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떠나다(Dream) - 01. 가슴 뛰는일
치열하게 자신의 길을 찾고 도전하고 실패하며 세상을 배워가는 시기 20대. 길가에 피어있는 작은 풀잎과 흐르는 강물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듯, 사람도 저마다의 존재이유가 있다고 믿는 나. 20대는 바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아가는 시기가 아닐까. 내 나이 스무 살에는 절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아프리카 모로코에서의 해외봉사활동. 그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첫 번째 이야기는 나만의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내 가슴이 가장 행복한 일을 느끼며, KOICA 봉사단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나의 무모한 도전과 가족들의 걱정과 사랑, 왜 꼭 해외봉사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나만의 대답, KOICA 봉사단원이 되어 동기들과 한 달간 합숙을 하며 겪었던 길고 짧은 에피소드들을 담았다.
가슴이 뛴다. 쿵쿵. 가슴이 뛰는 곳에 자꾸 시선이 가고 몸이 간다. 서점에 가면 나의 시선은 국제개발 관련 서적이나 해외봉사활동 및 여행 에세이집에 고정된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으레 해외 개발도상국들의 다큐멘터리나 동물과 자연에 관련된 다큐멘터리에 시선이 멈춘다. 그리고 그 시선을 따라 국제개발 관련 서적을 읽거나 다큐멘터리를 볼 때면 또다시 가슴이 뛰고 만다. 더 빠르고 강하게 쿵쿵.
나도 모르는 내 가슴 속 무언가에 내가 이끌리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 가슴이 왜 뛰는지. 그저 세상을 향한 호기심 많은 나의 무수한 관심사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호기심은 나의 운명으로 변하여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조금씩 나를 변화시키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난 어린 시절 그저 호기심 많고 도전정신이 강한 평범한 아이였을 뿐이었다. 이렇다 할 큰 꿈도 멋있는 도전도 그려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기는 아이였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찾아온 운명의 순간.
2007년 여름 우연히 읽게 된 ‘체게바라 평전’이 내게는 운명의 시작이었다.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언니의 방에서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이 무언가를 꼭 해야겠다는 도전정신과 함께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꿈을 깨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우연을 가장한 이미 정해져 있던 운명처럼 찰나의 순간에 나를 파고들었다.
책을 읽을 당시 내 나이 23살. 한창 나의 꿈과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때였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지, 내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답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앞만 보며 달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난 ‘체게바라 평전’을 읽으며 나와 같은 23년을 산 사람인 체게바라가 남아메리카를 오토바이로 일주하며, 아르헨티나의 평범한 의사에서 자본주의에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한 인간애적 혁명가로 인생을 바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그 당시 그와 같은 나이였던 23살 나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결국 난 그 책을 읽고 이런저런 고민들에 빠지게 되었다.
‘체게바라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었어도 23살이면 나와 같은 나이인데,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도전을 할 수 있었을까?’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로 인해 사람의 인생이
의사에서 혁명가로 180° 바뀔 수 있는 걸까?’
‘과연 체게바라가 오토바이 여행을 통해 배웠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행하며 그는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고민 했을까?’
‘이 사람이 이렇게 치열하게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23살에
난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내 꿈은 뭘까?
'내가 진정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뭘까?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등등 수많은 질문들이 미래를 고민하고 꿈을 찾던 나의 가슴 속에 들어와 쿡쿡 박혔다.
결국 난 수많은 고민과 어떤 끌림에 의해 체게바라처럼 나도 오토바이 전국일주를 통해 나의 꿈을 찾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우격다짐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오토바이, 정확히 말하면 핑크색 50cc의 작은 ‘비너스’ 스쿠터로 전국일주를 한다고 하였을 때 주변의 반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사실 배기량이 큰 오토바이로도 전국일주는 만만한 게 아니었을 테지만 그런 오토바이들의 빠른 속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또 자그마한 스쿠터로 전국일주를 한다는 것이 보다 ‘도전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한 고민 끝에 50cc의 작은 스쿠터를 샀던 것이다. 하지만 50cc의 스쿠터나 그보다 큰 오토바이나 전국일주에 따르는 위험성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당시에는 여자가 스쿠터를 탄다는 것이 그리 낯익은 광경은 아니었기에 어려운 점도 많았다. 때문에 내가 50cc 스쿠터로 전국일주를 한다고 했을 때 내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 모두 오토바이의 위험성과 나의 무모함을 탓하며 나를 뜯어 말렸다.
물론 나를 걱정해서 ‘스쿠터 전국일주’를 반대하는 것이었지만 왠지 극구 만류하는 말을 들을수록 알 수 없는 오기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위험하고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도전을 꼭 해야겠다는 욕구가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하지 못하면 영원히 하지 못할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 과거를 돌이켜 보았을 때 지금 전국일주를 하지 않은 것을 내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던 것이다. 미래에 이런 내 모습을 생각하니 난 더욱더 무모하지만 내 꿈을 찾는 도전을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지금 하거나, 영원히 하지 않거나’ 그 당시 이 말은 나 자신을 위로하며 도전을 계속 할 수 있는 힘을 불어 넣었다.
그렇게 주변의 핍박과 가족들과의 실랑이 끝에 용돈을 모아 핑크색 스쿠터를 장만하고, 함께 여행할 동지 2명(중학교 동창 정아와 언니 동아리 선배 세민오빠)을 설득하여 2007년 8월 어느 날 12박 13일의 50cc 스쿠터의 전국일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강릉 - 대관령 - 경주 - 포항 - 부산 - 순천 - 보성 - 땅끝 - 광주 - 온양을 거치며 전국의 시골마을을 누볐던 나의 첫 꿈의 도전 전국일주. 때로는 비를 맞으며 때로는 길을 잃으며 하는 여행이라 몸은 힘들었지만 길 위에서 만난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으로 13일의 전국일주가 성공리에 끝이 났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후에 답을 얻을 것이라 믿었던 내 미래나 꿈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었고, 바로 코앞의 미래도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일을 성공리에 마쳤다는 자신감과 전국일주를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에 관한 무용담을 남겼을 뿐이었다.
비록 이렇다 할 내 미래에 대한 정답을 찾지는 못했어도 내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나의 꿈과 가슴 떨리는 일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 세포 곳곳에 스며들어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전국의 시골마을을 여행하면서 만난 어르신들의 외로움과 따뜻한 정이 그것이었다.
그들 속에서 나는 나만을 위해 살아가던 세상, 남들과 경쟁하는 바쁘고 각박한 서울의 모습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따뜻한 세상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시골을 여행하면서 만난 수많은 독거노인들, 딱딱하게 굳은 밥을 수돗물에 말아 드시던 할아버지, 지나가던 여행객인 나를 붙잡고 미주알고주알 서울의 손자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에게서 느껴졌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 지나가던 나그네인 나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마을 잔치 상을 내주었던 이름 모를 어르신들의 따뜻한 마음.
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었다.
처음으로 내 문제가 아닌 세상 사람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었다. 그저 여행을 다녀와서 왜 어르신들이 시골마을에서 이토록 외로워하시는지 고민하게 되었고, 미약하나마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강한 끌림을 느끼게 된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 느낌, 그 마음이 내 운명을 이끌고 있었다.
이렇게 무모했던 50cc 스쿠터 전국일주는 그 당시 유아교육을 전공하던 내가 세상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했고, 이를 이룰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게 했다. 그때 알게 된 학문이 사회복지였다. 그리고 또 다시 밑도 끝도 없이 단지 처음의 떨림과 진심어린 마음만 믿고 사회복지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사회복지를 공부하기위해 대학원에 들어갔고, 전문적으로 사회복지를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처음 배우는 학문이었지만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가슴 떨리며 하고 싶었던 일을 배우게 된 것이기에 즐겁고 재미있게 임할 수 있었다. 또 기회가 되는 대로 최대한 여러 수업들을 듣고, 다양한 경험들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2년간 사회복지를 배우면서 처음 느꼈던 떨림과 마음을 지역의 자원을 통한 전문적이고 장기적인 도움으로 실현할 다양한 방법들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아동, 청소년, 여성, 노인, 국제개발 등의 폭넓은 복지 분야도 접할 수 있었다. 기본지식도 없고 실수투성이였지만 교수님들, 박사 선생님, 대학원 동기들의 도움과 2년간의 다양한 이론 수업, 그리고 복지관에서의 실습과 자원봉사를 통해 사회복지의 이론과 실제를 적용해보며 조금씩 사회복지라는 학문을 배워나갔다.
다양한 분야의 사회복지 수업 중에서도 유독 내 관심을 끌고 전국일주 이후로 또 다시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한 수업은 국제개발 관련 수업이었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국제개발’에 내 몸과 마음이 이끌리고 있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나는 다시 조급해졌다. 때문에 나의 자연스런 끌림과 관심이 그저 마음에만 그치는 것인지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인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마지막 여름방학 때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해외실습기회가 주어졌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방글라데시에서의 해외실습은 내 꿈과 떨림을 확인하는 데에 충분했다.
그곳에서 나는 책과 텔레비전에서만 보며 눈물 흘렸던 개발도상국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생존의 문턱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어린 아이들, 구걸을 하며 생활하는 거지 가족, 힘든 생활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이웃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이방인이었던 나를 돕는 그들의 모습은 한국에서 내가 느꼈던 어떠한 끌림보다도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짧고 강렬했던 이 한 달간의 경험은 내가 가진 모든 재능과 노력을 이 세상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한 꿈을 꾸며 살 수 있는데 쏟아야겠다는 치명적 운명의 힘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 꿈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찾아야 하는 20대. 하지만 현실은 꿈이 무엇인지 보다는 높은 연봉과 대기업 취업이 인생의 성공인 것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이런 치열하고 무서운 세상에서 난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저 우연히 만난 ‘체게바라 평전’으로 우격다짐의 꿈을 찾아 떠났던 스쿠터 전국일주가 내 꿈의 안내서가 되어주었으니 말이다.
찰나의 우연으로 시작된 도전은 결국 운명을 느끼며 가슴의 끌림을 따라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방글라데시 실습을 다녀오고, 취업 대신 가슴 뛰는 일을 하기 위한 KOICA 해외봉사활동이라는 도전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너무나 깊은 감사와 행복감, 나의 존재의 이유를 뜨거운 눈물과 함께 느끼게 해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하며, 위험을 감수하거나 도전적인 삶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위험부담을 안고 자신의 꿈에 도전하는 것만큼 안정적으로 사는 것 또한 도전하는 삶이 아닐까 생각된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무언가를 포기해야하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자신의 가슴 뛰는 꿈을 포기하는 용기와 꿈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용기,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세상을 맞이하는 모든 사람들의 도전이자 나의 첫 도전이 아니었을까.
이 도전에서 나는 꿈을 위해 20대의 시간을 좀 더 투자해보기로 했을 뿐이다. 이것이 2010년 졸업과 함께 망설임 없이 KOICA 해외봉사활동에 지원한 이유이며, 내가 이곳 모로코에 온 이유이다. 마치 운명처럼.