
게임 벌칙으로 노래를 독창을 하는 아이


⑤ 금요일(Le Vendredi) : Art 2 (종이접기)

  

아이들이 색종이를 처음 만난 날. 이 시간은 정말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너무나 흔한 색종이라서 색종이의 마법 같은 힘을 미처 알지 못했었다. 작은 손바닥만 한 색종이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지. 그로인해 아이들의 동심이 얼마나 더 깊어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말이다. 색종이로 물고기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들고, 꽃도 만드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한 선생님과 아이들. 


모로코에서는 아이들의 의견은 무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색종이의 색을 정하는 것도 현지인 선생님이 임의로 주는 것을 받아서 쓸 뿐 아이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색종이 접기를 할 때 아이들이 직접 좋아하는 색깔을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색종이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색종이 접기까지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들에겐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잘 따라와 주었다. 

  

종이접기를 처음 접해보는 현지인 선생님과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색종이 접기의 기본부터 시작하였다. 네모 접기, 세모 접기, 두 번 접기 등 천천히 하나 둘 종이를 접고, 손가락으로 누르고, 종이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2주가 지나자 아이들은 처음 접어보는 색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하늘 높이 날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접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날 가슴 아프게 했던 무표정한 ‘어른 아이’의 그늘이 사라지는 것 같아 너무나 기뻤다.   

  

처음 자신이 접은 종이비행기를 하늘 높이 날리는 아이들


첫 도전! 첫 작품! 우리만의 바다 만들기     

  

한주 한주가 지나면서 점점 종이접기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아이들과 현지인 선생님들에게 좀 더 새로운 종이접기를 제안해보았다. 먼저 색종이로 바다 속을 꾸민 작품사진들을 찾아서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물론 현지인 선생님들도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이 알록달록 종이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무척 신기하게 여겼다. 


사실 모로코에선 해산물이 매우 비싸고 수요가 없어 실제로 바닷속에 무엇이 사는지 오징어가 무엇이고, 꽃게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현지인 선생님들도 TV에서 본 것이 바닷속 모습의 전부라고 했다. 난 바닷속에 사는 생물들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하면서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우리만의 바다 속 모습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시작된 바다 속 꾸미기. 


처음엔 가장 쉬운 물고기 접기를 찾아서 아이들과 종이접기를 하고, 그 다음 주엔 바다 속에 사는 오징어, 조개, 꽃게 등 생물들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물고기들에 각자의 이름을 적고, 가위로 잘라 도화지를 이어붙인 큰 종이에 옮겨 넣었다. 이렇게 아이들이 만들어 간 바다는 믿기 놀라울 정도로 멋지게 완성되었다. 자신들이 만든 물고기와 바다 생물들로 이루어진 작은 바다가 완성되자 아이들과 현지인 선생님은 놀라움 반 신기한 반으로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하고 감상을 하고는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우리들이 만들었다는 게 참으로 뿌듯한 첫 작품이었다.     

 

종이비행기에서 우리만의 바다 왕국까지. 

색종이 하나에 신기할 만큼 아이들과 내가 끝없이 행복했던 금요일의 나날들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빔 프로젝트를 이용하여 바다 속 종이접기 모습을 설명
색종이 기본 접기를 설명하는 모습
가장 쉬운 물고기 접기를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모습
바다 속 생물을 그리고 자르는 아이들
아이들과 함께 만든 첫 번째 종이접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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